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대칭이 맞지 않은 것은 눈과 콧구멍을 포함하여 내 몸 모든 곳에 담겨있다. 데칼코마니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자연미를 갖추고 싶었다.
드라큘라가 어색하지 않은 것도 뻐드렁이가 양쪽으로 균일하게 위치하기 때문이겠지. 남의 피를 빨아먹을 것도 아니면서 선홍빛 잇몸 오른쪽 위로 드러난 뾰족한 이가 처음부터 거슬렸다. 이름조차 덧대어져 나왔다는 '덧니'는 밝은 웃음을 방해하는 장애물이었다.
웃음이 많은 내가 활짝 웃는 건 삼시 세 끼를 먹는 것처럼 당연했다. 하지만 사진에 찍힐 때마다 가지런한 치열을 밀치고 눈도장을 찍는 것은 덧니였다. 의식되기 시작하니 카메라 앵글 앞에서 김치 스마일보다는 꾹 다문 입꼬리를 당겨 치아가 안 보이게 하려고 꽁꽁 숨겨왔다.
덧니가 나와 있기 때문에 입매에 양 끝을 아무리 잡아끌어올려도 사선으로 미소 짓게 되는 사진을 볼 때마다 차라리 웃지 말걸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입꼬리가 땅끝으로 쳐지는 무표정은 더 싫어서 카메라 앞에서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본다. 덧니 있는 쪽은 힘을 덜 주고 덧니가 없는 곳은 더 끌어올려 억지로 균형을 맞추다 보면 눈가의 주름을 시작으로 어그러지는 얼굴이 연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수록 사진에 찍히고 싶다.
식물원에서 약속이 있던 날, 노인센터에서 단체로 관광을 오셨다. 다채로운 꽃보다 현란한 외투를 두른 어르신들의 행렬 속에 함께했다.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손지갑을 빙자한 핸드폰을 들이밀며 꽃과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신다. 검은 선글라스에 가려 보이는 건 환하게 웃는 모습과 자주색 바람막이뿐. 하지만 액정 안에 환한 모습이 꽃보다 예뻤다. 눈가에 주름도 진하게 바른 입술 위 루주가 보이는 웃음도 꽃놀이에 취한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고온 다습한 식물원 한가운데 신부대기실 같은 공간이 있었다. 그냥 지나치기는 아쉬운 이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일행들이 찍어 준 여러 장의 사진 중에서 결국 내가 고른 것은 부케로 입을 가리고 찍은 사진이었다. 그럼 그렇지. 나는 삐뚤어진 내 입모양이 싫었다. 억지로 웃다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입매를 어쩔 줄 몰라해서 찍힌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사진들을 바라보다 마음에 드는 사진 하나를 발견했다. 의식하는 것 없이 웃으면서 찍힌 자연스러운 웃음이었다. 같은 포즈로 찍은 사진 두 장 중에서 환하게 웃는 사진이 보기 좋았다.
억지로 균형을 잡으려 애쓰지 않아도 두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지고 입가에 팔자 주름이 갈매기 날개로 휘어 있었다. 보기 좋았다. 여전히 덧니가 눈에 보이지만 당당하게 웃고 있는 모습 속 덧니는 오히려 킬링 포인트였다.
예쁨의 정의를 세 가지로 묻는 말에 날씬하고 성형이 잘 된 사람이 예쁘다고 했다. 하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을 고민하는 말미에서 내가 느낀 것은 "당당함"이었다. 외형적인 모습이 어떻든 간에 온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사랑해 주고 당당하게 세상에 보이는 일이야 말로 진짜 예쁨이다. 관리하지 않고 나라면 무조건 좋다는 나르시시즘이 아닌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고 어디서나 자신 있게 스스로를 드러내는 사람이 좋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진 앞에서 덧니를 보이는 게 무척이나 싫었는데, 덧니를 보이고 환하게 웃어야만 양 입꼬리가 균형 잡히게 지어지는 표정이 여간 자연스럽다.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으로 당당하게 나를 표출해 내는 예쁨,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을 발견한 지금, 모나리자보다 아름다운 함박웃음으로 오늘도 주변을 밝게 물들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