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띠띠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 나를 반기며 서있는 큰 아이가 보인다. 얼싸안고 "엄마, 다녀왔어"라고 이야기하니 "엄마 보고 싶었어"로 화답한다. 반면 막내는 뒤에서 우리의 모습을 시큰둥하게 바라보고 있다. 평소라면 "엄마 예뻐, 엄마 좋아"를 연발하는 막내가 저녁을 먹으면서 이야기한다. "아빠는 예쁘고, 언니도 예쁘고, 나는 귀여워 그리고 엄마는 못생겼어". 당황한 나는 엄마가 왜 못생겼는지 물어본다. "엄마가 집 나갔잖아" "엄마 안 좋아". 5살 딸이 엄마를 못생겼다고 하면서 거리를 두는 이유는 바로 '엄마의 외출' 때문이었다.
코로나가 터진 이유도 있었지만 아이를 2년 터울로 낳으면서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나마 아이가 유모차라도 타면 신도림 역에서 유모차를 들고 계단을 오를지언정 나는 아이와 함께 서울로 친구를 만나러 갔다. 그러나 코로나는 상황이 달랐다. 전염병이라는 무서운 바리케이드가 아이들과 나를 집 반경으로부터 한 발 짝도 나갈 수 없게 만들었다. 시국이 조금 나아지면 구리 혹은 서울에 사는 친구들이 먼 길을 한달음에 달려왔다.
지난 주말 친구들이 서울에서 만난다는 연락이 왔다. 너도 나올 수 없냐는 친구에 말에 한참을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부탁을 했다. 한 달에 두 번은 양가 부모님을 뵙고 남은 두 번은 출근을 하면서 집에서 쉬는 사람에게 아이를 맡기는 일도 미안했거니와 아이 둘이 과연 잘 있을지 앞선 걱정 때문에 나는 물어보는 일 자체가 조심스러웠다. 에둘러 말하는 나와는 달리 사이다같이 명쾌하게 "다녀와"라고 말해주는 남편의 전화를 붙잡으며, 평소에는 나오지 않는 옥타브의 목소리로 들떠서 "고맙다"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토요일 아침이지만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들떠서 새벽 1시, 4시에 깨며 드디어 7시가 되었다. 미리 엄마가 외출한다는 사실을 말해주면 좋을 테지만 '나도 같이 갈 거야'를 연발하며 울었던 전적을 생각하면 차라리 눈을 떴을 때 없는 게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007 작전을 펼치듯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웠다. 자다 깨면 엄마 배에 머리를 대고 다시 잠을 청하는 버릇이 있는 막내이기 때문에 혹여나 준비하는 소리에 일어나지는 않을까 모든 행동에 만전을 기했다. 그래서 머리를 못 감고 나간 것이 몹시 후회되지만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법이니 나가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현관문을 나서며 '야호'를 외치는 순간 '덜컥'하고 걸리는 상자가 문 앞에 있었다. 아이들이 배고플 때 먹으라며 외출하는 나를 배려해서 친구가 보내준 샌드위치였다. 살금살금 싱크대 위로 샌드위치를 꺼내 놓고 아빠 배에 얼굴을 대고 잠든 막내와 방바닥에 얼굴을 파 묻고 자는 큰 아이를 눈에 담고 집을 나섰다.
아이들이 등원하고 주어지는 시간이 아니다. 그 시간은 온전히 나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밀린 살림을 하거나 집안일과 관련된 주부의 일상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강남으로 가는 버스 안에 있는 시간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이었다. 비일상의 시작. 설레는 마음으로 무엇을 할지 손에 잡히지도 않았다.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보고 싶다가도 저녁에 들어갈 때 배터리가 없을까 봐 최소한의 연락만을 한 채 가방 속에 고이 집어넣어 두었다. 무거운 가방이 싫어서 들고 나왔던 소책자를 꺼내서 읽는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으며 내용보다는 제목을 깊게 생각하며 '사람은 일탈이 주는 행복을 원동력 삼아 살아가는 거구나!' 무릎을 치며 혼자서 웃었다.
친구들과 조조영화를 보고 근처 맛집에서 점심을 먹으며 수다가 그치지 않았다. 20대에는 일상이었던 흔한 일들이 이제는 비일상이 돼버린 지금, 나는 그날을 그리워하면서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때를 회상하며 온 힘을 다해 현재를 즐겼다. 그때와 다른 지금의 일상이 무엇보다 소중하지만 가끔 일상과 비일상의 틈을 벌려주면서 지루해질 수 있는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주일이 지나가는 지금도 아이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엄마가 집 나갔잖아" "이모 만나러 멀리 갔잖아". 5살 막내는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빠, 언니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엄마의 외출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첫 아이를 출산한 뒤 나 홀로 외출한 일이 5번도 되지 않는다. 심지어 3년 사이에는 두 번뿐인데 야속하게도 아이들은 엄마의 외출 뒤에 꼭 탈이 난다. 엄마가 없어서 받지 못했던 관심을 더 받고 싶어 하는 것이 콧물과 기침으로 발현되어 다시 한번 비일상을 즐기고 싶은 나의 마음에 빗장을 걸게 만든다.
조금 더 크면 분명 자유롭게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못 참을 일도 아니지만 오랜만에 맛본 비일상의 틈이 지하수라도 끌어올릴 것처럼 깊게 새겨졌다. 매번 아쉽고 목마르기 때문에 친구들과의 소중했던 시간이 오늘의 일상을 살아가는 나에게 활력소가 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시간과 아이들이 허락한다면, 일상과 비일상의 틈을 더 벌리기 위해 또 집을 나가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