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그림책 독서모임에서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혼자서 읽었다면 아!라는 탄성도 나오지 않았을 법한 그림책이었는데 함께 읽다 보니 그림책과 자신만의 이야기가 합쳐서 여러 시각으로 파헤칠 수 있었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손전등을 비춰 가다 늘어선 가로등이 펼쳐져 환하게 밝혀주는 기분이랄까?
한 권의 그림책을 읽는 것도 혼자보다는 서로 이야기하면서 더 풍성해지는 것처럼 한 편의 영화 화도 마찬가지였다. 혼자 봤으면 그냥 지나쳤을 장면들, 느낄 수 없었던 감정들을 영화 댓글 혹은 전문가의 리뷰를 통해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와닿는 것은 친밀한다고 느끼는 이들이 영화를 보고 가졌던 생각은 엿보는 일이다.
최근 글쓰기 메이트가 <싱글 인 서울>을 보고 브런치 글을 썼다. 안 그래도 넷플릭스에서 흥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영화였다. 가족 안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싱글'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일 것 같아 구미가 당겼다. 글을 읽고 다음 날 새벽 6시 눈이 떠졌다. 조금 더 자려고 눈을 감았다간 '싱글'이 아니라 '엄마'가 되어 조용히 영화를 감상하는 것은 언감생심일듯했다. 발끝으로 매트 위를 지그시 누르며 방으로 숨어 들어갔다. 아이들을 재운뒤 자정에 보는 영화도 좋지만 밤의 색이 물러나 붉은빛이 떠오르는 해를 마주하며 혼자 보는 영화는 '싱글'의 느낌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영화는 심플하고 세련됐다. 전달하는 메시지가 싱글이 좋다? 싱글도 좋지만 we are the world를 잊지 말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만의 시간도 분명 필요하다? 여러 가지가 분분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든 책이든 모든 것은 자기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영화를 보며 느낀 것은 결국 '혼자'라는 것이다. 혼자라는 말이 홀로 있다는 단순한 의미보다는 '나'의 생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 영화를 세 명의 글쓰기 메이트가 봤지만 모두 각자의 시선으로 글을 썼다. 재미있게도 같은 영화 안에서 느끼는 것들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영화 안에서도 이와 같은 장면이 나와 이목을 끌었다. <싱글 인 서울>에서 임수정은 출판사의 편집장이다. 싱글의 삶을 책으로 담은 [싱글 인 더 서울]과 [싱글 인 더 바르셀로나]를 기획하고 있다. 이 중 [싱글 인 서울]은 이동욱이 [싱글 인 바르셀로나]는 이솜이 작가로서 글을 쓴다.
싱글의 장점만 나열하기보다는 첫사랑의 기억부터 거슬러 올라가 어떻게 싱글의 삶을 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쓰다 보니 이동욱과 이솜, 두 작가의 글이 상당히 닮았다는 것을 발견한다.
호텔에서 일하는 남녀가 사랑에 빠져 첫사랑을 경험했지만 안타깝게 이별하게 되는 게 두 작가의 첫사랑 이야기이다. 하지만 두 편의 글은 등장인물과 배경이 같을 뿐 에피소드와 감정에서 다른 부분들이 발견된다. 예를 들면 이솜의 글에서는 남자가 보던 만화책에 여자가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묻혔고, 나란히 앉아 여자는 <상실의 시대>를 읽는다. 반대로 이동욱의 글에서는 남자가 <상실의 시대>를 읽고 있을 때 여자가 다가와 초콜릿 아이스크림 묻힌다. 그리고 여자가 옆에서 만화책을 읽는다.
시간이 흘러 이동욱 만화책에 초콜릿 아이스크림 자국을 발견하여 기억의 오류를 맞이하였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상황을 왜곡시켜 놓은 기억이 그에게 박힌 인생의 전부였다는 것이다.
갈등은 항상 우리를 뒤따른다. 친구, 부모, 부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말을 주고받는 대상이 있다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오해로 인한 갈등이다. 의도가 상대에게 온전히 닿기를 바라지만 듣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식대로 해석하고 느낀다. 그동안 그와 쌓아왔던 감정들과 사건들을 배경에 깔아 놓은 채로 상대가 하는 이야기를 필터링해서 이해하기 마련이다. 말로 내뱉은 화살이 과녁을 향해 일직석으로 가지 못하고 듣는 이가 만들어 놓은 궤도를 따라 오해의 중심판에 박히는 것이다.
두 주인공이 같은 상황을 겪었지만 다른 장면으로 기억되는 건 이처럼 내가 너일 수 없기에 각자의 영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혼자'를 이야기하지만 '같이'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였다. 같은 상황을 두고 네가 느꼈던 그날의 이야기와 내가 느꼈던 그날의 이야기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화살이 오해를 뚫고 제자리를 찾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말로 싸우는 기술이 아니라 조용히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알아차렸겠지만 이동욱과 이솜은 연인사이였다.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법칙을 성실히 수행하여 헤어졌지만 명쾌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미워하는 마음으로 지냈을 터다. 그런데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글로 쓰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눠 읽으면서 눈처럼 부풀었던 감정이 녹아내리지 않았을까? 부정하지 않고 오롯이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혼자 살 수 없는 시대에 꼭 필요한 스킬이 아닐 수 없다.
같은 그림책을 읽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같은 영화를 보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듯 '나'를 존중해 주고 '개인'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싱글'이면서도 '함께'살아가는 윤택함을 느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