김러브의 여섯 번째 레터
연아, 오랜만이야. 저번에 내가 쓴 글은 재밌게 읽었어? 5월 1일에 발행했는데, 어느새 5월도 끝자락에 접어서네. 요즘 날씨 너무 좋지 않아? 기온은 점점 올라가지만 아직 공기는 끈적하지 않아서 바깥을 목적 없이 걸어 다니기에 딱 알맞고.
음, 여기 교환일기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한동안 나는 내가 쓰는 모든 글과 거리를 두려고 했어. 내 삶이 고되어서 직시할 용기가 나지 않더라고. 글을 쓴다는 건 내 마음을 마주하는 거잖아. 그럴 여력이 없어서 한 걸음 물러나 있었던 것 같아. 지금은 어떠냐고? 글쎄, 잘 모르겠어. 확실한 건, 이번 레터에서는 그동안 묻어왔던 내 마음을 좀 들여다보는 글을 써 보려고 해. 그래서 이번 글은 매끈하지도 않을 거고, 매듭지어지지도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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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명실공히 가정의 달. 그리고 가정의 달을 장식하는 빅 이벤트, 어버이날. 그런 날에 난 대차게 엄마와 싸워버렸어. 매몰차게 전화를 끊고 나서 이불에서 헛발질을 하며 울고불고 후회했지. 아, 나는 왜 하필 어버이날에…. 하소연을 하려고 친구에게 연락하니 그는 나를 이렇게 위로해 줬어.
— 엄마아빠랑 제일 많이 싸우는 날 1위 어버이날, 2위 생일.
퍽 먹히는 위로였어. 그럼에도 마음의 부채감은 가시질 않았지만.
엄마는 나를 너무 사랑해서 내 아픔을 회피하는 사람이었어. 내가 힘들어하는 걸 견디지 못했거든. 언젠가 나는 엄마에게 ‘엄마는 내 꽃만 보고 싶어 하고, 뿌리와 가시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 이해받고 싶은 이에게 온전히 이해받지 못하는 것은 내게 큰 고통이었지. 그 말을 뱉고, 곧바로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 세상에 내 뿌리를 봐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비관이 아니라 진심이었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이미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았고, 부모 자식 간에도 예외가 아닌 것처럼 보였거든.
그 뒤로 나는 ‘별 탈 없이 잘 지내는 딸’이 되고자 노력했어. 힘든 일은 말하지 않고, 해결하지 못할 일은 논의하지 않고, 울고 있을 땐 통화하지 않았어. 부모님과 나는 무척 사이가 좋아졌어. 여전히 내 마음속에는 작은 물음표가 있었지만,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지.
이쯤에서 내가 어떤 일로 싸웠는지 말해줄게. 말하자면 길지만 대략의 흐름은 이래. 어버이날에 내가 안부 전화를 드리기 전에 먼저 엄마가 내게 전화를 걸었어. 이런 날에 연락이 없냐고 채근하는, 서운함이 담겨있지만 다분히 장난스러운 전화였지. 엄마도 나도 처음에는 기분 나쁘게 시작한 대화가 아니었지만 종국에는 감정이 있는 대로 상하고 말았어. 내가 가장 감정이 복받쳤던 부분은 이거야. 난 이미 '별 탈 없이 잘 지내는 딸'이 되려고 무던히 노력하고 있는데, 이제 '살가운 딸'이 되기 위한 노력까지 해야 한다니. 엄마에게 쏟아내듯 진심을 말한 뒤에, 내뱉어진 잔해들을 보고서야 비로소 깨달았어. 나는 엄마가 내 뿌리도 가시도, 상처도 슬픔도 봐주었으면 했구나. 그렇지 않아도 괜찮은 게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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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피의 울타리. 누군가에겐 너무도 당연해서 인지조차 어려울 그 결속은, 내게는 무척이나 생경한 것이었어. 가족이 싫지 않았어. 하지만 늘 낯설었어. 그들은 나를 사랑하고, 내게 충분히 호의적이었음에도 말이야.
마찬가지로, 난 ‘집’이라는 공간이 낯설어. 스무 살 가을 지나서부터 나는 줄곧 자취를 했어. 매년 집이 바뀌었지. 그간 부모님도 집을 옮겼는데, 이사를 간 곳에 내 방은 없어. 언젠가 이런 적이 있었어. 자취방에 묻어있는 삶의 고단함이 역겨울 정도로 싫어서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갈 곳이 없는 거야. 부모님 집엔 내 방이 없어. 있다 하더라도, 그곳에선 내가 쉴 수 없어. 가족은 낯선 존재니까. 나에게는 ‘본가’가 없다. 그럼 난 다 내팽개치고 싶을 때 어디로 가지? 두려움에 밤새 울었던 기억이 나.
나는 자유분방한 행동을 많이 하고, 실제로 무언가에 얽매여있는 걸 싫어하기도 해. 하지만 나는 힘차게 날갯짓을 하며 날아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디딜 땅이 없어서 착지하지 못하는 사람일 뿐이야. 나에게 자유는 그 자체로 선택지 없는 강요야. 얼마나 기막힌 모순인지! 그렇기에 자유로운 내가 애타게 집을 찾아 헤매는 것, 디딜 땅을 찾고 싶어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마음이지.
가끔은, 가족도 아닌데 내 줄기를 봐주는 사람이 있어. 뿌리도 조금 보고, 가시도 조금 보고. 그런 친구가 어느 날, 내게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를 봤냐고 물어보며 이렇게 말했어.
— 그 영화의 핵심은, 주인공에겐 ‘돌아갈 집’이 있다는 거야.
그렇구나. 돌아갈 집. 머무르는 곳이 아니라 돌아갈 집. 어쩌면 나는 평생 한 번도 그런 공간을 가진 적이 없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 내 방에 누워있어도, 나는 언제나 낯선 곳에 이방인처럼 있는 기분이 들었어. 경계를 온전히 풀 수 없었고 잠을 자주 설쳤어. 그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서 영화를 봤어. 주인공은 시골에 있는 집으로 떠나가는 게 아니라, 그곳으로 돌아가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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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 <달과 6펜스>를 읽어본 적 있어? 폴 고갱을 모티프로 한 그 책의 마지막에는 ‘타히티’라는 섬이 나와. 타히티는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 속한 '소시에테 제도'의 섬으로, 남태평양에 위치해 있어. 실제로 폴 고갱은 생의 말년동안 그 섬에서 머물렀다고 해. 책의 마지막에는 내레이터가 ‘타히티’라는 섬에 대해 서술하는 구절이 있어.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날 곳이 아닌 데서 태어나기도 한다고. 그런 사람들은 비록 우연에 의해 엉뚱한 환경에 던져지긴 하였지만 늘 어딘지 모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산다. 태어난 곳에서도 마냥 낯선 곳에 온 사람처럼 살고, 어린 시절부터 늘 다녔던 나무 우거진 샛길도, 어린 시절 뛰어놀았던 바글대는 길거리도 한갓 지나가는 장소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가족들 사이에서도 평생을 이방인처럼 살고, 살아오면서 유일하게 보아온 주변 풍경에도 늘 서먹서먹한 기분을 느끼며 지낼지 모른다. 낯선 곳에 있다는 느낌, 바로 그러한 느낌 때문에 그들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뭔가 영원한 것을 찾아 멀리 사방을 헤매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폴 고갱이 이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어. 작가의 서술일 뿐이니까. 그러나 이 글을 읽고, 엄청나게 큰 위로를 받음과 동시에 심연으로부터 내 욕망의 근원을 찾을 수 있었어. 그건 바로 ‘어딘가에 고향이 있다는 믿음’이었던 거야.
‘리틀 포레스트’가 꼭 공간의 형태로 존재하리란 법은 없지. 마음 안에 가꿀 수도 있을 테고. 하지만 <달과 6펜스>에 나오는 ‘타히티’처럼, 내가 애타게 찾아 헤매던 고향이 지구상 어딘가에 공간적 형태로 존재했으면 좋겠어. 그래서 이 땅에 이방인처럼 붙어있는 기분이 내 못난 성미 탓이 아니라, 진정한 내 고향을 가 본 적 없기 때문이라고, 만난 적 없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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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도 ‘집’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기억이 있어. 스무 살 발렌타인 데이. 갓 어른이 된 사람이 술을 마실 때 으레 그렇듯, 나는 술에 푹 절여져서 집에 돌아왔어. 정신이 몽롱해서 씻지도 못하고 누워있는데, 내 머리맡에 엄마가 앉았어.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났지만, 나는 술기운에 눈도 똑바로 뜨지 못해서 엄마가 무엇을 하는지 몰랐지.
— 해피 발렌타인 데이
엄마는 껍질 벗긴 페레로 로쉐를 한 알씩 내 입에 넣어줬어.
웃기고 귀엽다. 난 그 순간 내가 집에 있는 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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