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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오즈처럼 사기를 칠까?

<오즈의 마법사>를 읽고

by 친절한금금

굉장히 유명한 인문고전 <오즈의 마법사>를 누구나 다 알 것이다. 도로시와 허수아비, 사자, 양철 나무꾼이 각자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떠나는 여행을 떠난다. 도로시는 원래 살 던 곳으로 허수아비는 뇌를 사자는 용기를 양철 나무꾼은 심장을 얻기를 원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딱 이 정도였다. 오즈의 마법사라는 제목이 무색하게도 '오즈'의 존재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오즈는 유능한 마법사여서 도로시와 친구들의 소원을 이뤄주는 훌륭한 마법사가 아니었나?라고 생각했다.


마흔이 되어 읽은 <오즈의 마법사>는 충격의 도가니였다. 뇌가 없다는 허수아비는 오즈를 찾기 위해 떠나는 여행에서 가장 많은 지혜를 나타냈다. 어떤 곤란한 상황에서도 허수아비가 제시하는 해결책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는 없었다. 그럼에도 허수아비는 뇌를 가지고 싶어 했다. 뇌가 들어 있는 이들보다 얽혀 있는 매듭을 풀 수 있는 지혜를 지니고 있었으면서도 본인만 그 사실을 모르는 허수아비가 당황스러웠다. 보이지 않는 지혜보다 물리적 형태를 지닌 뇌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허수아비의 욕구를 모른 척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즈를 찾은 도로시 일행은 개별적으로 오즈를 만난다. 이들이 만난 오즈는 하나의 모습이 아니었다. 때로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때로는 거대한 머리를 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변화무쌍한 능력자 오즈는 이들에게 서쪽 나라 나쁜 마녀를 무찌르고 오면 모두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도로시와 친구들은 나쁜 서쪽 마녀를 무찔렀고 오즈를 다시 찾아와 소원을 이뤄줄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그들 앞에 나타난 무시무시한 오즈의 정체는 작고 왜소한 노인이었다.


"쉿, 얘야 살살 말해라.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니? 그러면 난 끝장이야. 다들 날 위대한 마법사라고 믿고 있거든."

오즈는 평범한 노인이었다. 아름다운 여인, 맹수, 불덩이, 거대한 머리라고 생각하게 만든 오즈의 속임수에 홀딱 속았던 것이다.


"난 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내버려 뒀지. 날 무서워하면서 내가 시키는 건 뭐든지 하겠다고 약속했거든."


"내 백성들은 초록색 안경을 하도 오랫동안 써서 대부분 진짜 에메랄드 시인 줄로 알아"


이런 내용을 볼 때마다 사람의 잠재의식을 정복하는 말의 힘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부정적으로 하는 말이지만 우리는 흔히 주입식으로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을 가스라이팅이라고 부른다. 에메랄드 백성들은 오즈에 의해 오랜 시간 가스라이팅을 당해왔다고 생각한다. 다른 도시들과 똑같은 곳에서 초록색 안경을 쓰고 진짜 에메랄드 시라고 착각하게 돼버린 백성들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가스라이팅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부정적으로 사용되어 생긴 표현이라 좋지 못한 시선이 갈 뿐이지, 긍정적인 말들을 주입한다면 없던 용기가 불현듯 생기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


"너는 뇌가 필요 없어. 매일 새로운 걸 배우고 있으니까. 아기들이 뇌가 있다고 많이 아는 건 아니잖아. 경험을 통해서만 무엇인가 배울 수 있단다. 세상을 오래 살수록 그만큼 경험도 쌓이는 법이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뇌를 갖지 못한다면 난 몹시 불행할 거예요."


"내가 새로운 뇌를 많이 넣어 놨으니까 앞으로 넌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


하지만 말로써 온전한 믿음을 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미 오랜 시간 극도의 좌절을 맛본 이들에게 잘할 수 있다는 응원의 한마디보다 부적처럼 행운을 안겨 줄 수 있는 소소한 장치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뇌가 가지고 싶어 했던 허수아비에게 지푸라기를 조금 더 넣어주면서 '이건 뇌야'라고 또 사기를 치는 오즈를 보면서 느낀다. 하지만 허수아비에게는 그런 허상이 필요했다. 돌이 됐든, 나뭇가지가 됐든 머리 안에 들어가 뇌라고 생각되는 것을 넣어야 허수아비는 진짜 '뇌'를 지녔다고 안심했을 것이다. 이미 그에게는 오랜 경험을 토대로 한 지혜가 넘쳐흐르는대도 말이다.


<오즈의 마법사> 제목이 도로시가 아닌 이유는 뭘까? 이 책의 주인공은 역시 '오즈의 마법사'이기 때문일까?


도로시와 친구들은 오즈가 아니었어도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 오즈가 그들에게 해준 건 '적당한 사기와 속임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기인지 진리인지 판단하는 건 상대의 '믿음'이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으면 콩이 아니라 팥으로 메주를 띄울 수 있다. 실제로 팥으로 만든 메주가 제작되어 고추장을 만들기도 하니, 믿으면 이뤄지는 신기한 일들이 많다.


최근에는 긍정의 사기 즉 긍정 라이팅이라는 말들도 있다. "네가 뭘 할 수 있겠니?"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 아이들은 가스라이팅 효과로 자신감이 저하되고 수동적 성향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넌 어떤 일이든 성실히 잘 해내는 사람이야"라고 말 해 줬다면 어땠을까? 긍정 라이팅의 효과가 분명 있을 것이다.


도로시와 친구들에게 보이는 오즈의 여러 모습은 마치 엄마인 나의 얼굴과 같아 보였다. 때로는 아름다운 여인이지만 불같은 얼굴로 아이를 바짝 졸게 만드는 나는 사실 평범한 '여자'일뿐이다.


세상에 전부인 듯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들 눈에는 오즈만큼 그들을 이끌어줄 대단한 마법사로 보일 테지만 말이다.


인스타에 많이 떠도는 영상 중 두 아이에게 아침마다 구호처럼 말하는 엄마가 있다.


"나는 용감하다"

"나는 사랑스럽다"

"나는 어려운 사람을 도와준다"

"나는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삶에 활력을 주는 말들을 매일 아침 마법처럼 아이들과 외친다. 당연하게 아이들은 용기를 기본값으로 지닌 채 살아갈 것 같다. 아무렴, "넌 안돼, 너 따위가?"라는 말을 듣는 사람보다 마음이 더 건강하지 않을까.


그래서 오즈처럼 사기를 치고 싶다.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주문을 걸듯. 과거에 내가 해왔던 것처럼.


"난 노력한 만큼 해내는 사람이야. 노력은 배신하지 않아. 더욱 노력하자.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난,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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