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이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되다니
남편의 무정자증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CT까지 촬영하고 보니
남편에게는 생각보다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적고 없어야 할 것이 있어'서 문제였다.
"선생님, 남편이 살아가는데 큰 문제는 없는거죠?"
'이건 이래서 안좋고 저건 저래서 안좋다'는 의사의 자세한 설명을 다 듣고나서 내가 처음 묻게 된 질문이었다. 다행히 의사의 대답은 '그렇다'였다.
"휴, 다행이다."
새삼스럽게 내가 남편을 내 삶의 동반자이자 의지할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의사는 남편 증상의 가장 큰 원인으로, 정자를 실어 나를 정액이 생산되지 않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재미있게도 정자를 '손님'으로, 정액을 '택시'로 비유하시면서 '택시가 없으면 손님이 이동할 수 잆지 않겠냐'고 말씀하시는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할지.
그럼에도 우리 부부를 앞에 앉혀놓으시고 1부터 10까지 종이에 적으시면서 구구절절 우리의 상황을 설명해주시는 의사선생님께 감사하더라.
물론 그 내용은 씁쓸했지만서도..
의사선생님은 조직검사를 추천하셨다. 말은 검사이지만 사실은 고환을 잘라 그 안에 정자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시술이다. 먼저 그렇게 아주 소량의 조직을 떼어내어보고 그 속에 사용할만한 정자가 있다면 그걸로 시험관을 해보면되고 상황에 따라 수술을 더 할 수도 있는거라고 하셨다.
최악은... 막상 확인해보니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겠지.
시술 자체는 생각만으로도, 상상만해도 '으~' 소리가 나는 생경하고도 겁나는 행위이다. 생식기에 칼을 대야하다니.. 그럼에도 남편은 해보겠다고 했다.
남들은 시험관을 한다고하면, 남편의 경우 사정만 하면 되는건데.. 남편은 수술을 해야하다니..
사실 그런 남편이 안쓰러워서 나는 충분히 슬퍼하거나 낙심한 티를 낼 수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만약.. 남편의 고환안에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게될까'를 벌써 생각해보기도 하면서 내 마음은 나도 모르게 또 다른 미래를 계획 해보려고, 담담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정말 삶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과 같다.
10년 전에는 내가 교사가 되어있을 줄 몰랐고
3년 전에는 지방에 살던 남자와 결혼해 있을 줄 몰랐고
1년 전에는 시험관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하늘에 빌고 있을 줄, 남성의 생식기에 대해 이렇게 자세하게 알게 될 줄 몰랐다.
결국은, 그저, 내게 주어진 상황들을 받아들이고 그 순간순간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대처하는 수 밖에.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결국 내 선택이었음을 잊지 않아야 다른 무엇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또 내가 만나는 모든 상황과 사람들을 너무 많이는 미워하지 않아야,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나 스스로 너무 많이 아파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며칠 전이 결혼 1주년이었다.
남편이 건강하게 시술을 마무리하고 회복할 수 있기를.. 지금 나에겐 그게 제일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