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안의 정막을 깨우는 세로형 긴 광고판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학습지 광고 모델로 미녀 개그우먼 장도연이 나왔다. 요새 인기가 급상승하더니 광고에서도 자주 볼 수 있어 반갑다. 유튜브는 노래 모음밖에 보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찾아보는 프로그램은 장도연의 '살롱드립'이다. 겸손하면서도 재치 있는 말투와 특유의 유머 때문에 장도연을 좋아한다.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지만 그와 함께 하던 박나래가 승승장구할 때 장도연을 걱정했다.
함께 하면서 부럽지 않을까?
혹은 질투심에 절망하지 않을까?
살면서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같은 레인에서 서서 동시에 출발했지만 저 멀리 가 있는 상대를 보면 두 가지 생각할 것이다.
이번 생은 망했어. 포기해!
나도 열심히 해보자. 할 수 있어!
물론 그런 것들을 의식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길을 묵묵히 가다 보니 정상에 설 수도 있다. 비교를 하든 하지 않든 중요한 것은 포기하고 멈춰 땅굴을 팔 것이냐, 전진할 것이냐의 선택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본 그의 모습은 존버의 향기가 진하게 났다. 장도연의 개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개그에 대한 그의 진심 때문이다. 살롱드립에서 어떤 순간에 행복하냐고 묻는 말이 있었다.
"내가 던진 말이 너무 재치 있고 재밌어서 사람들이 웃었을 때, 이불속에서 웃으며 행복해요"
하고 있는 일에 진심을 담아 존버하는 그는 지금 승기를 잡은 느낌이다.
대학원에 재학할 때 미래에 교수감이라고 생각되는 박사과정 선배가 있었다. 실험실에는 박사과정 선배 3명이 있었는데 그중 열의가 넘치고 잘 가르치는 선배의 미래 모습을 내 멋대로 상상할 정도였다. 그런데 며칠 전 그 선배를 제외한 2명이 교수에 임용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교수가 어울릴 것 같았던 선배는 박사 졸업 전에 대기업에 취업하였다고 했다.
함께 대학원 생활을 했던 동기와 선배들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봐도 교수는 그 선배가 제일이었던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
"존버가 승리하는 거지, 두 선배는 졸업 후에도 과학원에 있으면서 논문 쓰고 공부 계속했으니.."
이 날 동기와 전화를 끊고 끊임없이 생각했다.
존버가 승리한다... 비속어라 차마 쓸 수는 없지만 버티면 승리한다는데 나는 과연 어디에서 버티기를 하고 싶은 걸까? 버티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자문했다.
버티다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1. 어려운 일이나 외부의 압력을 참고 견디다.
2. 어떤 대상이 주변 상황에 움쩍하지 않고 든든히 자리 잡다.
3. 주위 상황이 어려운 상태에서도 굽히지 않고 맞서 견디어 내다.
육아로 시간이 많지 않지만 짬을 내서 하고 있는 일이 '글쓰기'다. 살림도 해야 하고 아이들도 봐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하고 있으면서 하고 싶은 일이다. 어느새 글쓰기는 내 삶에 일 순위가 되어있었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고 난 후 고무장갑을 끼는 대신 키보드에 손을 올린다. 그들이 나가서 각자의 역할을 할 때 나 또한 나를 챙기기 위한 일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매일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아이가 아파서 집에 있는 날이나 방학을 맞이하면 손에는 어김없이 고무장갑을 끼고 있다.
전업주부에게 글을 쓸 수 있는 최적의 컨디션은 없다. 나에게는 아이들이 학원을 가고 오기 전 40분이 절호의 찬스다. 마감기한이 임박하여 잡다한 생각을 할 틈이 없을 때 발휘되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광속으로 타자를 두드린다.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화장실 안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시간에 글을 쓴다.
글쓰기를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은 없다. 그저 온전한 나로 살아가기 위해 나를 챙기는 글쓰기를 한다.
때로는 나를 다독여주어 위로해 주고, 때로는 앞으로 나가게 해주는 힘이 되어주는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이유다. 정리되지 않은 매일을 글자 하나에 박았다 지우며 하나의 문장으로 정렬하며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다.
버티다 보면 계속 들여다보게 된다. 계속하게 되면 잘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정성을 쏟은 시간과 정성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타고난 재능을 뛰어넘을 수는 없어도 꾸준한 노력은 분명 성장한 나와 마주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매일 1편의 글을 쓴 사람의 1년에 뒤에는 365편의 글이 있다. 아무것도 안 쓴 사람과 비교했을 때 꾸준히 글을 쓴 이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꾸준히 썼기에 글 솜씨도 늘었을 테고, 써 놓은 글이 있어야 누군가 보고 연락을 줄 것 아닌가.
운은 굴러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그러모으는 것이다. 내가 쌓아 놓은 노력 안으로 운을 가득 끌어당기는 것. 존버들이 승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오늘도 글을 쓴다. 글 솜씨가 나아지는 건 모르겠다. 하지만 어떻게 쓸지 고민했던 노력의 흔적들을 쌓으며 존버하고 있는 나에게 대운이 깃들기를. 의심하지 말고 버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