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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편지 Aug 06. 2021

24살에 공인중개사가 되었습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 시험 도전기


 두 테이블 떨어진 곳에 있는 내 시험지는 동그라미가 몇 개 없다. 아무리 가채점이어도 채점 하는 손이 곡선은커녕 직선만 그리고 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코가 시큰하다. 불합격이다.

 ‘망했군.’


 아버지가 권유했지만 시험을 보겠다고 한 것은 나였다. 졸업이 1년밖에 남지 않자 마음이 조급했다. 좋아서 선택한 전공이어도 공부는 재미가 없었다. 공무원이나 대기업 입사 준비를 할 생각은 없었다. 회사를 오래 다닐 만한 재주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즈음 아버지가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준비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젊었을 때부터 부동산 일을 했다. 돈을 버느라 자격증은 늦게 땄다. 중학생 때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면 아버지는 푹신한 방석을 깔고 공부만 했다. 3년을 내리 공부하던 아버지는 비염과 치질을 얻고 합격했다. 뒷날 아버지와 함께 공부했던 아저씨들에게 얘기를 듣자니, 합격한 날 아버지는 바닷가에서 울었다고 했다. 손목이 꺾일 것 같은 책 두께와 온갖 판례가 적힌 내용을 내가 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처음에는 “아니. 절대 싫어.” 라고 했지만 졸업이 가까워지자 ‘해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지원 하에 공인중개사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1월에 학원을 끊었다. 보통 10월에 시험이 끝나면 학원은 11월에 개강한다. 두 달 간격으로 커리큘럼이 진행되기 때문에 처음 시작한 나는 쌩 기초를 건너 뛴 셈이었다. 처음 수업을 든 생각은 ‘학원비 환불될까.’ 였다. 넓은 강의실에 빈 틈 없이 들어찬 수강생 중에 내가 제일 어렸지만 가장 멍한 사람은 나였다. 매매와 임대차가 뭐가 다른지 모르는 내가 민법이며 공법, 세법 등등 그 많은 법이 적힌 책을 보고 있자니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았다. 히터를 빵빵하게 튼 강의실에서 외국어 같은 말을 한참 듣던 내 얼굴이 푹 떨어졌다. 맞다. 졸았다. 첫 수업 1시간만에. 


 첫 수업의 감상을 묻는 아버지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 뭘 알아 들었어야 얘기를 하지. 졸았다고얘기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다 그렇다고 했다. 시험 때까지 반복, 반복, 반복 하다 보면 된다고 했다. 뭐가 된다고 하는걸까. 시험까지 8개월. 내가 과연 합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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