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 170

아쉬워!

by Letters from J

어릴 적부터 나는 언제나 맨 뒷자리였다. 항상 남들보다 큰 키를 갖고 있던 나에게 맨 뒷자리는 너무나 당연한 자리였다. 대나무처럼 키가 무럭무럭 자라 13살이 되던 해 나는 169cm가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큰 사람 중 가장 작은 169로 이제까지 살아왔다. 내 키가 더 이상 크지 않는다는 걸 명확히 알게 된 어느 날 엄마는 한 마디 탄식을 내뱉었다. “아, 이왕 클 거면 170cm는 넘기면 좋았을 텐데…” 그때부터 나에게 170은 마의 170이 되었다. 닿고 싶으나 닿을 수 없는 1cm였다.


그렇게 169로 계속 살면서 중학생, 고등학생, 재수생을 지나 대학에 입학하기 전 잠깐 플라잉 요가를 두 달가량 열심히 했었다. 플라잉 요가의 대표적인 몽키 자세를 특히 재밌어했다. 몽키 자세는 천골에 천을 걸고 두 팔과 머리를 바닥 쪽으로 다리를 천장 쪽으로 들어 올린 자세이다. 마치 산속 약수터에 가면 있는 까꾸리와 같이 눌린 장기와 척추를 펴는데 아주 효과적인 자세였고, 그 덕분에 숨은 키를 0.8cm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170은 마의 170이었다. 이번엔 딱 0.2cm가 부족해서 170을 넘지 못했다. 엄마는 또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아깝네.” 별 뜻이 없던 둥그런 그 말은 내게 와서 뾰족하게 박혔다. 내 키가 여기서 멈춘 게 내 탓인가? 엄마도 170이 안되면서 왜 나한테 뭐라고 하지?


지금 나는 마의 170을 돌파했다. 장장 10년을 아쉬워하던 그 마의 170을 돌파했다. 이게 이렇게 쉽고 간단하게 되는 거였나? 플라잉 요가 이후 손 놓고 있던 운동을 다시 시작한 지 단 두 달 만에 170을 넘겼다. 종합검진을 받던 중 우연히 170.7cm가 된 것을 발견했다. 너무 놀라며 하이톤으로 “어?”라고 외치자 검사를 해주시던 간호사 분께서 “왜요? 원래보다 작게 나왔어요?”라고 물어보셨고, 얼떨떨해하며 나는 “아니요… 저 170이 넘었는데요..?”라고 답했다.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웃으면서 “축하드려요.”라는 말을 건넸다. 마의 170을 이렇게 어이없게 돌파할 줄이야. 10년 넘는 나의 바람이던 170을 단박에 넘겼다. 사실 숨어 있는 키를 필라테스로 찾은 거라고 생각한다.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운동을 꾸준히 했으면 애진작에 170으로 살았을 걸! 이제야 170이 넘는 삶에 도달했다니! 아쉬워!


#찬란한 추락 #첫 번째 칸 #나의 이야기 No.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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