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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금금 Jan 18. 2024

이야기를 세탁비로 받는 산복빨래방을 읽고

기획하는 글쓰기를 시작하며

두 달 전, 동인천에 위치한 나비날다 책방에서 지우개 스탬프 수업을 들었다. 으레 공짜로 수업을 받는 만큼 책 한 권을 사는 것이 예의라는 이야기를 들었던지라 어떤 책을 사면 좋을지 둘러봤다. 자기 개발서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소설에서 많은 감흥을 느끼는 요즘이다. 이야기 속에서 삶의 깨달음을 얻는 것이 좋아 자주 읽지는 않아도 손이 간다면 소설을 주로 읽고 있다. 고르던 중, 눈에 들어온 표지는 유행하는 표지 스타일에 눈이 가는 제목을 하고 있었다.


세탁비는 이야기로 받습니다, 산복빨래방


이야기를 세탁비로 받는다니 재미가 보장된 셈이었다. 고민할 것 없이 책을 펼쳐보지도 않고 표지와 제목만을 보고 값을 지불한 채 책방을 나왔다.


마을의 하나뿐인 이상한 빨래방이라는 제목의 프롤로그를 보았다. 작가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을 잘 선정한다고 생각했다. 낚시하듯 자극적인 허울뿐인 제목이 아닌 삼삼하고 정감이 가는 제목을 보면서 책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갔다. 그리고 프롤로그를 읽고 무릎을 탁! 쳤다. 이 책이다.


우연히 발견한 책이라기엔 모래사장에서 보석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다. 산복빨래방은 부산일보에서 만든 '부산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담은 유튜브 제작에 관한 에세이다.


부산에 시댁을 둔 나는 결혼하고 몇 년간 시아버지의 가이드를 따라 부산 이곳저곳을 둘러본 적이 있다. 영도 다리를 지날 산등성이에 있는 형형 색색의 집들을 보면서 영화 속 세트장을 본 것 만 같았다. 산복도로에 빨래방을 차리고 세탁비를 이야기로 받는 산복빨래방은 부산 시민들의 진짜 이야기를 담아내는 곳이었다.


산복도로란 산허리를 지나는 도로를 뜻한다. 1950년대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 피난민이 몰리면서 형성된 산복도로야 말로 부산의 근현대사와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담은 곳이다. 감천문화마을 같은 곳은 부산에서는 꼭 가봐야 할 관광코스로 자리매김했다. 감천문화마을 외에도 흰여울문화마을과 해돋이마을등의 산복도로가 있지만 부산일보에서는 호천마을에 세탁방을 차렸다. 단순한 취재가 아니라 주민이 필요한 것을 고민하여 세탁방을 차렸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어르신들은 떠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들과 이야기를 한다. 주민과 라포르(rapport)를 쌓으며 빨래방에서 나이키 공장에서 일했던 여공의 이야기, 180 계단의 에피소드 등과 같은 살아있는 부산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다.



책의 이미지는 '주황'이다. 어둡고 좁은 산복도로를 밝히기 위해 저렴한 주황색 나트륨등이 골목을 잡았던 그때를 떠올리며 산복빨래방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책에 담긴 이야기만큼이나 주황으로 인쇄된 책의 분위기에서도 따뜻함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내가 공감했던 부분은 작가이자 기자가 고민했던 조회 수였다. 부산일보 신문사의 지원으로 빨래방을 차리고 별도의 유튜브를 채널을 운영하면서 실적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미디어 사업부에서 취재 기사를 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내보냈는데 생각보다 조회수는 높지 않았다. 생각지 않게 등장한 고양이 '산복이'를 통해서 많은 이들의 조명을 받기도 했지만, 이것은 그들이 의도한 부산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유튜브에서 비중을 줄이기도 했다. 적나라하게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평가하는 글을 가장 인상적이었다.


댓글이 없는 영상은 조회 수도 낮았고, 이는 정량적으로 평가했을 때 성공하지 못한 영상을 의미했다..... 산복빨래방은 조회 수로서는 '실패'했다.... 하지만 이는 우리 회사에 필요한 실패였다. 산복 빨래방은 "모두가 조회 수만 말하지만 부산이기에 할 수 있는 콘텐츠를 하자"라는 다짐에 한 발짝 다가선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조회 수에서는 실패했을지라도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할 때의 기획의도와 목표에서는 다행히 완전한 실패는 아니다.


조회 수만 쫓는 것을 넘어 지역 언론사가 조명해야 하는 지역의 이야기에 집중했던 '정공법'에 구독자들은 박수를 보내주었다. 조회 수라는 성적표가 시시각각 나오는 유튜브 전쟁터에서 '진짜 구독자'를 찾는 낭만은 '자기 위로'아니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극적인 유튜브 세상에서 4000명의 구독자들에게 정공법이 신선한 자극으로 느껴진 게 아닐까.   


2010년 들어 여러 도시 재생 사업이 시작되면서 산복도로는 더욱 유명해졌다. 그런 산복도로에 사는 어머님, 아버님의 이야기는 특별한 사람, 지역의 이야기가 아니라 '기사화'되지 않는 평범한 이야기로 치부됐다..... 우리는 낯설게 보기 위해 산복도로라는 공간에 시설을 만들기로 했다.


콘텐츠는 누군가 보아야 의미를 갖는다. 아무도 보지 않는 내용이라는 건 세상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자의 역할은 새로운 팩트와 기사를 발굴해 내는 것이다. 거의 맞는 말이다. 하지만 있는 정보나 내용을 색다르게 또는 잘 정리해서 독자들 입맛에 맞게 큐레이팅 또는 재해석하는 것도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이는 지역 신문에서 더욱 그러하다. 지역의 이야기는 전국 독자들에게 쉽게 닿지 못하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200~215page <산복빨래방> 내용 중 일부 발췌


산복빨래방에서 다룬 부산의 이야기는 시아버지, 시어머니에게 듣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알게 해 줬다. 교과서 속 근현대사에서 다루지 않았던 그 시절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하지만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산복빨래방을 기획하고 제작하면서 겪었던 기자의 고충이 더 눈에 들어왔다.


'콘텐츠는 누군가 보아야 의미를 갖는다' '조회 수라는 성적표가 시시각각 나오는 유튜브 전쟁터'라는 말들이 브런치에서 사부작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글이 쓰고 싶어서, 내가 가진 기억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 시작한 글쓰기였다. 조회 수가 많지 않아도 글을 쓸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갑자기 뻥 터지는 조회 수를 보면 가슴이 벌렁벌렁 거린다. 다음 메인 혹은 브런치 메인에 걸려서 하루에 1만이 넘어가는 조회 수를 한 시간 단위로 확인하고 캡처하는 나를 보고 있으면 가끔 궁금해진다.


내가 진짜 원하는 글쓰기는 무엇일까?   


의도하고 글을 쓰지는 않지만 최근에는 많은 신경을 쓰며 글을 쓰고 있다. 끌리는 제목과 소재가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게 된다는 것을 체감하며 같은 이야기라도 좀 더 흥미를 끄는 제목은 없을지 고민한다. 기름에 튀기면 신발도 맛있다는 우스개 말처럼 김장, 시어머니, 친정엄마와 같은 소재를 다듬어 써 내려가면 코끝에 스치는 기름향처럼 한 번씩 들여다보게 된다.


그렇다고 없는 이야기를 지어서 쓰지는 않았다. 그저, 나의 하찮은 기억이 흐르는 강물에 떠내려가듯 사라져 버릴까 봐 목판에 새기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작년 나의 글쓰기는 (혹시나 읽을 수 있는) 독자를 생각하며 일상을 잘 정리해 써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메인에 올라 조회 수까지 올라가면 쳇바퀴 같은 전업 주부의 일상에 잔잔한 즐거움 선물해 준 고마운 소통의 창구였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 보아야 의미를 같는다는 말에 현혹되어 가고 있기도 했다.   


자유형을 잘해서 자유형만 하다 보면 평형, 접형과 같은 다양한 영법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물론 아직도 저 밑바닥에 있는 변변찮은 글쓰기이지만 쓰던 대로 쓰기만 하면 한 발자국의 도약도 없을 것이다.


신년 초 내가 읽은 책에 따라 그 해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 같다.


함께 글을 쓰고 그림일기를 쓰는 줄리 님의 말처럼,

산복빨래방을 기획했던 기자와 피디들의 이야기가 올해 나의 글쓰기 방향이 될 것 같다. 글감이라곤 보통의 일상이 전부이지만 그 안에서 얻게 되는 실낱 깨달음이 누군가와 공유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하나로 뭉쳐져 있지 못하는 실들을 모아 복실 한 실타래를 감듯 한 줄기의 기획을 짜서 한 편의 책을 완성해야지.


산복빨래방은 지역 주민들의 삶을 전달하고자 했던 부산일보의 치밀한 전략이었다. 그들과 동거동락하면서 주민을 인터뷰하는 기자 사이의 딱딱한 인터뷰 형식이 아니었다. 동네 청년과 이웃집 할머니의 진솔한 대화가 이어졌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것이다. 산복빨래방에서 말하는 비효율 속의 진정성을 알 것 같다.


우리의 기록이 어머님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인 '오늘'을 남기는 날이었구나.


 

오늘을 남기는 일, 글쓰기를 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사진으로는 다 말할 수 없는 흩어진 생각의 퍼즐을 모아 하나의 글로 완성하여 되돌아볼 수 있는 매체는 누가 뭐라 해도 글쓰기다. 글쓰기가 좋아서 무작정 쓰고 있기에 효율면에서는 떨어질 테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오늘을 남기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다만, 기획하여 글을 쓰고자 하는 새로운 방향을 산복빨래방을 통해 배웠으니 실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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