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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올뺌씨 Apr 11. 2022

여행 초보자의 좌절 로맨스

무계획 무대책 도쿄여행기 2

아침이 밝아온다.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맞이하는 아침이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떠오르는 햇살에 공기마저 상쾌한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잠은 제대로 못 잤다.


혼자 계획하고 떠나는 첫 해외여행이었는데, 쉽게 잠이 들 수 있을리 없었다.


침대에 누워서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다가 잠깐 쪽잠을 잔 게 전부인 것 같다.


본토의 돈코츠라멘, 만화 초밥왕에서나 보던 살살 녹는다는 초밥, 계란 노른자 톡 터트려 먹는 햄버거 스테이크가 눈앞에 아른아른거렸다.


게다가 잠이 안 왔던 제일 큰 문제는 잘 숙소도 예약을 안 해놓았다는 것에 있었다.


그냥 무작정 떠나고 도쿄를 거닐며 찾아볼까 하는 운치 있는 생각을 했다. 물론 오분도 지나지 않아 바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우리나라처럼 동네 여인숙이나 모텔 같은 게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캐리어를 달달달 끌면서 이곳저곳 돌아다니자니 생각만 해도 힘들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여차하면 가는 곳곳마다 ‘방 없어요’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게임이나 만화의 한 장면처럼 공원 구석에서 골판지를 덮고 자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념비적인 첫 해외여행을 국제적 노숙자로 발돋움하게 되는 계기로 만들 생각은 없다.


하여 방구석에서 인터넷 검색에 매진하여 한국인들이 많이 묵는다는 한인 민박집을 찾아서 예약하기에 이르렀다.


한인 민박집을 이용하게 된 계기로는 가격이 저렴해서였다. 일반 관광호텔이 1박에 약 7~10만 원 정도였는데 한인민박의 경우 단돈 3만 원에 1박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여러 여행자들이 모이는터라 아무런 정보 없이 떠나는 이번 여행에서 정보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단지 3-4명이 한 방을 쓴다는 부분이 조금 걸렸는데 2인실을 잡으면서 어느 정도 문제를 덜었다.


부디 방을 같이 이용하는 사람의 코 고는 소리에 잠 못 드는 일만은 없기를 바랬다.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에 뭐 빼먹은 거 없나 체크하면서 오늘 하루의 일정을 체크해보다가 제일 중요한 환전을 빼먹었다는 걸 알게 됐다.


부랴부랴 집에서 가까운 은행으로 뛰어갔다. 지나가는 길 대형 음식점의 유리문 사이로 비추는 TV에는 환율 폭등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환율 폭등!!!


하필이면 왜, 이때!


환율 폭등으로 인해 전날 1400원대이던 엔화가 1500원대로 올랐다.


눈이 아릿한 게 눈물이 새어 나올 것 같았다. 예전에 여행하려고 알아봤을 때는 900원 1000원대였던 것 같았는데……



은행에서 환전을 끝내고 짐을 마저 꾸려 공항으로 향했다.


출발시간 4시간 전, 여유 있게 도착했다.


괜시리 늦어서 허둥지둥 나 홀로 집에 찍느니 대기를 오래 하더라도 여유롭게 가자는 마음가짐이었다. 


문제는 너무 여유롭게 와서 티켓팅조차 불가능한 시간이었기에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푸드코트에서 제육덮밥 한 그릇을 하고 수속을 시작했다.



나의 첫 여행에 응원이라도 보내듯 공항에서는 남, 여 승무원 분들이 연말 감사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면서 공항 이용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일찍 와서 면세점 구경이라도 하려고 했더니 김포공항은 면세점이라고 할 수 있는 매장이 딸랑 두 군데밖에 없었다.


구경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대기 벤치에 가만히 앉아서 한 시간 반을 앉아있었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에 태블릿으로 적절하게 시간을 때우면 돼지만 이때만 해도 피쳐폰을 쓰던 때라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면 실시간으로 패킷 요금이 부과되던 시기였다.


공항 대형 TV에 나오는 방송을 보거나, 가만히 앉아서 사람들 지나다니는 거 구경하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그래도 한창때의 청춘이었기 때문일까 공항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과연 내 옆자리에는 누가 앉을까 하는 묘한 기대감이 피어오른다.


“안녕하세요 일본에 여행하러 가는 거예요?”


“아, 네. 그런데 일본이 처음이라 어디를 어떻게 다닐지 걱정이네요.”


“어머 그래요? 괜찮으면 제가 괜찮은 곳 안내해드릴까요?”


“에에? 정말요? 이거 참 안 그러셔도 되는데… 하하핫…”



하하하하핫……



상상하니 설레는구만. 


헤어짐을 고한 여자 친구에 대한 걱정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린 지 오래였다.


보딩 시간이 다가왔고 나는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아직 옆자리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기에 설레임은 기대감으로 바뀌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실례합니다 (失礼します)”


순도 100%의 남정네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매우 건장하신……


그럼 그렇지, 내가 로맨스는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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