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열다섯의 사랑을 이제서야 부칩니다. 중학생인 나는 젖살도 빠지지 않은 앳된 얼굴로 세상살이를 조잘거렸습니다. 썩 친하지 않은 친구의 아는 사람이었던 당신을 어쩌다 만나게 됐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렸던 당신을 왜 이름으로 불렀는지도 가뭇합니다. 보나마나 어리게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중학생이 부르는 ‘ㅇㅇ씨’ 호칭에 비웃지 않았던 당신이 새삼 놀랍습니다. 나였다면 “으이구.” 하며 떡볶이나 사줬을 것 같은 데 말이에요.
그런 당신에게 단숨에 빠지게 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당신의 솔직함이 좋았습니다. 당신의 진심이 애틋했습니다. 어린 나의 고민을 깊이 받아들여 줄 때마다 마음은 부풀었습니다. 가족과 친구 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 당신을 통해 배웠습니다. 나는 당신의 생일에 꽃을 살 수는 없어도 100일 동안 매일같이 편지를 썼습니다. 당신이 힘들 때 술 한 잔 사주지 못해도 당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가득 담은 CD를 건넸습니다. 나는 아주 천천히 사랑을 키웠습니다.
우쭐했습니다. 어른인 체 해도 내 나이는 열다섯이었고 어리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꽤 괜찮은 어른인 당신이 나를 친구로 여겨주는 것이 뿌듯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당신의 삶을 면면들이 안다고 착각했을 뿐인데 그것이 나를 참 들뜨게 했습니다. 친구에게 당신의 얘기를 하면서 내 턱이 얼마나 들렸는지 내 가슴이 얼마나 펴졌는지 당신은 모를겁니다. 당신을 향한 사랑은 그 어느 때보다 투명했지만 어린 나는 스스로를 알아가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그게 내 과오입니다.
그 때의 나에게 동경과 사랑은 한 끗 차이라고 누군가 알려주었다면 어땠을까요. 매번 사랑으로 기우는 마음의 멱살을 잡고 동경이라는 위치로 밀어붙였습니다. 멋진 사람을 동경하지 않고 사랑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 때의 나는 몰랐습니다. 당신의 체온이 필요하지 않아도 당신이 그립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나는 당신이 사랑이라고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게 내 치기입니다.
K. 그간 나는 치열하게 사랑을 배웠습니다. 가슴이 녹는 기분에 입술을 깨물어 멍이 들기도 했습니다. 밤새도록 누군가의 잠 든 얼굴을 보기도 하고 한겨울에도 추운 줄 모르고 누군가를 기다렸습니다. 열다섯의 나와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에 가닿았습니다. 행복한 순간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당신 생각을 합니다. 당신을 만나고 자랄 수 있었습니다.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