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소매 붉은 끝동>을 6번 정주행 한 이유

마땅할 '의(宜)'가 주는 의미

by 친절한금금

최근 이준호 배우가 백상 예술대상에서 인기상과 남자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한 바 있다.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남다른 연기력을 선보이며 매력적인 이산을 연기했던 이준호는 수상을 하기에 마땅했다. 나 또한 <옷소매 붉은 끝동>의 여파로 이준호라는 배우에게 빠져 난생처음 '덕질'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음악이 있으면 질릴 때까지 듣는 성향이 있지만, 드라마를 두세 번 보는 것은 시간을 낭비한다는 생각 때문에 일부러 다시 보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옷소매 붉은 끝동>은 지금 6번째 정주행을 하고 있다.


나는 왜 이 드라마를 반복해서 보는 것일까?


처음 드라마가 좋았던 이유는 잘생긴 외모에 연기까지 잘하는 이준호 배우 때문이었다. 심지어 베테랑 사극 여배우 이세영까지 함께하니 드라마를 보는 내내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왕이라는 위치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을 온 마음으로 다 할 수 없었던 안타까움이 전파를 넘어 나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지만 그 보다 나의 가슴을 죄여 왔던 것은 덕임이라는 인물 때문이었다.


궁녀였던 덕임은 왕의 승은을 두 번이나 거절했지만 결국 후궁이 되어 의빈으로 기록된 실존인물이다. 드라마에서 이세영 배우가 밝게 표현했던 '덕임'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일개 궁녀였다. 자신을 잃고 싶지 않아서 왕의 승은을 거절했던 시대를 앞서 갔던 여인, 덕임은 드라마 보는 회차가 거듭될수록 나에게 아픈 손가락이었다.


드라마에서 유독 내 귀에 꽂히는 대사는 "마땅히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라는 덕임의 말이었다. 궁녀라고 한다면 왕 옆에서 먹을 가는 일, 탕약 준비, 청소 등 여러 가지 업무가 있다. 일의 경중을 따진다면 깃털처럼 가벼운 누구나 할 수 있는 하찮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궐에 궁녀가 없다면? 과연 누가 왕을 자신의 몸처럼 보필할 것가. 덕임은 물 한잔을 왕에게 올리면서도 자신의 일에 신념과 소신을 지니고 있었다.


MBC 드라마 홈페이지

자뭇 나는 궁녀라는 직책이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의 입장과 다를 바 없다고 느껴졌다. 설거지와 청소는 전업주부인 내가 "마땅히" 할 일이지만 나는 이를 완강히 거부해왔다. 자아실현을 한다면서 설거지는 안 해도 영어공부는 했고, 빨래는 쌓여있어도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을 우선시했다. 하지만 쌓여있는 살림을 보면 한숨이 나왔다. 자아실현을 하면서 자존감은 높아졌는데 아무도 해주지 않는 살림을 보면 똥 싸고 뒤 안 닦은 기분 나쁜 느낌이 없어지질 않았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을 때의 참담한 기분이 이렇게밖에 표현이 안된다.)


'마땅할 의()'라는 시호를 받은 의빈은 정조가 보기에 마땅하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덕임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내 일을 돌아보았다. 내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오로지 남편의 월급으로 살고 있는 내가 집에서 맡고 있는 역할은 집안을 살피는 일이다. 아이들을 보육하는 일, 집을 청소하고 식구들의 밥을 챙기는 모든 것들이 나의 일이다. 물론 주말은 부부가 함께 할 수 있으니 예외로 치더라도 평일만큼은 나의 일을 마땅히 해야 할 일로 여기고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땅할 이라는 글자에는 '좋아하다'라는 뜻도 있지요?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의빈이 정조에게 물어보는 대사였다. 주어진 임무를 마땅히 하라는 의미에서도 있지만 좋아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의(宜)'라는 글자. 이제는 내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의무감과 함께 좋아하는 마음으로 다가가려고 한다.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덕임은 일을 마치고 처소로 돌아와 유일하게 왕의 명을 거역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패관 소설 필사'를 했다. 왕이 허락한 일이 아니면 나의 생각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궁녀가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희열을 느꼈던 것이다.


새근새근 아이들이 잠든 시간, 어두운 방 안에 스탠드를 켠 나는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낮 동안 아이를 안았던 손에 펜을 쥐고, 혹여나 다칠까 아이를 따라다니기 바빴던 눈은 <도덕경>을 보며 필사를 했다, 그 외에도 그림일기 쓰기와 독서 같은 행위를 통해 엄마가 아닌 온전한 '나'에게 다가간다. 아직 어린 막내가 울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시간이더라도 나는 매일 밤 나에게로 통하는 문을 두드린다.


내 것이 아니라고 여기며 하기 싫었던 살림이 마땅한 것으로 생각하니 한결 가벼운 짐이 되었다. 자신의 역할에 자부심을 가지고 임했던 덕임처럼 나도 전업주부라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할 생각이다. 그렇다고 나를 포기할 생각은 없다. 맡은 바 임무가 있어 마땅히 각자의 위치해서 할 일을 하지만 나를 돌볼 시간이 생긴다면, 아니 일부러 마련해서라도 나를 지켜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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