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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편지 Aug 04. 2021

출근하지 않는 기쁨

코로나 시대의 퇴사


 “여름씨는 퇴사하면 뭘 할 계획인가?”


 세 달 전, 퇴사를 앞두고 아주 불편한 식사 자리가 있었다. 내 직속 상사와 상사의 상사와 담당까지. 비싸고 맛난 회를 먹는 것은 좋았지만 상사들의 모임에 주책 없이 낀 것만 같아서 입꼬리만 당기고 있었다.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하핫..”이 전부였다. 갑자기 받은 질문에 그 의미를 못 알아채고 꺼벙한 답이 나왔다.


 “일단 좀 쉬고 하고 싶었던 일 해보려고 합니다.”


 내가 생각해도 재미 없는 답변에 담당은 아무 말이 없었다. 퇴사 후 계획을 구구절절 얘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 자리에서 정말 내 계획이 궁금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후임자를 구할 때까지 좀 더 있어달라는 요청을 받은 상태였다. 무엇보다도 퇴사 후 계획이 없었다. 적당한 월급, 적당한 업무 강도, 적당한 복지여서 들어온 회사지만, 출근해서 자리에 앉을 때마다 ‘나 여기서 뭐하는거지?’ 라는 생각만 들었다. 회사의 성장과 나의 성장 중에서 어느 것 하나도 가져가지 못했다. 그저 빚을 갚기 위한 근로에 점점 의욕을 잃어갔다. 이대로는 회사에도 민폐이고 나에게는 더 못 할 짓이라고 느꼈다.


 운이 좋았다. 체계가 잡힌 회사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내 상사가 얼마나 유연하게 이슈를 해결하는지를 보았고 직원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서 회사가 내놓는 정책에 매번 감탄했다. 진심 9%의 스몰 토크가 빚어내는 유대 관계와 사이 좋게 너 한 번, 나 한 번 실수하면서 쌓아가는 의리를 배웠다. 회사를 그만둔 후에야 알 수 있었다. 별로라고 생각한 상사라도 진급한 이유가 딱 하나는 있었고 쌍팔년도 식으로 운영하는 회사라고 생각하면 그 다음 번에는 반드시 새 매뉴얼이 나왔다.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나 하나였다.


 퇴사 후 두 달을 늘어지게 보냈다. 양심상 맞춰놓은 10시 알람에 눈을 뜨면 행복해서 발을 동동거렸다. 유튜브를 뒤적이다가 지루해지면 책을 읽고 산책 하며 매일을 보냈다. 대수롭지 않게 나간 글쓰기 모임에서 의욕적인 사람들을 만났고 팟캐스트 기획에 숟가락을 얹었다. 남들이 내 글을 보는 것이 거북해서 비공개로 글을 올리던 내가 브런치에 쓰고 싶었던 글만 쓰게 되었다. 코로나 시대의 퇴사생은 불안하지만 더 없이 풍요롭다.


 지금 나는 어린 시절과 가까이 있다. 사소함을 사랑한다. 재밌는 생각은 매일 피어난다. 잘 하고 싶어서 설렌다. 이렇게 가슴이 뛰는 것이 낯설다. ‘나 이런 사람이었지.’ 라고 생각한다. 다시 회사를 가더라도 지금의 행복은 아주 오래 머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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