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천국 - 하루는 지옥, 매일이 담금질
올 것이 왔다. 미운 세 살.
이지 베이비인줄만 알았던 (사실 이지 베이비이긴 하다 여전히) 딸아이는 말이 늘고 할 줄 아는 게 많아지더니 일단 뭐가 됐든 "아니야"라고 내뱉고 보는 폭군(?)이 됐다.
그 옛날엔 미운 일곱 살이었다는데,
몇 년 전엔 미운 네 살이라 그러더니, 요즘엔 한 살 더 어려져 '미운 세 살'이라 한다는 말만 들었지 그게 우리 집 이야기일 줄이야...
일단 세 살이 되고 난 후 딸아이는
- 엄마나 아빠가 하는 말에 "아니야", "싫어"로만 화답한다. 가끔 우리의 제안에 "좋아"라고 답할 때가 있긴 한데, 주로 "사탕이나 젤리 먹을래?"로 주의 환기를 요구할 때 듣는 답이라 들으면서도 마냥 좋지가 않다. 죄책감이 든다.
- 내가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준 행동을, 아주 능청스럽고 능글맞게 보란 듯이 해 보인다. 높은 곳에 올라가지 말라고 주의를 주면, 그 말을 찰떡같이 이해하고서는 '나는 할 거지요~ 할 줄 아는데?'라는 표정으로 "이렇게 하면??"이라고 외치면서 높은 곳에 올라간다. 장난기 넘치는 표정과, 저 어린것이(27개월) 능청을 떤다는 사실이 놀라워 귀여운 날이 더 많지만, 아침 출근 준비하는 와중에 그렇게 굴면 진짜 "열받는다".
- 하기 싫은 것과 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뚜렷하다. 하기 싫은 걸 요구하거나, 힘으로 제압해하려 치면 그냥 냅다 누워버린다. 바닥에 아기 매트가 있으니 다행인데, 아닌 곳에서 그럴까 걱정이다. 그런데 소름인 점은 아기 매트가 없는 곳에선 안 그런다. 매트 위에선 그래도 다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안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인내심이 꽤 강한 편이라고 자부해 온 사람인데 그럼에도 늘 그날의 한계가 턱 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게 느껴진다. 그래도 웬만한 날들엔 괜찮게 넘어간다.
그런데 가끔씩 그러지 못한 날들이 있다. 회사일이 바쁘고 마음이 안달이면, 얼른 아이를 그야말로 '위탁해 버려야' 뇌가 돌아가고 제대로 된 의사결정이 가능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오는 것이다. 엄마의 모드를 얼른 스위치 오프해 버리고, 직장인 모드를 스위치 온 해버려야 온전히 일에 집중해 일을 빨리 끝낼 수 있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아침 출근 준비 시간에 아이가 저렇게 나오게 되면 그야말로 마음에 여유가 없어진다. 아이를 재촉하게 된다. 시간 개념도 없고, 죄책감도 없고, 잘못이 뭔지도 모르는 27개월 아이를 두고 '딜'을 하려 든다.
가장 큰 문제는 어떤 날엔 저 행동들을 용납하고, 어떤 날에는 내가 터져버린다는 것이다.
그저께가 그런 날이었다.
회사에는 할 일이 쌓여있는데, 내복을 벗긴 아이가 옷을 입지 않겠다 이유 없이 드러누워버려 옷을 입히고 집을 나서는 데만 무려 30분이 걸린 것이다. 30분의 실랑이 중 마지막 5분 간은 정말 마음이 지옥이었다. 그 전 날 밤에, 목욕하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뽀얀 피부의 예쁜 딸이 쫑알쫑알 뱉어대는 어눌한 말에 마음이 홀라당 녹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아줬던 게 후회가 됐다. 내가 어젯밤 천국을 맛보니 오늘 아침이 더 지옥 같구나 싶어서.
"엄마 눈 봐!" "자꾸 왜 그래?" "네가 도와줘야 엄마가 아침에 일하러 갈 수 있다고 했지?" "우리 늦었는데?" "왜 옷이 입기 싫어? 뭐 때문에 속상했어?" 등의 말을 반복하며 옷을 입히려 들어도 요지부동이었다.
하긴, 저 말들 중 내 기준 중요한 '일'과 '시간'이라는 개념을 아이가 알리가 없다. 아이에겐 놀아도 놀아도 끝을 모르게 재밌는 '본인의 기분'과 본인과 놀아주는 '엄마'만이 중요한 세계이겠지.
그래서 저런 말들을 내뱉다 말 그대로 '현타'가 오는 것이다. 회사는 늦을 것이 확실해지고, 그때 차라리 에라 모르겠다 심정으로 내 마음을 좀 놔 버리면 그제야 아이는 옷을 입으려 든다.
엄청난 밀당이다.
그러고서는 갑자기 노래를 부르고 나에게 달려들고, "엄마, 서아가 노래할게요" 라며 티 없는 얼굴을 들이밀면 나는 결국 무장해제된다.
날마다 엄마의 반응이 다르니, 아이 입장에서는 '적정선'을 모를 것 같다. 그리고 어찌 해도 결국엔 본인에게 무장해제돼버린다는 걸 경험으로 겪어서 엄마의 사랑과 용서가 너무 당연하게 느껴질 것 같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훈육이란 게 가능하긴 한 걸까 걱정인 요즘이다.
내 기분에 휘둘리지 않고, 아이에게도 휘둘리지 않으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말간 얼굴의 딸을 어떻게 잘 키울 수 있을까 고민이 점점 많아진다.
건강만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정말로 '신체'에만 관한 것이었는데, 어느덧 건강한 신체를 확인하고 나니 '마음'만큼 건강이 중요한 게 또 없지 싶은 것이다.
요즘 정말 놀라우만치 이상한 아이들이 많던데 혹시나 어떤 골든타임을 엄마 아빠가 놓쳐 버려 우리 딸도 그렇게 되면 어쩌나 그런 걱정을 하게 된다.
금쪽이를 그만 봐야 하려나...
금쪽이를 보면 다가오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만 늘어나는데, 금쪽이만큼 훈육 팁을 잘 주는 채널도 없다.
살면서 내가 만난 미션 중 가장 어려운 것임은 틀림없다. 이러니 속 시끄러운 세상에, 요즘 사람들이 아이를 낳기 싫어하는 것이란 생각도 들긴 한다. 금쪽이로 극상 난이도의 육아를 간접 체험한 미혼인들이 육아를 겪고 싶어 할 리 없다는 쓸데없는 걱정으로 오늘을 마무리해본다.
사실 이 글은 에버랜드 때문에 시작된 것 같다.
설레는 마음이 큰데..! (내일 에버랜드 딸이랑 처음 가 봄)
내일 벌어질 수많은 실랑이 상황들을 예측하다 보니 그저께의 지옥이 다시 생각난 것이다.
잘 해낼 수 있으려나..... 으으으!!!!!
+ 다행히 에버랜드는 환상의 나라였고,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아 신난 딸은 세상 이지베이비인채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히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