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하루라서 다행이었습니다.

보내지 못한 답장 02

by 박탱커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박효아의 알림장>


2025년 12월 19일 금요일 / 대체로 흐림


고요한 아침 공기 속에서 하루가 천천히 시작되었습니다.

효아는 편안한 모습으로 등원하며 오늘 하루를 열었답니다.


오늘은 효아와 함께 알록달록 색얼음으로 그림 그리기 놀이를 해보았답니다.

색얼음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건 뭘까?” 하는 듯 손가락으로 조심조심 만져보던 효아예요.

차가운 촉감에 얼굴을 살짝 찡그리기도 했지만, 이내 색얼음을 쓱쓱 움직이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형형색색 색이 번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효아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 정말 사랑스러웠답니다✨


오전·오후 간식은 냠냠 맛있게 잘 먹었고요.

점심시간에는 효아가 미역국과 돈가스를 너무 좋아하며 밥과 함께 잘 먹었어요.

잡채는 식감이 조금 안 맞았는지 뱉어냈지만,

돈가스는 더 달라며 두 팔을 쭉 뻗어 표현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답니다.


앙치도 잘하고 이불을 깔아주자마자 아주 빠르게 쏙— 들어가 잠이 들었어요.

놀이시간에 기침을 조금은 하더라고요.

잘 때는 코를 골며 잠을 푹 잤답니다.


주말 동안 편안하게 잘 쉬고,

더 건강한 모습으로 월요일에 다시 만날게요~

행복하고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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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오늘의 효아는 별일이 없을까 유난히 노심초사하며 알림장을 기다렸습니다. 다행히 알림장을 보니 보통의 하루처럼 어린이집 생활을 잘 이어간 것 같아 한시름을 덜었습니다. 오늘 새벽부터 아내가 일본으로 2박 3일 여행을 떠나 아침 등원 준비를 오롯이 제 손으로 해낸 날이었거든요.


독박 육아를 맡기는 걸 미안해 하는 아내에게는, 아기 등원시키는 게 뭐가 힘드냐며 걱정 말고 친구들이랑 잘 다녀오라고 큰소리를 떵떵 쳤습니다만 아내가 집을 나간 그 시각부터 거짓말처럼 효아가 잠을 설쳐 저 역시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처음부터 계획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네. 타이슨 형님의 명언은 언제나 정답이었습니다.


아내가 직접 적어둔 효아의 등원 체크리스트를 냉장고에 붙여두고 속으로 몇 번이나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씩 과업을 해내며 리스트를 지워가는 기분이 의외로 쏠쏠하더군요. 그럼에도 효아는 능숙한 엄마의 손길이 아닌 어딘가 어색한 아빠의 손길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침 단호박 수프를 많이 남겼습니다.


몇 숟갈만 더 먹어주면 좋겠다는 아빠의 바람을 아는지 모르는지, 최대한 부드럽게 "아~"하며 수프를 입에 대어주었지만 고개를 세차게 좌우로 저으며 끝내 버텼습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이래서 아내가 밥 먹이다가 종종 큰소리를 냈던 거구나.'


그동안은 억지로 먹이지 말라며 말로는 쉽게 이야기했는데, 막상 그 자리에 제가 서 보니 가슴 속에서 욱하고 무언가 올라오더라고요. 물론 효아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요.


아내가 골라둔 등원 룩을 입히고 준비물도 빠짐없이 챙겨 집을 나섰을 때 날씨는 흐렸지만 공기는 꽤 상쾌했습니다. 제법 아빠 노릇을 해낸 것 같기도 했고, 무엇보다 등원만 무사히 마치면 한 시간쯤 눈을 붙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집 가는 길에 효아와 셀카를 한 장 찍었는데 사진 속 효아의 표정을 보니 제 마음을 이미 들켜버린 것 같았습니다. 너무 무표정하더라고요.


아내가 복직을 하게 되면 이런 아침들이 제게 일상이 되겠지요. 먹기 싫어하는 아침을 먹이는 일도, 입기 싫어하는 옷을 입히는 일도 모두 말입니다. 그리고 여태 그래왔듯이 그 모든 것들이 시나브로 익숙해지며 효아 아빠로서 조금 더 성장해 있을겁니다.


말씀해주신 효아의 기침은 하원 후 병원에 들러 확인해보니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주말 동안은 찬바람을 최대한 피해서 다음 주에는 조금 더 가벼운 얼굴로 어린이집에 올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이 답장은 보내지 않겠지만,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겼다는 이 마음만은 여기에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그럼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효아 아빠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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