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과 글쓰기의 공통점
100번째 글을 발행하는 날
오전의 여유로운 시간을 빼앗는 아이의 방학이 왔다. 오전에 할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아이와 고군분투하다 보면 괜스레 지친다. 육체적으로 힘을 쓴 일도 없는데 정신적 소비가 컸던 탓에 짬짬이 오후에 시간이 날 때에도 컴퓨터 앞에 앉기보다는 침대에 몸을 기대기에 바쁘다.
오늘도 그런 날 중에 하나였다.
월요일부터 오전에 일이 많았다. 아이를 대동해서 일을 처리하고, 피아노를 보낸 한 시간 동안 선택한 것은 푹신한 침대였다. 도서관에서 전화가 오지 않았다면 몸을 일으켜 세우지 못하고 안락한 맛에 취해 있었을 것이다.
"강사님, 재료비가 모두 입금됐는지 확인 가능하신가요?"
핸드폰으로 알 수 없던지라 어쩔 수 없이 컴퓨터를 켜야 했다. 컴퓨터에 불이 들어왔고 엉덩이를 의자에 붙였기에 브런치 창을 열었다. 매주 수요일, 브런치 요일로 정해 놓고 글을 쓰지만 여의치 않을 때는 목요일 금요일 가리지 않고 일단 글을 써왔다. 일주일에 글 한 편 쓰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글동무들과 글을 나누는 것이 한 주의 숙제이지만, 기쁨을 주는 선물 같아서 놓치고 싶지 않다.
당장 매주 수요일에 연재하기로 했던 글을 쓰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글 쓰는 시간이 보통 한 시간 내로 이뤄지긴 하지만 마음에 발동이 걸리지 않아 억지로 쓰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면 매거진의 제목들 분류에서 적합한 것을 찾아보았다. 글쓰기, 딸에게 주는 이야기, 보통의 일상... 어느 것으로 글을 써야 할지 떠오르는 글감이 없었다.
글감은 일주일 내내 머릿속에서 생각한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걸어 다니면서도 어떻게 쓸지 고민하는데 지난주부터는 강의에 대한 생각이 1순위로 잡혀 있다 보니 글감이 뒤로 밀렸다.
이번주를 건너뛰고 싶지는 않지만 주어진 시간은 짧았다. 그러다 문득 들어온 숫자가 있었다.
"글 99"
100번째 글을 쓰면 파티를 하자는 글동무의 말이 생각났다. 100이라는 숫자가 주는 특별한 느낌이 있다. 그동안 쉬지 않고 글을 써왔으니 기쁨을 나누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연인들이 100일을 축하하는 것처럼 나만의 100번째 글쓰기를 기념하며 오늘의 브런치 글을 쓰기로 했다.
매주 글을 썼다면 2년 동안 글쓰기를 이어온 것이다.
"나는 왜 글쓰기를 계속하는 걸까?"
최근에 본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을 보고 이유를 알았다. 영화에서 '정인'은 '두현'을 일본에서 만난다. 내진설계자였던 두현과 요리를 배우기 위해 일본에 갔던 정인은 사랑에 빠진다. 서로가 한국인인걸 알지만 정인은 일본에 있는 동안은 일본어 만을 쓰기로 한다. 바른말을 일삼는 정인은 학교에서 첫눈에 만 반하는 미녀로 유명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바른말을 하는 정인을 못마땅해하는 남자들이었다. 일본에서 일본어로 만 이야기했으니 정인의 본모습을 두현은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한국에 다시 와서도 그들의 사랑은 이어졌고 결혼을 하게 됐다. 시간이 흘러 출근을 위한 아침 시간이 찾아왔다. 정인은 두현이 큰 일을 보는 화장실에서 초록색과 주황색 건강음료를 들고 있다.
"화장실에서 큰 일 보면서 시집 들고 있는 것보다, 먹으면서 싸는 게 더 인간적이야"라고 말하는 정인을 당하지 못하는 두현은 큰 일을 보면서 건강 음료를 마신다. 정인의 말대로 먹고 싸면서.
정인은 말이 많다. 불만도 많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면 죽을 것처럼 방금 헤어져 출근하는 남편에게 전화해 우울한 감정을 쏟아붓는다. 견디다 못한 두현은 이혼하고 싶은 건수를 만들기 위해 카사노바에게 부탁한다.
"제 아내를 유혹해 주세요"
카사노바는 두현에게 부탁한다.
"아내의 모든 것을 종이에 써오세요"
"아내가 일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세요. 동선이 있어야 우연처럼 마주칠 수 있으니까요"
정인은 라디오 게스트로 일을 하면서 바빠진다. 세상에 불만이 많았던 정인은 거침없는 독설로 라디오에서 인기를 끈다. 우연처럼 자주 마주치는 카사노바와 친밀한 연대감을 쌓아간다. 같은 것을 좋아하고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카사노바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마친 정인은 더 이상 두현을 붙잡고 매달려 말하지 않는다.
주변에서 정인에 대한 평가가 높아지고 다른 남자에게 신경을 더 쓰는 정인이 못마땅한 두현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다. 반면 정인은 일을 하면서 '자신'을 찾아간다. 카사노바와의 관계도 있겠지만, 일을 하면서 원고를 쓰고 라디오에서 하고 싶은 말들을 함으로써 잊고 있던 진짜 나에 대해 돌아보았던 것 같다.
신춘문예에 당선이 될 만큼 글쓰기를 잘했던 정인이었다. 당선된 작품에서 '나는 창녀다'라는 글귀에 아버지가 화를 내서 작가의 꿈을 접게 됐다. 노력해도 가족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정인은 7년 동안 열심히 하기를 포기한다. 하지만 라디오 게스트를 하면서 다시금 느낀다. 글쓰기를 좋아했던 자신을. 거기에 자신의 글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정인을 치켜세워주는 카사노바 덕분에 바닥에 있었던 자존감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 같다.
영화는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독설마녀라고 불리는 정인의 고운 얼굴과 딸기 같은 붉은 입에서 따발총처럼 논리 정연한 말들을 쉴 새 없이 늘어놓을 때가 좋았다. 하지만 청자에 따라 정인의 말은 판이하게 갈린다. 정인의 목소리가 듣고 싶지 않은 두현에게는 독설이었지만, 정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카사노바와 청자들에게는 사이다 같았다.
2년 동안 100편의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내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해 주는 흰 여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만히, 온전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브런치라는 공간이 있어서 손을 쉬지 않고 움직여 왔다. 머릿속에 정리되지 못해 꺼낼 수 없는 말들을 적다 보면 얽힌 실타래가 풀려 일정한 패턴에 맞춰져 정렬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온전히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살 수 없다. 단둘이 만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더욱 어렵다. 당장 나의 스케줄만 보더라도 누군가를 붙잡고 이야기하기에는 정신없는 일상이다. 그럴 때 브런치라는 공간이 주는 아늑함이 좋다. 내 말을 끊지도, 잘못 이야기했다고 타박하지 않고 온전히 들어주는 것 같아서 주저리주저리 생각을 털어놓게 된다.
매일 쓰지는 못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북받치는 감정을 쏟아부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후련해지는 글쓰기가 좋다. 오히려 수요일이 지나가고 있는데도 글쓰기를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답답함이 치밀어 오르려 하니, 글쓰기는 내 삶에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글 쓰는 기쁨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명한 작가가 아니라도 브런치에서 달아준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정인처럼 글쓰기를 하면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앞으로 200일 300일을 지나도록 글 쓰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고 싶다.
축하해, 100번째 발행하는 나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