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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규 May 28. 2020

슬픈 이야기만 하고 싶지는 않다.

코로나-19의 비극을 이야기하는 방법

https://news.joins.com/article/23749296


4월 7일, 서울에서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 우리 병원은 아니었고, 한 분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건너 건너 듣기는 했었다.

그런데 몇몇 신문에서 슬픈 부제를 붙인다. "구로 콜센터 4인 가족의 비극" 

그 분은 암을 진단받았고, 가계가 어려워진 부인은 콜센터를 다니기 시작했고, 콜센터에서 얻은 코로나-19가 남편에게 옮겨가고, 결국은 사망했다는 이야기이다. 바이러스는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지만, 결국은 사회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 건강이 취약한 사람들에게 비극을 가져다 줬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우리 병원에 많은 구로 콜센터 직원들과 그 가족들이 입원했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부인과 남편, 아들과 딸, 연로하신 부모님을  가리지 않고 공격했다. 한 달여간의 치료를 받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신 분, 중간에 생활치료센터가 개소하고 이쪽으로 옮겨가신 분, 폐렴 증세가 심해져서 집중치료병상으로 이동하신 분, 별 다른 증상 없이 40일 넘도록 바이러스 음전이 되지 않아 격리를 유지하셨던 분들. 이분들의 집 안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여유가 넘치는 집은 하나도 없었다. 애초에 여유가 넘치는 분들이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 했을 리가 없어 보인다.


함께 일하는 의료진들끼리는 이런 슬픈 사연들을 나누고, 환자와 가족들의 배경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환자가 잘 이겨내기를 기대하며 환자를 위로한다. (간혹 의무기록이나 간호기록에 '정서적 지지 제공'이라고 적혀 있으면, 이런 이야기를 한참 나눴다는 뜻이다)

또 의사들의 환자 인계장이나 간호 기록에 이 환자의 남편, 자녀, 부모가 어느 병실에 누구인지 적어두어야 한다. 가족이란 자신의 이야기보다 아내와 남편, 자녀와 부모의 안녕을 더 궁금해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가족이 함께 입원한 환자와 면담(주로 통화로 이루어진다)을 하기 전에 반드시 다른 가족들의 상황을 파악해둬야 한다.


이런 사연들 속에서 우리 사회의 불평등이나 의료 체계, 노인 문제, 가족의 문제 같은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환자들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자신과 가족을 더 잘 치료해달라는 목적에서이다. 의료진의 입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환자의 허락 없이 병원 밖으로 밝히는 것은 어렵다. 이미 한 차례 고난을 겪은 이들에게 두 번째 고통을 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슬픈 이야기만 하다 보면, 의사도 환자도 영 기운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슬프지 않은 이야기들도 있다. 돌 짜리 딸과 아버지가 함께 이겨낸 이야기, 함께 감염된 가족들의 통역 역할을 하는 외국인 고3 학생, 애증의 띠 동갑 자매, 돌 갓 지난 아들을 감염으로부터 지켜낸 아버지, 임신한 아내를 위해 기꺼이 함께 격리생활을 택한 남편, 그리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 연인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병원에 입원했던 한 유튜버의 동영상 링크를 남긴다. 함께 감염된 엄마가 아직 병실이 없어 입원을 못했다고 자기랑 바꿔달라고 했던 착한 딸의 이야기이다. 6주간의 병상일기를 유튜브에 올렸는데, 모든 장면에서 의료진을 배려하고, 다른 감염자들에게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유튜버 "껑디호"님, 잘 치료받고 좋은 자료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https://youtu.be/bkUnuyFWM0A




이 와중에 C 물류센터, K 물류센터의 "투잡러" 분들의 집단 감염 소식이 들려온다. 이 세상 힘들지만 열심히 살아오신 분들, 그 에너지가 코로나-19도 거뿐하게 물리쳐 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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