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살에 미망인이 된 어떤 분의 브런치 글을 보다가, 엄마 꿈을 꾼 지가 오래되었단 걸 깨달았다. 메모 앱을 켜보니, 올해 2-3월이 마지막이었다. 엄마가 언제 또 나타나주려나.
일상에 치여 엄마에게 무뎌져가는 듯한 내가 미안해진다. 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7년 전 내 생일날, 엄마가 떠났으니 엄마 없이 꼬박 7년을 살았다. 이러다 언젠간, 엄마 있이 산 날보다 엄마 없이 산 날이 길어지는 때가 온다 생각하면 내 자신이 불쌍해진다. 엄마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할 그 나이의 내가 벌써부터 안 됐다.
마지막엔 이런 꿈을 꾸고, 이런 생각들을 했었네. 치열하게 산 8개월이 무색하게 갑자기 엄마에게 미안해진다. 미안함을 달랠 길은 그런데 하나밖에 없다. 내 인생을 열심히 사는 것뿐이다. 묘하다. 열심히 사니 엄마에게 무뎌져 미안한데, 엄마에게 더 이상 미안해지지 않으려면 열심히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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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는 누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 누워있다.
가까이 가서 이불을 들추려 하자 아빠가 엄마 아프다며 들추지 마라 한다. 기어코 들추니 엄마는 잠깐도 나를 보지 않고선 눈을 감은 채로 아프다고. 두 사람 이상 가까이 오면 숨이 안 쉬어진다고 한다.
그렇게 마음이 먹먹한 채로 깨어났다.
너무 오랜만인데
건강한 모습으로 나와주지.
아니다. 나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엄마
보고 싶어요.
엄마 혼자 늘 외롭게 누워있던 그 침대에서 나는
서아랑 자고 있었어요.
내가 알 리 없는 크기의 고통으로 늘 끙끙대던 그곳에서.
마지막 날들엔 내가 함께 누워있던 이 침대에서.
요즘의 내가 하는 걱정들은 대단히 미래에 대한 것들이긴 하지만 사소한 걱정들이에요. 어떻게 하면 더 잘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들. 잘 안 풀린다 해도 사는데 지장 없는 것들.
엄마와 이 침대에 누워있던 날들의 내가 했던 걱정은 코앞에 닥친 것들이지만 너무 중대했어요. 내일은 엄마 배에 복수가 얼마나 찰까, 뭘 먹어야 엄마가 그나마 행복해할까, 이번에 병원에 입원하면 얼마나 오래 있어야 할까, 엄마의 짜증에 나는 덜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을까, 내일의 엄마는 조금 더 걸을 수 있을까, 내일의 엄마는 얼마나 나빠질까, 엄마는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지금은 대체적으로 행복하고, 그때의 난 대체적으로 불행했는데요. 그래도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작은 것 하나에 진심으로 기뻐했다가, 슬프고 허망한 미소를 보이기도 했다가, 짜증에 바르르 떨기도 했다가, 아빠를 오라 가라 부리며 심술을 내기도 했다가, 억울해 죽겠다는 듯 울기도 했다가, 또 마침내 웃던 살아있는 엄마를 볼 수 있을 테니까요.
92살의 상규오빠네 외할머니, 그보다 좀 더 어린 이모할머니를 떠올리며, 우리 엄마한테는 왜 저 정도의 긴 생명이 허락되지 못했나 아쉬워요. 그때의 엄마가 있다면 나는 정말 자주 연락하고, 자주 들여다보고, 자주 함께 여행하고 할 텐데. 마음속에서 친구 혹은 연인과의 시간과 엄마와의 시간을
저울질해 보다 엄마를 선택해서 부산에 내려오는 그런 치기를 부릴 것 없이 무조건 엄마가 일 번일 텐데.
아무 걱정 없이 엄마와 살 부대낄 수 있었던 마지막 시절의 내가 고작 23살이었다니. 그로부터 6년을 꼬박 항암치료하는 엄마를 애달파하고, 가끔 시간을 내 엄마랑 함께하고, 검사 결과에 맘 졸이는 날들로 보냈다니. 우리에게 허락됐던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나 짧았던 것 같아요. 내가 서아와 이때까지 보낸 시간을 다섯 번만 보내면 끝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지는 걸요.
우리 서아에게 나는 그것보단 더 오래오래 머물다 갈게요. 어떤 큰 뜻이 있어 하늘이 엄마를 먼저 데려갔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뜻에 지지 않고 오래오래 살아볼게요.
너무 오랜만에 꾼 엄마 꿈이라 죽어도 놓아주기 싫었어요. 25분을 끄적였네요. 또 나타나줘요. 사랑해요.
24.02.11 am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