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나의 다이어트 연대기

2023년 3월 25일

by 청춘의 일기장

나름 거창하게 포문을 열긴 했지만, 사실 나는 마음먹고 다이어트를 해본 적이 손에 꼽는다. 주변인들에게서 평가의 말을 들을 때를 제외하면 내 몸을 부끄럽게 여기는 순간이 드물었고, 살과 다이어트라는 개념이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굳이 다이어트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내 삶이 버거웠다.


그래도 이왕 시작하겠다 마음먹었다면 제대로 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흔히 선택이나 결과를 극단적으로 낳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을 부를 때 ‘모 아니면 도’라는 표현을 쓰고는 한다 알고 있다. 근데 나는 그 정도가 훨씬 커 ‘모 아니면 도’가 아닌 ‘모 아니면 백도’를 밟는 사람이다. 다이어트의 계기가 주변으로부터의 압박이었든 나의 충동적 선택이었든 뭐가 됐든 간에 이것이 이미 던져진 주사위라면 나는 이번에도 ‘백도’가 아닌 ‘모’를 내보이기 위해 있는 힘껏 발버둥 쳐 보일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못 이길 싸움이 없다 했다. 그러니 나는 살과의 전쟁이라는 이 다이어트에서 승리하기 위해 나를 알고 나를 해치는 것들을 알아야겠다. 이를 위해 짧지만 겪을 만한 건 다 겪은 나의 다이어트 일대기를 되짚어 보려 한다.


나는 초등학생 때 성장이 멈춰 160cm의 키로 중학교에 입학했다. 40 후반에서 50 초반을 오가는 특별할 것 없는 체중이었다. 다만 어린 시절부터 나는 가족에게서 늘 뚱뚱하다는 말을 들어왔기 때문에 내 체중에 만족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항상 내가 뚱뚱하고 못생긴 돼지라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전혀 아니었지만, 그땐 그랬다. 중학생 때 처음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했었는데, 한 가지 웃긴 점은 우리 가족은 그렇게 나를 돼지라고 말하면서도 내가 밥을 남기거나 거르는 건 눈 뜨고 못 봤다는 점이다. 평일 점심 중 급식이나 반 정도 식사량을 줄였을 뿐이지 삼시세끼 골고루 잘 챙겨 먹으며 매일 같이 운동을 했으니 어떻게 됐겠는가. 그냥 건강한 중학생이나 됐겠지. 원래도 근육이 적진 않았어서 운동능력만 더 좋아졌고, 나는 체육 수행평가 때 항상 반 1등을 놓치지 않게 되었다. 그뿐이었다. 16살을 지나갈 무렵까지 줄곧 이런 시간들을 반복했던 것 같다. 뚱뚱하다는 말에 스트레스를 받고, 마른 몸을 갖고 싶어 다이어트를 시작했다가 체력 좋기로 남부러울 것 없는 튼튼한 몸을 갖게 되는 그런 일상.


문제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기 전 겨울방학에 터졌다. 나는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폭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전까지만 해도 이런 상황은 연례행사 수준에 불과했다. 많아 봐야 일 년에 한두 번. 분기에 한 번 있는 정도. 그런데 이 시기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선 일이 두 번이나 나를 덮쳤다. 이전에 느껴본 적 없는 강도의 스트레스가 매일같이 나를 괴롭혔고 우울증과 폭식증이 시작됐다. 겨울방학 사이에 체중이 10kg 넘게 증가해 나는 고등학생이 됨과 동시에 60kg이 되었다.


그렇게 나를 괴롭히는 기억과 감정에서 벗어나려 음식을 먹고 또 먹었지만 잊힌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고등학교에서도 내 기억 속에 잠겨 있길 바랐던 얼굴들을 마주해야 했다. 솔직히 이땐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시간이 죽어가길 기다리고 기다렸던 것 같다. 학교에서 상금이나 장학금을 받은 순간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음식에 대부분의 돈을 사용했다. 주말마다 폭식하는 빈도도 늘었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까지 천천히 10kg, 코로나가 터진 이후 고등학교 3학년 때에는 급격히 10kg가 더 증가했다. 그러니까 17살에는 65kg, 18살에는 70kg, 19살에는 75kg을 평균 체중으로 가진 꼴이다. (2학년 2학기 때 다이어트로 65kg을 만들고 3학년 초반까지 유지했었다.) 중학교 때와 같은 상황을 한 번 더 마주하게 된 영향도 컸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교복 대신 체육복만 입고 다니고 있었고, 옷은 커녕 화장품도 하나 사지 않았다. 고등학교 3년 간 샀던 옷이 5벌이 채 안 되니 할 말 다 한 거지. 심지어 이것도 바지가 터진 체육복과 체육복 안에 받쳐 입기 위해 산 기본 반팔티였다. 나의 학창 시절은 우울과 폭식의 연속이었다.


이 시기 동안 다이어트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때 야간 자율학습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점심과 저녁을 모두 내가 통제할 수 있게 된 이후로, 나는 식사량을 줄이고 홈트레이닝을 하며 매 학기마다 무리하지 않고 5kg가량 감량하는 데 성공했었다. 방학 동안 말짱 도루묵 된 게 문제지.


대학교에 입학한 후로도 상황은 달라진 게 없었다. 코로나가 지속되면서 유명무실한 학교 생활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만날 사람이 없으니 옷에 신경 쓸 필요도 없었고, 가족들과 떨어져 있으니 몸무게로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었다. 이땐 같은 호실로 배정받은 룸메이트도 없었기에 기숙사를 혼자 사용하면서 이젠 습관이 되어버린 폭식을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롭게 이어나갔다. 음식을 사러 밖에 나가는 것과 배달을 시키는 것에 어떤 제약도 걸려 있지 않으니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날뛰었던 것 같다. 돈에 살고 돈에 죽는 구차한 상황은 여전했지만, 생활비를 모두 충당하고도 여윳돈이 남아 있을 때면 그게 푼돈이라 할지라도 음식에 모두 쏟아부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꼴과 다를 게 없었다. 음식으로 속을 채우고 또 채워도 마음은 여전히 허했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달리는 걸 멈추고 잠시 내 안을 들여다보며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가 채우지 못하고 있는 이 마음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은데 그럴 수 없었다. 그때 나는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기도 벅찼기에 그럴 여유를 부리는 건 당시 내게 있어 사치나 다름없었다.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계속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 속에 멈춰 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지난 2022년 봄, 내가 너무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이 주는 사랑은 물론이고 내가 나를 향해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말의 사랑마저도 항상 의심하고 부정하는 내가 너무 불쌍했다. 이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강한 갈망도 그때 처음으로 들었던 것 같다. 물론 이전에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지만 이렇게까지 강한 의지로 드러난 적은 처음이었다. 극단적인 식이와 운동을 병행하며 나는 3개월 만에 체중계에서 78kg이 아닌 50kg을 마주했다. 하지만 이때 나는 여전히 내 몸에 만족하지 못했다.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며 자신감을 얻는다거나 자존감을 높이긴커녕 내 삶에서 가장 내 몸을 싫어했던 순간이 이때였다. 오히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을 찾으며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시간은 더욱 늘어났고, 전보다 더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고 두려워했다. 하루에도 체중계 위에 몇 번을 올라갔는지 모른다.


그때 나는 음식에 갖고 있는 거부감이 매우 심한 상태였는데, 그런 내게 음식을 먹이려 안달 난 주변 사람들에게도 싫증이 났다. 그렇게 살을 빼라 할 땐 언제고 내가 살을 빼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내게 살 좀 찌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어이가 없었다. 내가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남겼는지 안 남겼는지 감시하는 모습에 진절머리가 났다. 아무리 내가 다이어트를 극단적으로 했다고는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내 몸에 대해 갖고 있는 호불호와는 별개로 내 몸의 건강을 끔찍이 아끼는 사람이었기에 감량기 이후 적어도 1일 1식 이상은 유지하고 있었다. 그냥 천천히 먹는 식사 습관을 들이고 소식하는 습관을 들인 거라 아무리 설명해도 음식을 강요하니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이 너무 힘들었다.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에 숨이 막혀 약속이 있는 날이면 평소보더 더 심하게 절식을 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내 안에 스트레스는 축적되어 오고 있었고, 나는 그게 폭식의 기제로 변질되려 할 때마다 마지막 남은 이성으로 억누르길 반복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언제 다시 폭식이 시작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시한폭탄 상태였던 것 같다.


여름방학 끝무렵부터 아르바이트 개수를 늘리기 시작해 눈을 뜬 순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내 마음을 들여다볼 시간도 없이 지낸 날들이 이어졌다. 학교에서 알바처로, 또다시 알바처에서 알바처로, 알바처에서 학교로. 공간에서 공간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곧 내 식사 시간이 되었고 퇴근 후 룸메이트가 방에 없는 날이면 그날이 곧 내가 폭식하는 날이 되었다. 폭식은 한 번 다시 시작하는 게 어려웠지, 열 번이고 백 번이고 하는 것은 그동안 내가 폭식을 하지 않기 위해 해 왔던 모든 노력들에 비해 참 쉬운 일이었다. 심지어 전보다 폭식의 정도와 빈도도 늘어나기 시작해 일주일에 다섯 번 이상 폭식하는 수준에 이르게 됐다.


그리고 2학년 겨울방학, 나는 체중계에서 83kg을 두 눈으로 마주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