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낭성 난소 증후군
다낭성 난소 증후군을 진단받은 것은 스물한 살 때였다. 질염을 치료하기 위해서 방문한 산부인과였고 처음으로 질 초음파 검사를 받으면서 알게 되었다. 이름마저 생소한 다낭성 난소 증후군은 여성들에게 흔히 나타난다. 확실한 원인도 없고 치료도 없다. 처음 진단받았을 때는 꽤 규칙적으로 생리를 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증상은 조금씩 달라졌다. 28일~33일 사이를 유지하던 생리 간격이 점점 늘어났고 두 달에서 두 달 반을 건너뛰는 경우도 허다했다. 생리를 하지 않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임신 계획이 없는 나는 제 때 시작하지 않는 생리가 피임의 실패가 아닐까 매일 밤을 뒤척였다. 턱과 목을 뒤덮는 여드름도 나의 에너지를 빼앗는 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 몇 년 사이 증상이 심해지면서 약을 처방 받았다. 병원에서 처방하는 약은 피임약인 ‘야즈’인데 한 통이 자그마치 3만원이다. 하지만 피임의 불안과 피부 스트레스에 비하면 값싸게 느껴졌다. 약은 꽤 효과가 있었고 지금까지 잊지 않고 챙겨먹는다.
이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서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봐도 난임과 불임의 원인이라는 말 외에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임신을 하지 않기 위해서 매 달 착실하게 콘돔을 사는 여성은 이 질환의 대상자가 아닌 것 같았다. 양한방을 가리지 않고 넘쳐나는 광고에 질리자 그제서야 의사의 말이 생각났다. 너무나 교과서적인 말이라서 염두에 두지도 않았던 말. “땀이 나는 운동을 하세요.”. 인생에 운동의 구역이라고는 없는 나는 당연히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포궁에 범상치 않은 여러 개의 구멍을 보고 난 후로는 군말 없이 운동을 시작했다. 처방약과 운동이 합쳐지자 빠른 속도로 증상이 줄어들었다. 규칙적으로 생리를 했고 피부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약을 먹으면 생리 양도 줄어들기 때문에 더 없이 쾌적하게 생리 기간을 보냈다. 하지만 약을 끊거나 운동을 하지 않으면 원상태로 되돌아왔다. 돈과 시간을 쓰면 증상을 완화시킬 수는 있었지만 완치할 수는 없었다.
지긋지긋한 질환의 굴레에 빠진 나는 포궁을 들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불치병도 치료약이 나오는 세상에 여성의 몸에 관련된 질환 하나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냥 없애고 마음 편히 살면 되는 것 아닌가. 포궁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생각할 틈도 없이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나의 포궁이 무슨 죄인가. 그저 내가 포궁이 있는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일 중 하나이다. 그것이 내 몸의 혐오로 이어지는 것은 나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었다. 평생을 인간의 몸이 아닌 대상화된 몸으로 평가 받으며 내 몸을 미워했다. 누구에게는 기능으로 보이는 몸이 누구에게는 꼬리표가 덕지덕지 붙여진 몸으로 보인다. 그 무수한 꼬리표에 내가 붙인 이름은 없었으면 했다.
여전히 오후 9시가 되면 알람이 울린다. ‘♡약먹자♡’라는 사랑스러운 문구가 적혀있다. 다음주에는 내 포궁을 보러 간다. 건강검진 전에 갑자기 좋은 음식을 먹듯이 이번 주에 황급히 운동을 시작했다. 초음파 사진이 전과 같으면 마음이 허망하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내 몸을 미워하는 대신 귀엽게 송송 뚫려있는 구멍을 메꾸며 살기로 했다. 여성의 몸을 혁신적으로 연구하고 치료법을 개발하는 세상이 오기를 기도하는 것보다 내가 내 몸을 사랑하는 일이 더 빠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