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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편지 Aug 16. 2023

여름 공원 1

어제도, 내일도 홀로


 여름의 한 가운데에 있다. 우렁차게 우는 매미 소리에 깨면 토요일 아침임을 안다. 일어나서 씻고 밥 먹고 더 더워지기 전에 나가야 한다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으며 생각한다. 요즘은 날씨를 챙겨보지 않는다. 어제도 맑았고 오늘도 맑고 내일도 맑을 테니까. 일년을 기다려온 여름이 드디어 왔다. 해가 갈수록 숨이 막히는 더위에 걱정스러우면서도 여전히 여름을 기다린다.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는 여름이 왔다.


 작열하는 여름 볕에 집을 나서는 것이 두렵다. 내리꽂는 불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무성히 자라는 나무를 보며 어디든 가야지 하고 생각한다. 모두가 살아서 움직이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이런 날에 가는 곳은 단 하나이다. 평일에 사람과 일에 치인 주말의 인간은 심신을 보전할 요량으로 공원으로 향한다. 이렇게 더운 날의 공원은 사람보다 고양이가 많다. 털복숭이 고양이들은 에어컨을 틀 수도 찾을 수도 없으니 그늘 밑에서 몸을 쭉 뻗고 누워있다. 평소라면 털복숭이들의 관심을 받아보려 야옹 소리를 냈겠지만 이 더위에는 적당한 무관심이 서로를 구한다. 털 없는 인간도 더위에 머리가 핑 돌면서 그늘 밑 벤치에 주저앉는다. 그늘에 들어오면 같은 바람도 다르게 느껴진다. 조금 더 청량하고 조금 덜 숨가쁘다. 꽤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저 멀리 공원 입구가 보인다. 이 짧은 거리를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더운 날에 나선 산책을 후회하면서도 바람에 조금씩 땀이 식는다. 


 여름의 공원은 틈새에 기쁨이 있다. 목덜미가 지글거리는 것 같지만 얼굴이 익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할 때쯤 발끝에 그늘이 진다. 올려다보면 나무 몸통에서 한참을 멀리 뻗어 나온 나뭇잎들이 바람에 일렁이며 볕을 가린다. 몇 발자국만 더 가면 다시 뙤약볕이지만 그 뒤에는 나무가 만 든 쉼터가 기다리고 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볕에서 자라고 그늘에 몸을 누인다. 어느 날은 빛과 바람을 맞으며 자유롭게 움직이다가도 어느 날은 모든 것이 매섭게 느껴져 웅크리기도 한다. 이제는 일 년 전의 일도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 때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지. 어떤 생각을 하고 누구를 만나고 얼만큼 나아갔던가. 단번에 떠오르지 않는다. 고통스러운 일은 한겨울에 눈밭을 서성이듯 강렬하지만 그 역시 날이 따뜻해지면 언 발이 녹듯 스러져갔다. 고요함만이 가슴에 남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볕에 잘 널어두면 꼬깃꼬깃하던 마음마저 펴져 바람에 훌쩍 날아가고는 했다. 하지만 마음 속에 똬리를 튼 것은 영원히 혼자라는 생각이었다.


 사는 것이 재미있느냐고 동료가 물었다. 그럴 듯한 대답을 하고 싶었는데 입에서 그냥 산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가슴 깊숙이 묻어놨던 진심이 소리가 되어 튀어나왔다. 매일이 큰 기쁨인 것처럼 감사하며 살아보려고 했지만 잘 안됐다. 매일은 그냥이고 그 속에 희로애락이 적절하게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큰 기쁨에는 큰 슬픔이, 작은 즐거움에는 작은 노여움이 있었다. 그뿐이었다. 가끔은 끝 모를 외로움이 찾아왔다. 매일 느꼈던 감정들이 아닌 어딘가 이상하고 왠지 모르게 익숙한 것. 내가 혼자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던가. 홀로인 것이 당연한 날들이 아니었던가. 지난 몇 달 간 똑똑히 알아차릴 만큼 관계에 변화가 생겼다. 간절히 원한만큼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안정감이 나에게 찾아왔고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친구를 만났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름조차 몰랐던 사람이 내 슬픔의 언저리를 헤아렸고 십 년을 넘은 인연이 어제 헤어진 사람처럼 멀어졌다. 소용돌이치는 관계의 흐름 속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사는 것이었다.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도 오늘처럼. 그냥 홀로.


 어느 날은 혼자임이 두려워 혼자를 선택한 것이 아닌지 생각했다. 어느 것에도 매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사실은 단단한 뿌리를 내리며 살고 싶은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여전히 영원이라는 환상에 빠져있는 나를 발견한다. 영원이라는 태양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어서 그 빛을 등지며 사는 나를 본다. 모든 것이 변한다. 그래서 다행이다. 때로는 어느 순간에 모든 것이 사라지고 세상에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괴로워한다. 널뛰는 감정에 어리둥절한 가운데에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혼자 사는 삶을 내가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이 내 앞에 있다. 가끔 훗날의 삶을 그려볼 때면 늘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창문 밖으로 울창한 나무가 보이고 창가에는 따뜻한 볕을 쬐며 누워있는 고양이와 그 옆에서 책을 한가득 쌓아놓고 글을 쓰고 있는 나. 그 공간에서 나와 고양이는 완벽히 혼자는 아니지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원하는 일을 하며 각자 홀로 거기에 있다. 상상 속에서 나는 여전한 두려움에도 스스로가 선택한 삶을 잘 지켜간다. 인간과 고양이가 이루는 균형이 만족스러워서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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