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 배우길 참 잘했다.

설득 말고 공감하기

by 진정

아이가 사관학교 하계 군사 훈련 중 특박을 나와 방에서 자고 있다. 휑하던 집이 꽉 찬 느낌이다. 잘 자고 있나 가만히 들여다보니 침대 한쪽에 동그랗게 웅크려 자고 있다. 이불도 못 편 채로 눈 감았다 떠보면 그대로 아침이라는 아이의 말이 생각난다. 몸을 펴서 반듯하게 눕혀 준다. 까맣게 탄 얼굴에 짧게 쳐올린 머리가 이제 제법 생도 티가 난다. 힘든 사관학교 1학년 1학기를 잘 넘기고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니 참 대견하다.


아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꿈이 군인이었다. 실질적으로 나라를 지키는 게 좋다고 했다. 입학 전 한 달간의 기초 군사 훈련을 위해 학교로 떠나던 날, 설레면서도 긴장이 되었는지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 놓고 신나게 따라 불러 젖혔다.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참군인의 포부를 얘기하며 씩씩하게 태릉으로 향했다.


기초 군사 훈련 기간은 연락이 안 되는 기간이었다. 학부모 커뮤니티에서는 아이가 잘 지내는지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가득했다. 누구는 편지를 받았다 하고 누구는 편지도 없다 하고, 택배로 아이의 소지품 박스를 받고 눈물 바람이 된 얘기 등 온통 아이 소식을 하나라도 얻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었다. 갑자기 전화를 받는 부모는 아이가 다치거나 입학을 포기하길 원하는 경우였다. 합격 소식에 마냥 기뻐했는데 이제 보니 현실은 어제까지 고등학생이었던 아이가 갑자기 군인이 된 것과 다름없었다.


한 달간의 기초 군사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입학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아이에게서 처음으로 전화가 왔다. 그런데 너무 들떠서 받은 전화 속 아이의 목소리는 기대와 너무 달랐다. 해냈다는 성취감으로 가득한 씩씩한 목소리를 기대했으나 아이의 목소리는 쉬고 착 가라 앉아 있었다. 군의 명령체계와 통제된 생활을 잘 해낼 자신이 없다고 했다. 엄동설한의 고된 훈련은 이겨낼 수 있겠는데, 왜 해야 하는 지 납득이 안 되는 일들을 계속해 내다간 나다움을 잃을까봐 두렵다고 했다. 함께 훈련받던 동기들이 퇴소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더 흔들리고 있었다.


아이의 갤럽 TOP5 강점 1위가 ‘분석’이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 왜 해야 하는지가 이해되지 않으면 힘들어한다. 그러니 명령체계로 돌아 가는 군 생활에 적응하기가 더욱 힘든 게 너무나 공감이 되었다. 입학식 날 울컥 눈물을 쏟는 아이를 보며 선배님의 친구인 사관학교 학교장으로 지냈던 분의 얘기를 해 주었다. “군인 인생에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사관학교 생도 시절이었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은 1학년이었다.” 그러니 조금만 참아보자 붙잡았다.


그 후로도 여러 번의 고비가 있었다. 대화를 원하는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한 면회를 자주 갔고 그때마다 아이는 내가 답을 줄 수 없는 고민을 꺼내 놓았다. 기존에는 부모로서 아이의 질문에 옳은 답을 주려고 노력했다면, 이제는 아이가 저 문제를 왜 꺼냈을까 진짜 원하는 건 뭘까 생각했다. 설득하던 대화가 공감과 질문으로 바뀌었다. 감사하게도 바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에도 아이는 정말 열심히 생각하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대화의 시작은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이지만 대화 말미에는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걸 찾아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처럼 주어진 일의 의미를 필요로 하는 후배들에게 의미를 찾도록 이끌어 주는 선배가 되는 것. 의미를 알기 위해 스스로 공부하 는 것. 자신과 같은 고민을 겪을 후배들을 돕기 위해 하루하루를 기록해서 잊어버리지 않는 것. 자신의 실수로 분대를 힘들게 했을 때, 대범하게 다독여 준 분대장 생도의 멋진 리더십을 기록해 두고 자신도 그런 멋진 선배가 되는 것.


아이를 신뢰하고 아이 자신의 내부에 답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대화를 풀어가니 놀랍게도 생각지도 못했던 해결책을 스스로 찾아냈다. 그리고 실천하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 정말 대견했다.


한국코치협회는 다음과 같이 코칭 철학을 말하고 있다.


“고객이 자기 개인생활 및 직업생활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전문가로 존중하며, 모든 사람은 창의적이고 완전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며, 누구나 내면에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 한국코치협회 -


만 19세 생일을 채 넘기지도 않은 아이를 자신의 생활에 있어 전문가이고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는 존재라고 전제하는 것은 부모로 엄청난 도전이다. 코칭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평생 못했을 생각이다.


이제는 상대가 누구이든 이 철학을 가슴에 품고 대하게 되면 엄청난 잠재력을 끌어내고 변화를 불러올 것을 믿는다.


혹한기를 지나고 혹서기도 지나면서 아이는 몸도 마음도 행동도 쑥쑥 성장하고 있다. 앞으로의 인생에도 순간의 힘듦에 묻혀 포기할 까 말까 힘든 고비들이 계속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잘 이겨내고 나면 힘들었던 순간이 두고두고 추억할 만한 달달한 라떼가 되어줄 것을 알기에 오늘도 자는 아이를 보며 속으로 응원한다. ‘아들, 사랑한다. 너를 믿고 너의 길을 응원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