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선배가 퇴직 후 내 소식이 궁금했는지 주말에 산에 가자고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5명이 깜깜한 새벽에 모여 두런두런 얘기하며 걷기 시작하니 차갑고 촉촉한 공기도 상쾌하고 기분도 너무 좋았다. 코로나19를 겪은 이후 운동을 몇 개월간 꾸준하게 해온 터라 체력에 좀 자신감이 있었다. 오르막이 시작될 즈음 나도 모르게 제일 먼저 앞장서서 빠르게 올라갔다.
다들 내 체력이 좋아졌다며 역시 ‘퇴라피’가 최고라고 우스갯소리 를 하며 한바탕 웃었다. 오르막이 시작되고 30분쯤 지났을까, 내 몸이 조금 이상했다. 갑자기 가슴이 조여오면서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퇴라피: 퇴직+테라피의 합성어로 퇴사로 셀프 테라피를 한다는 뜻의 유행어
한참을 더 올라야 하는데 더 갈 수가 없었다. 협심증이 아닌지 우왕좌왕 걱정하는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만 먼저 내려와 휴식을 취했다. 다행히 얼마 안 가 몸은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산을 오르다 중단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충격이었다.
종합검진 일자를 앞당겨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했다. 결과는 이상이 없었다. 의사의 상담을 받고 등산하는 분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알아보니 결국 ‘호흡’이 문제였다. 빨리 오르려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 충분히 호흡하지 않아서 산소가 부족해진 것이었다. 들숨 날숨 의식 하며 천천히 오르면 되는 것을 욕심이 너무 앞섰다.
‘살아있으면 그냥 되는 줄 알았던 숨쉬기가 이렇게 중요한 것이었나!’
난 그날 왜 그렇게 빨리 올라가고 싶었을까? 그날 산행의 목적은 빨리 오르는 게 아니었다. 오랜만에 얼굴 보고 안부 물으며 사는 근황이나 얘기하자는 거였는데. 전혀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조차 빨리 완결해 내려고 하는 습관과 기왕 하는 거 남보다 앞서면 좋겠다는 승부욕이 발동되었나 보다.
과업에 집중하며 살다 보니 나 자신조차 ‘했다, 안 했다.’ ‘잘했다, 못 했다.’로 평가하고 그것을 하는 과정의 즐거움을 잊어버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제는 촌각을 다툴 필요가 없이 여유가 있음에도 여 전히 그 패턴을 지속하는 내 모습을 인지한다.
가끔 사는 게 숨이 막힐 때가 있다. 직장의 직책자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그리고 내 버킷리스트의 주인공으로서 해내야 할 일들이 끝도 없이 밀려들어 쌓여갈 때면 어느 순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왜 이렇게 항상 바쁜 거야! 아 숨 막혀!’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다. 몸은 이 일을 하고 있지만 머릿속은 놓치지 않고 해내야 하는 다른 일들로 복잡하다. 성취의 순간에 행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만 누군가에게는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아쉬움이 남는다.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는 마음이 ‘깨어 있는 마음’이다. 걱정과 불안, 망상에 한눈을 팔지 않고, 마음을 호흡과 발밑에 집중하라. 온전히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라. 온갖 생각과 함께 방황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하는 일에만 집중하라. 그러면 걱정과 불안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다.” - 틱낫한 -
나라는 존재는 내게 숨쉬기만큼이나 당연한 존재이지만 숨쉬기 만큼이나 모든 것을 한꺼번에 무너지게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숨이 막힌다는 느낌은 신경 써서 나의 존재를 돌아보고 살펴달라 내 몸이 보내는 간곡한 요청이다.
나를 당연한 존재로 방치하지 않고 나 자신에게도 프레즌스를 발휘하여 지금 이 순간의 나에게 집중하며 살아갈 것이다. 나는 코치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