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la Vie)

나에게 주어진 것

by Letters from J

살아오면서 무수히 많은 선택을 했다. 앞으로도 나의 앞엔 수많은 선택지가 놓여 있을 것이고, 나는 반드시 어떤 것은 선택하고 어떤 것은 놓아줘야 할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지금 나의 삶 그 자체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수많은 선택을 강요하는 삶이 정작 그 스스로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는 게 참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어쩌면 삶은 유일하게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채 영위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내게 삶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선택하지도 않은 이 삶이 나를 가장 괴롭게 만든다. 언제나 정해진 선로 위에서 무난한 선택을 해왔다. 그러면 큰 흔들림 없이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학교를 가면 이다음 선로가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랬다. 대학에 올 때까지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다음 선로가 깔렸다. 스물여섯, 취업준비생으로 살고 있는 지금, 내 인생의 선로는 제멋대로 산개해 있다. 제대로 깔린 선로 하나 없이 모든 방향으로 모든 선로가 드문드문 흩뿌려져 있다. 열심히 이 선로를 달려왔는데, 더 이상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나?’, ‘앞으로 내 한 몸 건사할 수 있을 것인가?’ 계속해서 꼬리를 무는 미친 불확실성이 나를 괴롭게 만든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괴롭게 하는 이 삶을 놓을 수 없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이제껏 선로 위를 달리며 본 풍경을 이미 기억하고 있다. 항상은 아니었지만, 순간순간 아름다운 풍경들이 반짝일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 순간의 반짝임을 탐닉하기 위해 나는 계속해서 이 삶을 살아갈 것이다. 괴로움이 나를 아무리 아프게 해도,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이 여기 있기에 나는 계속해서 여기 이 삶을 살아갈 것이다.

#찬란한 추락 #첫 번째 칸 #나의 이야기 No.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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