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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armony Apr 28. 2023

63. 살아반

장애학생의 가족 그리고 교사

1. 우리 오빠 장애인이야

'드르륵' 쉬는시간, 우리반 문이 열린다.

"야~ B!! (옆 친구에게)저기봐봐. 저기 장난감 갖고 노는 사람이 우리 오빠야. 야~ 나 왔어!!"

제법 큰 목소리의 여학생이 문을 열자마자 우리반 B를 부른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매를 보니 영락없이 우리 학교에 재학중인 B학생의 여동생이었다.

작년에는 우리반에 온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우리반에 자주 방문해서 B를 찾기도하고, 자기 친구들을 데려와서 그들에게 B를 소개한다. 여동생과 함께 온 친구들 중 한명이 "여기가 어딘데?" 라고 묻는다.

"여기? 사랑반! 우리 오빠 장애인이어서 이 반에서 수업 듣는거야."

씩씩하게 대답하는 여동생의 말은 너무나도 문장 그대로 사실이었는데 그 아이의 입에서 '장애인'라는 말을 들은 내가 되려 잠시 당황스러웠다. 그 옆에 다른 남학생이 장난치듯 말을 덧붙였다. "장애인? 그럼 너도 장애인이야? 장애인~"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비하의 의미로 사용하는 그 남학생에게 B의 여동생은 "야! 너!" 하며 응징의 손을 들어올려 친구의 팔을 꼬집어주었다.  


2. 앞치마가 너무 하고 싶어요

B는 진로교육의 일환으로 '사회'시간에 원반에서 꽃꽂이 활동을 했다. 사회 수업을 끝내고 우리반으로 돌아온 B는 이미 흥분상태였다. 교실에 들어와 실내화를 벗자마자 괴성을 지르며 눈물 콧물을 쏟았고 뒤에 비치된 교구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수업 지원을 나가셨던 지도사님께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수업 끝나기 직전에 꽃꽂이 활동을 지도하러 오신 외부강사님이 입고 계셨던 '앞치마'에 갑자기 집착하며 그 옷을 입고 싶다고 떼를 쓰다가 돌아온 것이라는 것이다. 예전에 사랑반에서도 앞치마를 입고 목공수업을 한적이 있는데 그때도 앞치마 입는 것을 상당히 좋아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래도 이 정도로 떼를 쓰고 화를 낼 줄이야. 특정 한 가지에 관심을 빼앗기면 말리기가 어려운 편이기에 자리에 앉혀놓고 관심을 돌려봤다가 달래도 봤다가 화도 내봤다가.. 일정시간이 지나서 조금 차분해진 아이가 결국 교실에 있는 미술용 앞치마를 대신 입으며 소란은 일단락 되었다.

눈물 콧물 자국으로 범벅이된 아이의 얼굴을 보며 다소 엄한 목소리로 "으이고, 너가 휴지로 얼굴 닦아." 라고 말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앞치마 하나에 이렇게 서럽게 우는 아이라니. 내가 만약 이 아이의 엄마라면 이 모습이 얼마나 속상할까 싶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아이를 교실까지 데려다주시는 워킹맘인 이 아이의 어머니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셨을까. 일반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아이를 인정하고 이해하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날을 아프셨겠지. 그럼에도 이렇게 키도 크고 스스로 얼굴에 묻은 눈물을 닦을 줄 아는 아이를 키워내셨구나. 시장바닥 같은 교실 속에서 나는 혼자 숙연해졌다.


3. 장애

매년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장애인차별철폐의날)이다. 특수교사는 4월 20일이 포함된 주에 전교생을 대상으로 장애이해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학기초에는 통합학급대상으로 장애이해교육을 실시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동안 가능하면 '장애'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해왔다. 그 단어 자체가 편견과 오해를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장애'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B의 동생이나 "00이는 무슨 장애에요? 내 동생도 장애인이에요."라고 말하는 통합학급 학생의 말을 들으며 '아 오히려 내가 장애라는 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부정적인 의미로 비꼬아 사용하지만 않는다면 '장애'는 부끄럽거나 사용을 최소화해야할 단어가 아닌데 말이다. 나 특수교사 맞아? 오랫동안 뒤통수가 얼얼한 느낌이었다.


4. 살아반

우리반의 이름은 '사랑반'이다. 아마 많은 특수학급의 이름은 '사랑반'일 것이다. 성격이 급한 나는 문서작업을 할 때 '사랑반'을 '살아반'으로 잘못 입력할 때가 많다. 그때마다 백스페이스키를 눌러서 삭제를 하지만 가끔씩은 '살아반'이 더 우리반에 어울리는게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물론 힘들고 지칠 때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얘들아, 우리 잘 지내보자. 너희도, 너의 동생도 엄마도 아빠도, 나도. 힘들어도 다 같이 한번이라도 더 웃으면서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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