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러브의 일곱 번째 레터
김승일, 부담
동생의 마음이 이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도 양아치였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깨달아버린 것이다. 학교에 가지 않는 양아치보다는 학교에 가는 양아치가 더 멋있다는 사실을.
부모가 죽고 세 달이 흐르자, 숙제가 밀리면 그 숙제는 하지 않는다. 그것이 형의 방식. 형이라서 라면을 먹어, 역기도 들고, 찬송하고, 낮잠을 때리지. 형이라서, 형이라서 배탈이 났어요. 나는 학교에 늦게 간다. 하고 싶다면 너도 형을 해. 그러나 네가 형을 해도. 네가 죽으면 내 책임이지.
학교에서, 나는 농구하는 애. 담배 피우는 애. 의자로 후배를 때린 선배. 아버지가 엄마보다 늦게 죽을 줄 알았어. 자주 앓는 사람이 오래 사는 법이니까. 부모가 동시에 죽고, 이제 누가 화장실 청소를 하나? 형이라서 배탈이 났어요. 이십 분 간격으로 물똥을 눈다. 창피하게. 동생이 옆에서 샤워를 한다. 구석구석.
친구들이 모두 집에 돌아간 뒤에도 나는 학교에 남아 침을 뱉는다. 구령대에서, 나는 침을 멀리 뱉는 애. 부모가 죽고 세 달이 흐르자. 부모가 죽고 네 달이 흐른다. 그리고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동생이 뛰어온다. 변기에서 쥐가 튀어나왔어. 괜찮아. 내일부터 학교에 오자. 똥은 학교에서 누면 되지. 그래 그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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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 안녕. 한 주간 잘 지냈어? 저번에 내 글은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하다. 발행하기 전까지는 무척 떨렸는데 내고 나니 참 마음에 들어서 몇 번이고 다시 읽은 거 있지 (ㅋㅋ) 아직 읽지 못한 연이들은 읽어봐. 링크 남겨둘게.
요즘 연이들은 뭐 하고 지내? 나는 불안하지만 행복한 백수 라이프를 즐기고 있어. 유유자적 일상 속 주목할만한 일정은 바로 시작(詩作) 수업! 저번 달부터 매주 5편의 시를 분석하고, 수강생들의 시를 합평하는 수업을 하고 있어. 나는 관련 전공이 아니라 합평은 처음이거든. 다음 주에 내 차례인데 너무 떨린다… 부디 무사히 살아 돌아올 수 있기를…!
이번 레터에서는 김승일 시인의 시집 <에듀케이션>을 소개하려고 해. 나는 작년 겨울에 처음 읽어봤는데 저번주 수업 과제에서 두 편이나 나와 무척 반가웠지 뭐야. 몰랐는데, 이 시집이 2012년도에 나왔더라고? 출간 당시 정말 센세이셔널했다고 해.
김승일 시인은 1987년도에 출생해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를 졸업했어. 2009년에 등단한 뒤로 시, 에세이 등 꾸준히 작품을 출간하고 있지. 에듀케이션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집은 ‘비성년 화자’의 출생과 성장에 관한 자기 고백적 이야기를 담고 있어.
비성년. 생경한 개념이지? 시인이자 에세이집 <비성년열전>의 저자 신해욱은 ‘비성년’이라는 용어를 이렇게 정의해.
움직여서 인간의 세계에 성공적으로 진입하여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하게 된 이들을 성년이라 부른다. ‘아직’ 그렇게 되지 못했으되 이제 그렇게 될 이들을 미성년(未成年)이라 부른다. ‘이미’ 그렇게 되지 않는 이들은, 그러니 비성년이라 부르기로 하자. 미성년은 대기 중이고 비성년은 열외에 있다.
성인이 되지 못하는 존재인 나.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성인이 될 수 없는 나. 내 주위는 모두 매끈하게 잘 자라는데 나는 여전히 버석버석한 기분. 비성년이라는 표현을 알기 전부터 숱하게 이런 감정을 접해왔기에, 이 시집을 읽으며 더욱 마음이 아팠던 것 같아. 어렸을 때를 돌이켜보면 행복한 추억도 분명 있었겠지만 난 천성이 상처에 더 민감한 편이니까. 어쩌면 비성년이라는 건 태초부터 내게 예고된 미래였을지도 몰라.
<에듀케이션>의 화자는 담담하게 객관적 진술을 펼쳐나감으로써 본인 앞에 놓인 비극적 상황을 설명해. 부모의 죽음, 유년시절 학대에 대한 고백, 죽음에 대한 상상 등 비성년인 화자에게 드리운 부담스러운 상황을 축축하게 설명하는 대신 무심하게 서술하고, 어떤 순간에는 웃기게 비꼬기도 해. 그렇게 초연하면서도 건조한 시어들 사이, 그의 시는 비극적 상황 속 희극적인 아이러니를 만들어내며 무서운 동력을 갖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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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도 내 삶은 어린 시절을 벗어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있어. 그렇기에 출생과 성장에 관한 고백이 내게는 먼 얘기가 아냐. 몸은 자랐어도 여전히 마음이 유년 시절 그늘 아래 묶여 있는 나는 끊임없이 ‘내가 자격 없는 어른인가?’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했지. 그런 내게 <에듀케이션>은 내 마음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자, 처방이 되어준 책이었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스스로를 ‘비성년’이라고 느끼는 연이들이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시집을 처방해주고 싶어.
언젠가 그 모든 상처와 단절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 나는 항상 내가 정제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었고 정형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글을 쓸 수 있었어. 비성년에 대한 고백의 글은 아마 그럴 수 없겠지. 완결이 나지도 않을 거고 말이야. 하지만, 어둡고 습했던 기억으로부터 잃어버렸던 내 조각을 찾아가는 그 과정도 레터에 꼭 남겨보고 싶어. 그날은 머지않을 거야.
내 처방을 받아서 시집을 읽은 연이들이 있다면 마음속 아픈 곳이 조금은 나아졌는지 이야기를 들려줘. 비성년인 연이들의 이야기를, 나는 기다리고 있어.
P.S. 레터에서 소개하진 않았지만, 내가 이 시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는 <나의 자랑 이랑>이라는 작품이야. 인스타그램 피드의 김러브 소개글 이미지 있잖아. 거기 맨 아래 글이 바로 이 시의 일부야. ‘세상은 자주/아름답고 이상한 사투리 같고’라는 표현, 참 아름답지 않아? 그 뒤로 간지럽고 기이한 기분이 들 때는 늘 이렇게 말했어. 시집 읽고 특별히 좋았던 시나 구절 있으면 답장 보내줘. 기다리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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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장함
김러브
Kim love
돌아갈 집이 없어
카페에서 김러브 글 읽고 별안간 눈물흘리는 여성…
눈물까지 흘렸다니 감동인걸. 집이 없다는 생경한 감각이 많은 사람에게 닿을까 의문스러운 점도 있었거든. 연이가 좋아해 줬다니 다행이다.
그리고... 나도 ... 가끔 눈 건조하면 그거 읽어 ... 내 눈물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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