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몇 년의 시간이 남았을까

by 재주껏빛나는

가끔 딸과 있는 내 모습을 보거나, 딸과의 스케줄로 빼곡히 채워진 나의 주말 이야기를 듣거나, 혹은 맞벌이지만 그 누구의 손을 빌리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를 알게 되는 사람들은 나에게 말한다.


’그렇게까지 하는 건 진짜 대단하다‘ 고 말이다.


확실히 딸이 나에게 온 뒤, 나의 모든 우선순위는 바뀌었다. 야무진 엄마라기보단 오히려 딸바보에 가깝다.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 애쓰고, 내 것을 살 때보다 딸의 물건을 살 때 결제 버튼으로 넘어가는 속도가 곱절은 빠르다. 주말에도 무엇을 하며 이 아이를 즐겁게 할까 고민한다. 셀카는 거의 없고, 앨범엔 아이 사진과 영상만 한가득이다. 일하는 나를 좋아하지만, 하원 시간이 되면 일단 다 접고 본다. 진득하게 더 붙들고 앉아있다는 게 이제는 나와 거리가 먼 일이다. 야근은 가끔 부릴 수 있는 사치다. 친구들과의 약속 역시 아이가 없던 시절의 20프로도 안 될 거다. 사실, 세상 모든 엄마들이 비슷하지 않을까? 어쩌면 이런 나의 마음은 다른 엄마들의 마음에 비해 그다지 특별할 것 없다. 어느 부모나 자식이 생기면 그런 전환을 맞게 된다.


다른 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눠봤을 때 내 마음이 조금 다른 건, 내가 느끼는 소중함은 유한함에서 온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두려움에 가까운 것 같다. 지금 당장의 행복감에서 느껴지는 소중함도 물론 크지만. 내가 내 인생을 구성하는 다른 그 어떤 요소들보다도, 유독 딸에게 약해지는 이유는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없는 것 같아서다. 이제 막 6살이 된 딸을 두고 왜 이런 생각을 하냐고?


나에게 엄마와의 시간이 그랬기 때문이다. 엄마와 살을 부대끼고 산 시간은 20년뿐이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한없이 짧은 시간.


스무 살 때 설레는 마음으로 서울 대학 생활을 시작한 것이, 나와 엄마 사이를 채우는 시간을 급성으로 단축시키는 계기가 될 거란 건 생각 못 했었다. 적어도 엄마가 할머니들이 살았던 만큼은 당연히 살거라 생각했다. 엄마와의 시간이 줄어든다는 건 인지하지 못한 채, 나는 서울로 훨훨 날아와 버렸다.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만약 알았다면, 우리는 같은 집에 살길 선택했을 거다.


어쨌든 우리 엄마는 59살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유방암진단을 받고 7년 뒤였다. 그때의 내 나이 29살. 그렇게 이른 이별은 시나리오에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게 몇 살 때셨더라? 친할머니는..? 잘 모르겠다. 이건 아빠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한다. 20살 때부터 떨어져 살았으니 함께한 세월이 떨어져 산 세월의 두 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언젠가 나의 딸도 내 품을 떠날 날이 올 텐데. 그때가 혹시 20살이라 생각하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지금까지 딸과 보낸 만큼의 시간을 세 번만 반복하면 끝이라고? 너무 짧다. 하루하루가 길었지, 돌아보면 일 년이 눈 깜짝할 사이었는걸. 그래서 나는 딸에게 점점 더 젬병이 되어 버린다.


물론 육아가 힘든 날은 당연히 있다. 아이가 6살이 된 지금은 괜찮지만, 2-3살 땐 허를 찌르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의 힘듦을 이 말간 아이에게 전가하지 말자고, 어차피 길어봐야 몇 년 더 하면 끝이라는 생각이 불쑥 튀어나왔다. 시간이 지나면 이 날들이 말도 못 하게 그리워질 거라는 걸 키움과 동시에 이미 온몸으로 느낀다. 그래서 웬만한 건 참아지고, 용납이 되고, 어떤 날은 너무 기쁜데도 눈물이 나려 한다. 이 행복이 너무 짧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아서.


아무것도 모르던 딸이 점점 가족이란 것을 알아가고, 죽음이라는 것도 알아간다. 내 속에 있는 막연한 두려움을 콕콕 찌르는 질문들을 자주 던진다. 특히 나는 딸이 가끔 꺼내는 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에 흠칫 놀란다. 질문을 받으면 내가 답할 수 있는 것 반, 모르겠는 것이 반. 살아있던 엄마에게 난 이런 것들을 왜 묻지 못했을까, 난 왜 그것도 모르나 싶어 놀라게 되는 것도 있다.


딸이 할머니에 대해 어떤 질문을 할 때마다, 나는 죽음을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 우리 관계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아직 죽음이 뭔지, 병이 뭔지 잘 모르는 아이에게 제대로 설명 못하고 황급히 여몄던 생각들에는 결국 딸을 향한 그리고 엄마를 향한 나의 마음들이 들어 있다.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흐려질 거란 두려움이 피어난다. 엄마를 애도하던 그 마음을 글로 남겨놓지 않았더라면 꽤 많이 잊었을 거란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두려움과 사랑이 뒤섞인 마음을 잘 남겨보자고 마음먹었다.


딸이 할머니에 대해 했던 이야기들, 품었던 이야기들을 실마리로 삼아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 실타래를 풀어보려 한다. 그리고 딸을 바라보며 혼자만 골똘히 떠올렸던 엄마에 대한 이야기도 써보려 한다. 잘 써질지 모르겠는 이 여러 편의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게는 위로로 닿으면 좋겠다. 엄마 없이 엄마가 되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그리고 특별히 나에게 말이다.





이 글을 쓰고선 이틀 뒤, 갑상선암을 진단받았다. 아주 착한 암이라 하니 걱정하지 않으려 한다. 처음 방문한 대학 병원의 복도를 혼자서 분주히 이리저리 오가며 묘한 기시감을 느낀다. 50대 중반의 엄마와, 20대 중반의 내가 팔짱을 꼭 끼고선, 어떨 땐 손깍지를 꼭 끼고선 같이 울고, 웃기도 하고, 차도 마시며 지루한 진료나 검사 대기시간을 견뎠던 그날들이 생각난다. 대체로 불안하고 슬펐지만 소소하게 도란도란했던 그때. 엄마는 하늘에서 혼자 대학병원 복도를 거니는 나도 보고 있으려나,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엄마처럼 살지 말라 했는데, 비슷한 길에 아주 잠깐 발을 들인 것 같아 엄마가 슬퍼할 것 같다. 수술하고 더 건강해져서 아주 아주 늦게 엄마를 보러 갈 테니 엄마가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