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알림장에 답장을 쓰기 시작한 이유

프롤로그 | 보내지 못한 답장 01

by 박탱커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박효아의 알림장>


2025년 12월 16일 화요일 / 흐림


오늘은 흐린 하늘이었지만, 우리 효아의 하루는 누구보다 반짝였답니다.

밝은 웃음으로 인사하며 오감놀이를 시작해 보았어요.


소방관 아저씨처럼 멋진 옷과 모자를 쓰고 커다란 불을 향해 “쏴아~ 쏴아~!”

물총을 들고 신나게 불 끄기 놀이에 도전했답니다.

소방차를 타고 이곳저곳 씩씩하게 누비며 불을 발견하면 멈춰 서서 다시 한번 쏴아~!

물총을 꼭 쥔 효아는 너무 재미있는지 놀이에 집중하느라 끊이질 않았어요.


신나는 놀이 속에서 용감하고 멋진 ✨꼬마 소방관 효아✨로 변신한 하루였답니다.


오전 간식은 냠냠! 맛있게 잘 먹어주었답니다.

점심시간에는 닭살 데리야끼조림, 온도토리묵국,

양배추나물과 함께 밥을 반 정도 먹어주었어요✨


요즘 효아는 채소의 식감이 조금만 딱딱하거나 질기면 바로 “이건 아니에요~” 하고 뱉어내네요.

양배추가 낯설었는지 눈살을 귀엽게 찌푸리며 뱉어내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답니다.

밥도 반 정도 먹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제 그만 먹고 싶다고 표현했어요☺️


✨ 하지만 양치시간은 최고로 좋아해요!

손으로 칫솔을 꼭 쥐고 쓱싹쓱싹~ 아주 열심히 잘해준 효아랍니다.

내 이불 위에 누워 스르르 눈을 감더니 꿀잠에 쏙 빠져 푹~ 잘 잤어요.

콧물은 재채기할 때만 살짝 나왔고 흐르거나 불편해 보이진 않았어요.

그래도 감기가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금 걱정되네요.

가정에서 푹 쉬고 잘 먹은 후 내일은 더 환한 얼굴로 반갑게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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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오늘도 정성스러운 알림장 감사합니다.

사실 그동안 한 번도 보내지는 않았지만, 오늘은 답장을 꼭 남기고 싶었습니다. 물론 여태 그랬듯이 이 답장이 선생님께 전해질 일은 없을 겁니다. 선생님의 일상에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으니까요. 업무로 작성하는 알림장에, 그것도 아이 아버지가 매번 장문의 답장을 남긴다고 생각하면 저라도 괜히 등에 식은땀이 날 것 같거든요. 그래서 오늘부터 시작되는 이 답장들이 많은 아빠, 엄마들의 공감을 얻었으면 하는 마음과 동시에 선생님께는 끝내 닿지 않기를 바라는 조금은 모순적인 마음을 함께 안고 시작해보려 합니다.


그럼에도 굳이 시간을 내어 글을 쓰는 이유를 말하자면, 이건 저만의 덕질 방법에 가깝습니다. 저의 최애캐가 어린이집에서 혹시 울고만 있지는 않을지, 밥은 잘 먹었는지, 친구와는 잘 지냈는지, 오늘은 또 무엇을 하며 놀았는지. 궁금한 것 투성이인 하루의 끝에서 효아의 하원 후 울리는 '키즈노트' 알림은 이제 제 하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은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효아의 하루가 담긴 귀여운 사진 몇 장과 선생님이 써주신 글을 보고 있노라면, 살면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덕질이 이런 거구나 싶습니다. 참고로 저는 소녀시대와 원더걸스의 등장에도 요동치지 않았던 사람이었는데, 딸 덕분에 뒤늦게 덕질 뉴비의 마음을 실컷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글을 더 잘 써야 하나, 사진을 더 잘 찍어야 하나 하는 부담은 전혀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진전의 작품이 아니어도, 교보문고의 베스트셀러가 아니어도 대상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담기면 그 글은 제게 맨부커상 수상작이 되고, 사진은 퓰리처상 수상작이 되더군요.


오늘의 효아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꼬마 소방관 코스튬이라니요. 제 아이폰의 앨범 속 '쿄쿄아 콜렉트북' 폴더에 또 몇 장의 포토카드가 추가되었습니다. 귀여운 복장으로 끝난 게 아니라 커다란 종이 불을 향해 물총을 들고 "쏴아-쏴아-!"하고 신나게 불 끄기 놀이까지 했다니, 전문가의 놀이 실력에 절로 박수를 치게 됩니다.


요즘 효아는 집에서 책 읽기 놀이를 좋아합니다. 사실 '읽기'라기 보다는 '뽑기'에 가깝지만요. 여러 권을 연달아 꺼내다 보면 놀이의 아마추어인 저는 금세 바닥을 드러냅니다. 캐릭터마다 목소리를 바꿔보다가 이야기가 뒤엉키기도 하고, 여자 캐릭터의 고음을 무리하게 내다 효아에게 조용히 불합격 목걸이를 건네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놀이를 함께 해주신다는 사실이 초보 아빠의 입장에서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죠. 지금의 우리에게 그 마을의 역할 중 가장 큰 몫을 맡고 있는 곳은 아마도 어린이집일 겁니다. 그래서 더 고맙습니다.


그럼에도 이 답장은 끝내 보내지 않을 테지만, 이 마음은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오늘의 효아를, 오늘의 글로.


- 효아 아빠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