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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완 Sep 09. 2021

러브레터

1


  새하얀 아침볕이 번쩍 뜨이게     눈에,  희뿌연 시선에 한가득 담긴 당신의 얼굴만이  세상의 유일한 축복이자 자세한 행복이에요.  외롭던 잠에서 깨자마자 가장 먼저 만날  있는 사람이 당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말  하나만으로도 야속하기만 하던 아침이 그저 달가운 만남으로 둔갑해버렸다니까요.

  사람이 어쩜 이리도 예쁠 수가 있을까. 덜컥 당신을   안에 가득히 껴안은 나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이름을 나긋이 불러주는 당신이 여기에 함께 있어요. 별안간 기승인 박동을 혹여 당신에게 들키기라도 할까, 나는 숨을 조금씩 죽이느라 애를 먹어요. 우리가 몸을 누인 곳이 갑자기 전부 꽃밭으로 변한 모습을 내가 분명히 목격했다면, 그렇다면 내가 고르게 심고 기르기 시작한  사랑을 당신이 믿어줄까요. 그런 사랑이 용케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냈다는 동화  이야기를 당신이 유심히 읽어줄까요.

  그날  우리가 나눠 먹은 달볕들을 이제는 숨기지 말고 나열해보기로 해요. 벌거벗은 살갗에 묻은 은빛 아이들까지도 빠짐없이 전부 . 은은한 달볕의 호위 속에서 우리가 주고받은  밤의 이야기들을 기억하죠? 사랑한다는  이외에도 손끝과 혀끝의 애틋한 촉감이랄  잔뜩 있었거든요. 물론 그것만으로 팽팽하게 부푼  마음을 전부 설명할  있을  만무하겠지만요. 온통 흑백으로 뒤덮인 세상에도 사탕보다 달짝지근한 색들이 지천으로 묻어날 수가 있더군요. 그런 황홀의 밤을 마음껏 거닌 뒤에 맞은 아침의 당신은, 내가 아는 어떠한 문학으로도 대신할  없을 만큼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경이로웠다는 표현이면  마음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질  있을까요.


  그러니 내가 그런 당신을,

  당신과 마음껏 뒤엉켰던 실낱같은 찰나를 몹시 사랑할 밖에요.


  날이 갈수록 멍청해지기만 하던 내게   먼저 내밀어줘 고마워요. 망설임이랄  전혀 필요치 않은 감정이었지만, 눈과 귀를 모두 막은  이를 악물고 버티던 나를 덜컥 열어줘 고마워요. 우리의 간격이  뼘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직도 전부 믿기지는 않지만요. 이렇듯 마음만 잔뜩 앞선 나를 석연치 않다 여겨도 좋아요. 뱀눈을  채로 나를 이렇게 노려본대도 아무렴 괜찮아요. 태생부터가 원체 촌스러운 사람이라, 당신 앞이라면 손과 발이 정해진 순서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일 테니까요.

  대신 정돈된 사랑만을 줄게요. 우리가 함께 내뱉은 숨에서 가닥마다 예쁜 색을 입은 씨실과 날실만을 골라낼게요.  귀한 것들을 헝클어지지 않게  엮어서 고운 당신에게 고운    지어줄게요. 당신은 내가 사랑이라 세게 부르고 싶은 비단옷을 입고서,  세기의 끝자락까지도  없이 어여쁘세요. 당신만의  숲을 일구어 노루며 꾀꼬리며 모두 불러 모아, 작은 하루라도 빠짐없이 행복하세요. 숨이 붙은 모든 시절을 화양연화로 살아가세요.

  이제 내일이면 여름이 가져다준 더위도 모두 가신다는 처서입니다. 머지않아 코스모스 군락이 곳곳에 자리하겠어요. 그러면 나는 아끼는 주갈색 스웨터를 입고서 당신을 만나러  거예요. 나만 있던 여름밤에서 이제는 우리만 있을 가을로 건너갑니다. 서로의 손목을 한쪽씩 잡고 둥근 춤을 춰요. 그런 식으로 둥글게 둥글게 키워가자고요. 충분히 충분하다 여기는  사랑도 구르는 눈덩이처럼 펑펑 커질  있을 거예요.

  여길 봐요. 온통 꽃밭이에요. 내가 당신을 사랑한 시간 위에  간격으로 꽃이  탓이에요. 이제는 당신도  사랑을 명확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각별히 사랑해요. 수많은 밤에 함께 숨어요. 물결치는  방의 공기를 타고 은밀하게 흘러가요. 하나가 되는 순간을 더는 부끄러워 말자고요. 그간 살아온 날들보다도 거대한 시간 동안 사랑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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