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너는 참 씩씩하고 예쁜 중3 학생이구나
2박 3일간의 캠프를 다녀와서
장애학생과 1:1 멘토멘티를 맺어 2박 3일간 함께 하는 캠프를 다녀왔다.
나와 함께 하게 된 학생은 16살의 여학생 A.
아이에게는 이것이 부모님과 떨어져 외부에서 잠을 자는 첫 경험이라고, A의 부모님께서 말씀해주셨다.
또 A는 이 캠프에 아는 또래 장애 친구가 몇몇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앗 나도 이런 캠프는 처음인데. 내가 아이에게 좋은 짝궁이 되어주어야 할텐데. 기분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고 싶은데.’
아이의 부모님께는 웃으며 ‘걱정마시라, 제가 또 알아야 할 아이에 대한 정보는 없냐.’며 여유 있는 척을 했지만 사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걱정이 참 컸다.
캠프 첫째 날, A는 반갑게 첫 인사를 하는 나를 잠깐 쳐다보고 수줍게 그리고 조금은 대충(?) 내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서서히 친밀해지는 성향인 것 같아 처음에는 가벼운 터치도 삼가고 일단 대화로 관심을 끌어보려 노력했다.
A는 내 말에 완벽한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 말을 무시하지도 않았다.
A가 밀가루를 먹지 못하는 탓에 우리는 첫 끼부터 식당이 아닌 편의점에 가서 삼각김밥과 에너지바를 사먹었고(하필 숙소 식당의 첫 점심메뉴가 밀가루 음식이었다)
빠른 발걸음의 A를 따라다니느라 나는 내내 속보를 하며 다녀야 했고
내 얼굴보다는 휴대폰 유튜브를 더 자주, 오래 보았지만 그래도 A가 나를 싫어하거나 거부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 다행스러웠다.
그러다 그녀가 내게 처음 물은 질문은 “선생님, 아이돌 누구 알아요?” 였다. A는 걸그룹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어떤 한 남자가 부르는 랩을 내게 들려줬는데 가사에 욕설이 포함되어 있었다. A는 그 부분을 좋아했다. 그 부분을 좋아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인 것이 조금은 마음에 걸렸는지 내 눈치를 보며 멋쩍게 웃어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찾아온 취침시간. A와 단 둘이 2인실을 쓰게 되어 각자 취침준비를 하고 누웠는데 아이가 잠이 오지 않는다며 잠시도 쉬지 않고 뒤척였다. 왜 잠이 오지 않는 것 같은지, 지금 무슨 생각이 드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물어도 아이는 잘 모르겠다, 괜찮다로 일관했고 휴대폰 영상을 보며 키득키득 웃기도 했다.
“A야, 뭘 보고 웃는거야? 어? 나도 이거 아는데!” 아이가 반복해서 보는 영상은 ‘렛미인’이라는 예전 TV 프로그램이었다. 대부분 여자들이 출연해서 성형수술이나 다이어트를 통해 새로운 사람으로 변한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다 새벽 1시가 넘자 A는 “왜 잠이 안오지?” 하며 괴로워하는 듯 했다. A는 나와 침대도 바꿔보길 제안하기도 하고 그래도 잠이 안 오자 나에게 자기 옆에 와서 자달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잠이 쉬이 오지 않는 듯 했다. “잠이 안 오면 우리 같이 오늘 하루 어땠는지 이야기 해볼까? 선생님은 숫자를 세면 잠이 더 잘 오던데. 아니면 잠이 잘 오게 하는 음악을 한 번 틀어볼까?” A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쉬지않고 하다가 결국 A가 좋아한다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틀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쯤. 그 쯤 되었을 때 A와 나는 잠이 들었다.
캠프 둘째 날, 이른 시간에 강당에 모두 모여 체조를 해야 했다. A는 혼자 걸어가지 말고 함께 가자는 내게 다가와 팔짱을 꼈다.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고 나를 벌써 친근하게 느끼는 걸까? 고마움과 안도감이 느껴졌다. 다 같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서 체조를 해야 할 때도 내게서 조금이라도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처럼 의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의 모습을 본 특수교사 한 분이 우리에게 '하룻밤 사이에 너무 친해진것같다. 보기 좋다'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다른 프로그램 시간에는 우리가 포함된 팀에서 무대에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그녀는 진심으로 그 무대를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A가 이 캠프에 잘 적응하고있는 것 같아서 내심 기뻤다.
그런데 저녁 시간이 다 되어갈 즘, 나와 잠깐 떨어져 활동을 할 때 갑자기 A가 배 통증을 호소했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 내가 A와 다시 만났을 때도, 다음날 아침이 될 때까지 A의 고통호소는 계속 되었다. 너무 아파서 뒹굴 거릴 정도는 아니지만 지속적이고 작은 통증인 듯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특별한 원인이 없었다.
걱정이 되어 다음날 아침, A를 데리고 보건 담당 선생님께 갔는데 선생님은 보건실에 오자마자 책상에 올려진 은단에 관심을 갖는 A에게 은단 2알을 주시고는 “이거 먹으면 금방 나을거야.”하시며 나를 은근히 쳐다보셨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으셨다. A가 은단을 받아들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선생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그냥 에민한거에요. 정말 배가 아픈 친구들은 저렇게 행동하지 않아요. 이제 곧 캠프가 끝나니까 너무 걱정마요.”
나는 밤새 아프다고 말하는 아이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잤는데 진짜 아픈 게 아니었다니?
생각해보니 A는 배가 아프다고 하면서도 어제 저녁, 오늘 아침 식사는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울만큼 잘해냈다. 잘 먹는 A를 보며 그때는 그저 다행이라고만 생각하고 동시에 A에게 너무 많이 먹지 말라고 당부하기까지 했었는데...
부모님이 아이를 데리러 캠프 장소에 오시는 시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캠프가 이제 다 끝나가는구나.’ 조금은 긴장을 풀고 아이의 부모님을 만났고 A의 부모님, 나, 그리고 A까지 4명이서 캠프 식당에 앉아 점심식사를 했다. 식당에 앉아 이틀간 우리가 한 일, A에 대한 특이사항, 부모님께서 내게 궁금한 점 등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A는 이상하리만치 내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처음엔 부모님이 오신 게 너무나 반갑고 기뻐서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내 옆에 앉아 캠프 폐회식을 하는 동안에도 내가 묻는 말에 대답도 잘 하지 않았다. 정말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와 인사를 할 때 A는 내 눈 조차 제대로 봐주지 않고 특별한 인사 없이 엄마에게 가 버렸다.
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틀간 A에게 온 신경을 쓰면서 지냈는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그 아이 걱정을 하며 지냈는데. 이렇게 가버릴 수 있나? 처음엔 배신감마저 들었다.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며 인사를 하는 다른 멘토 멘티들의 모습을 보니 억울하기까지 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캠프 활동을 하며 A를 위해 만들었던 팔찌나 액자 등에 A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기까지 했었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생각했다. A가 왜 그랬을까?
부모님이 오시니 이제 정말 의지할 대상이 생겨 나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헤어짐도차도 어색했던 걸까? 사실 내가 그녀를 힘들게 했나? 내가 아이에게 너무 강압적이었나?
“안 돼, 걸을 때 휴대폰을 보면 넘어질수도 있으니까 걸을 때는 보지 말자. 밥 먹을 때도 보려고? 그럼 밥을 이렇게 다 흘리잖아.”
“혼자 먼저 가지 말고 선생님이랑 손잡고 같이 가자. 선생님은 A랑 같이 걷고 싶은데.”
“이제 A가 씻을 차례야. 손발은 씻고 자야지. A야~ 씻기로 약속한 시간 다 되었는데? 이제 씻고 와.”
“그건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돼. 배 아프다며. 거기까지만 먹고 그만 먹자.”
생각해보니 나는 나도 모르게 A의 행동에 제약을 많이 걸었었다.
집에 돌아가는 날, 부모님이 A를 데리러 오시자 A는 방언 터지듯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A가 어떤 말을 하자 A의 엄마는 “A야, 또 그 소리. 우리 그 이야기는 이제 안하기로 했잖아. 언제까지 그 소리 할거야” 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A는 여러 번 같은 말을 반복했다.
A가 말하기를 마치고 A의 부모님께서 내게 물으셨다. “A가 저 말을 자주 하지 않던가요? 울지는 않던가요?”
“아니요. 저런 말 저는 방금 처음 들어요. 그리고 A는 이틀간 한 번도 울지 않았어요.”
“오 그래요? 원래 A가 저 말을 자주 하거든요. 지금은 긴장이 풀려서 그런 건가. 그리고 잘 우는 편이라 사실 걱정이 많았어요. 안 울었다니 다행이네요” A가 자주 한다는 그 말이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학교에서 누군가가 A를 놀리고 비난하는 것을 A가 되새기는 듯 했다.
돌이켜보면 무엇보다도 A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불안해했던 것 같다. 나도 긴장되던 이틀이었는데, A는 오죽했을까? 의지할 상대라고는 낯선 여자 선생님 한 명 뿐인 상황. 오늘 처음 본 사람과의 동침. 도무지 오지 않는 잠.
그리고 자꾸 자신을 통제 하려는 듯 한 잔소리.
내가 싫어할까봐 힘들어도 울지도 않고 자주 한다는 그 말 표현도 스스로 억제한 게 아닐까.
그게 쌓이고 쌓여 이틀째 되는 날 신체적인 통증까지 유발된 게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A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순간적인 서운한 마음에, 아이를 성숙하게 보내주지 못하고 나 역시 조금은 건성으로 아이를 보내줬다.
따뜻한 말 한마디 전하지 못했다. 이틀간 그 아이는 얼마나 많은 긴장과 불안을 느꼈던걸까.
장애 아이가 아니라 조금 예민한 비장애 여학생이라 생각하면 크게 다를 바 없었는데도 나는 그녀를 어느새 장애라는 프레임이 가둬놓고 지나치게 속단하고 지도하려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A가 자주 보던 또 다른 유투브채널에는 뚱뚱하고 못생긴 여성이 화장으로 자신을 꾸민 뒤 우울한 표정을 하며 지우는 영상이 있었다. “이건 뭐야?“ 라고 물었더니 A는 "사람들이 얘를 막 욕해요. 장애인이라고. 크크크크크”라고 대답했다. A는 왜 이런 영상을 자주 볼까? ‘렛미인’ 영상을 자꾸 보는 이유는 뭘까? 혹시 비슷한 이유일까? 솔직히 그 순간 나는 그 아이의 웃음이 조금은 무섭고 아주 많이 마음이 아팠다.
A가 가진 장애의 정확한 명칭을 전해 듣지는 못했지만 A는 스스로 신변처리가 충분히 가능하고 자기표현도 할 줄 아는 경도장애 학생이었다. 외모가 조금 특이하고 집중력이 낮고 이해수준이나 속도가 더딜 뿐, 자주 동영상을 보고 노래를 듣는 것을 즐기고 가수를 좋아하고 씻기를 귀찮아하고 이성의 연상 지도 선생님에게 괜히 마음 설레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춘기 여학생이었다.
그동안 특수학교에서 중등도의 장애학생들만을 만나다가 처음으로 대화가 통하는 경도의 학생을 만나 본 내가 서툴렀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헤어지기 전에 “이틀 동안 힘들었을텐데도 울지 않고 지내주어서 고마웠다"고, "너는 참 씩씩하고 웃을 때 예쁜 학생이야”라고, 그 두 마디를 못하고 온 것이 오랫동안 마음에 걸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