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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tterist Jan 04. 2025

58년 개띠와 말장난.

퇴직 편집자의 시시콜콜.

며칠 전의 나는 “Since”라는 영어 단어의 뜻을 굳이 다시 한번 자세히 찾아보았는데 이는 내 영어 실력이 일천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국영수과사 중에서 늘 가장 자신 없던 과목이 영어이긴 했으나 아무리 그래도 그리 어려운 단어도 아닌 고작 Since의 뜻을 모를 리가 있었겠는가.


내가 Since라는 단어의 뜻을 다시 한번 찾아봤던 건 간만에 찾은 꽤 괜찮은 음식점을 이대로 놓치고 싶지는 않아서, 그리고 (김훈 식으로 표현하자면) 인간에 대한 연민을 또 버려내고 싶지는 않아서, 그래서였다.


Since :
1. ...부터
2. ...한 이후로, 한 때로부터, ...한 지
3. ...때문에, ...므로(여서)
4. 그(때) 이후로 (과거 어느 시점까지, 지금까지)


허나 Since라는 단어의 뜻은 내가 알고 있는 그대로였고 사전에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그 어떤 다른 뜻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쉬웠던 나는 이 쉬운 영단어에 비록 공식적인 뜻은 아니더라도 어떤 은어로서의 쓰임새라도 있는지를 확인해 보기 위해 영문 사이트도 여럿 뒤져보았으나 그런 비공식적인 다른 뜻조차도 이 단어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간만에 찾은 꽤 괜찮은 음식점을 잃었는데 이와 동시에 인간에 대한 연민을 또 한 번 버려내야만 했던 것도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놓고 얄팍한 기만을 행하는 자들이 음식으로는 또 무슨 장난을 칠지 도무지 알 도리가 없으니까, 그리고 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들이 되도록 많아지길 간절히 바라면서 정작 내가 그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러니까 이는 정말로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오늘의 이야기는 한 음식점에 대한 이야기다.




정말 괜찮은 음식점이었다. 메인 음식의 맛은 물론이거니와 기본 상차림 메뉴들의 맛도 대부분 훌륭했고(오이소박이 하나가 조금 별로였는데 이는 내가 원래 오이소박이를 싫어하기 때문이지 음식점의 문제는 아니었다) 종업원들은 친절했으며 실내는 깔끔했다. 붕어빵 하나를 먹기 위해서도 이제 지폐가 필요한 시대에 가격 역시 그럭저럭 합리적이었으며 가게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비록 썩 취향은 아니었으나 그리 시끄럽진 않았고 위치도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었으니 정말 여러모로 괜찮은 음식점이었다. 딱 하나, 식사를 하는 내내 마음에 걸렸던 것은 음식점 곳곳에 쓰여있던 한 문구였는데 그 문구의 내용은 이러했다.


"SINCE 1958"


가게 곳곳에 강조되어 있는 SINCE 1958 이라는 문구. 앞에서 다시 한번 굳이 확인해 보았듯 SINCE라는 단어는 언제 언제부터 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그러므로 SINCE 1958이란 구절은 당연히 ‘1958년부터 시작되었다’는 뜻일 것이며 그 단어가 쓰여있는 곳이 음식점이라면 이는 ‘이 음식점은 1958년도에 문을 연 음식점입니다’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당한 일일 것이다. 또한 저 구절을 본 이들 대부분이 ‘이야... 58년도에 문을 연 곳이면 이게 벌써 몇 년차야? 대충 한 60년도 더 된 곳이네? 이 집 완전 맛집인가 보다!’ 라는 감상을 느끼는 것 역시 매우 타당한 일일 것이다.


헌데 나는 왜 저런 합당한 해석과 타당한 감상을 제쳐두고 얄팍한 기만에 대한 언짢음을 느꼈는가? 하면 이는 단지 이 음식점의 내부가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거야 뭐 리모델링을 거칠 수도 있는 일이고 하니까. 내가 외면할 수 없는 위화감을 언짢게 느낀 것은 내가 지난달에 두 눈으로 무언가를 똑똑히 보았고 또 지지난 달에는 두 귀로 무언가를 선명히 들었기 때문이었는데 선명하게 들었던 것은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전혀 다른 음식점을 철거한 뒤 새롭게 인테리어 공사를 마무리 짓는 인부들의 망치질 소리였고 똑똑히 보았던 것은 가게 앞에 죽 늘어선 ‘신장개업‘ 축하 화환들이었다.


그랬다. 맛도 괜찮고 서비스도 괜찮고 가격도 괜찮고 거리도 가까운, 저 여러모로 괜찮은 음식점은 분명 24년 12월에 아예 새롭게 생긴 음식점이었다. SINCE 1958 이라는 구절이 가게 곳곳에 선명하게 쓰여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저 음식점에 대해 굳이 이런저런 정보를 더 찾아봤던 건 이미 거의 확실한 정황에도 불구하고 아직 미련이 남았기 때문이었는데 내 미련의 범위는 간만에 맛본 괜찮은 음식의 맛에만 걸쳐있지는 않았다. 이제 실낱같긴 하지만 나는 사람에 대한 믿음,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말로 남을 기만하지 않는 자들이 그래도 아직 꽤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미련이 남아있었기에, 그랬기에 저 음식점에 대해 이런저런 정보를 더 찾아봤던 것이다. 저 음식점의 이름과 1958이라는 숫자를 이리저리 조합해 가면서 말이다.


허나 나는 검색을 시작한 지 단 몇 분 뒤에 나의 모든 미련을 처연히 거둬들여야만 했는데 이는 인터넷에서 찾은 1958에 대한 저 음식점 측의 설명이 대충 다음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저희 XXX의 사장 ㅁㅁㅁ의 모친이신 ㅇㅇㅇ여사는 이런저런 요리를 잘하셨습니다. 그 ㅇㅇㅇ여사가 해주시던 제 어렸을 적 추억의 레시피를 되살려내어 XXX의 메인 메뉴들을 개발했습니다.

(중략)
 
근데 그 ㅇㅇㅇ여사가 바로 1958년생이십니다!


1958은 분명히 2024년에 문을 연 그 가게의 메인 메뉴 레시피를 만든 이의 출생 연도였다(하도 여러 다리를 건너가야 만날 수 있는 숫자인지라 이를 이야기하는 내 글마저 번잡스러워지는 것에 다시 한번 화가 치민다). 레시피가 개발된 연도도 아니고 그 레시피를 개발한 이의 출생 연도, 그게 바로 1958이었던 것이다.


이 지나친 말장난은 실낱 같이 남아있던 나의 믿음을 넉넉히 박살내버릴 만큼 충분히 지나쳤기에 나는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먹고살기가 퍽퍽한 세상이라는 것을 백번 감안하더라도 이건 좀 지나치지 않은가? 그런 식으로 한다면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은 SINCE 1446이란 말인가? (훈민정음의 반포가 1446년도다) 세상 만물은 각각의 뿌리를 찾아 올라가고 올라가다 보면 결국 다 ‘빅뱅’이라는 우주적 이벤트로 수렴되는 것일진대 그렇다면 아예 그냥 138억 년 전에 시작됐다고 적지 못할 것은 또 뭐란 말인가?


음식점 내부 곳곳에 강조되어 있는 SINCE 1958이란 구절을 보고 ‘아! 이 가게는 1958년생이신 누군가의 레시피를 사용하는, 2024년에 문을 연 가게구나!’ 라고 생각할 사람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이 말장난은 분명 지나쳐도 과하게 지나친 말장난이리라.


헌데 생각해 보면 이런 식의 말장난이 비단 SINCE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이런저런 것들에 의아함을 품곤 했다. 처음 우리나라에 수제버거 열풍이 불었을 때 내가 처음 했던 생각은 ‘맥도날드도 다 안쪽에서 사람이 손으로 만들고 있던데..?’였고, 학창 시절 방문했던 한 신발 가게에서 ‘이건 한정판으로 나온 모델인데요’ 라는 말을 들었을 땐 ‘따지고 보면 다 한정판 아닌가? 한정 없이, 그러니까 무한히 만드는 물건이라는 게 있기는 한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사긴 샀는데 그건 순전히 그 신발이 이뻐서였다)


물론 저마다 할 말이 있을 것이다. 공장에서 만든 패티가 아니라 직접 여기서 빚어서 굽는 패티라서 수제 버거라고 하는 거다, 그래도 이건 진짜 딱 1000개 한정으로 생산하는 거라서 한정판이라고 하는 거다. 봐라, 일련번호도 있다.


분명 다 맞는 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식의 말을 영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얄팍하고 불순하다. 말이란 결국 본질적으로 세상의 무언가를 표현해 내는 수단이며 세상 모든 것에는 다 저마다의 두께가 있는 법인데 말장난을 치는 이들의 말은 두께 있는 무언가를 은근슬쩍 저며낸다는 점에서 얄팍하다. 또 말이란 결국 말하는 이에서 듣는 이에게로 향하는 것일진대 말장난을 쳐대는 이들의 얇디얇은 저며냄은 늘 말하는 이들의 입맛만을 대변하고 듣는 이의 이익을 범한다는 점에서 불순하다.


하여 나는 꽤 오래전부터 말장난 치는 사람들이 좀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는데 세상은 어째 늘 나의 바람과는 반대로만 가는 듯하니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허나 ‘안타까움’이란 건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니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정말 크고 중요한 문제는 내가 안타까워하건 말건 간에 상관없이 앞으로도 세상엔 말장난을 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라는 점인데 나는 이를 분명하게 확신하기에 오늘도 내 기분은 영 좋지가 못하다.


어떻게 그걸 확신하느냐 묻는다면 뻔한 일 아니겠는가? 말장난을 쳐도 세상 사람 대부분은 쉽게 속아 넘어가주니까, '이거 얄팍한 말장난 아닌가?' 의심하고 확인하고 욕하고 발길을 끊는 이는 별로 없을 테니까. 그런 이가 있다 한들 말장난 치다 걸릴 위험과 감당해야 하는 손해보다는 말장난으로 누군가를 속여먹어서 얻는 이득이 훨씬 클 테니까. 그렇게 쟁취한 그들의 성공 속에서 그들의 말장난은 '노하우' 혹은 '꿀팁'이라는 포장지에 곱게 싸여 또 누군가에게로 전해질 테니까. 누군가의 말이 말인지 말장난인지를 알기 위해선 결국 무엇이든 스스로 찾아보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해야 하건만 이는 언제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 귀찮은 일일 테니까. 그에 비해 그냥 듣고 그냥 끄덕이고 그냥 움직이는 건 언제나 그저 편한 일일 테니까.


그러니 앞으로의 세상이 점점 더 말장난 치는 이들로 가득해질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 세상을 계속 세상이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맞는 말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것 역시 지나친 말장난일 듯하여 오늘 내 기분이 한 번 더 가엾다.



1446년 10월 9일, 훈민정음이 반포된 날에.

레터리스트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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