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사돈을 초대한 친정엄마

by 친절한금금

명절을 한 달 앞둔 시점, 식탁을 사이에 두고 시어머니와 친정 엄마가 우리 집 거실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언제 한 번 놀러 오세요"

"그러게요, 다음에 며느리 집에 오는 날 한 번 찾아뵐게요"


어른들은 참 희한하다. 나도 이제 곧 4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사돈이라는 어색한 사이에도 스스럼없이 말씀을 나누고 집에 초대하는 것이 거리낌 없다. 10년의 결혼 생활동안 거리 상의 이유로 잦은 만남을 가질 수 없었지만, 친정 부모님을 초대한 시부모님 덕분에 부모님은 경기도에서 부산으로 첫 여행을 가기도 했었다. 땅콩이 한창 무르익는 가을에는 친정에 시댁식구들이 모두 모여 땅콩을 수확하고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기도 했다.


코로나로 인해 문 밖을 나가기 힘들었던 시간 동안 다수가 모일 수 없었던 한계에 우리 집도 갇혀있었다. 사돈 간의 만남은 둘째치고 내 부모님 조차 마음대로 만날 수 없었던 시간이 길었다. 이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굴레에서 벗어났다. 못 만나서 안타까웠던 정을 도로에 토하기라도 하는 걸까? 주말이면 많은 차량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온다.


올해 명절은 유독 길었지만 연휴 내내 차가 막히지 않은 적이 없었다. 보고 싶은 얼굴을 보기 위해 혹은 그들과 함께 추억을 만들기 위해 총집한 차들로 인산인해가 되어 버린 도로에서 나는 안절부절못하지 못하고 있었다. 친정 엄마의 초대로 시부모님을 모시고 귀향길에 올라탄 길가에 차량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로에 밀려드는 차량의 수만큼 도착 예상 시간의 시곗바늘은 오른쪽으로 밀려났다. 수시로 친정 엄마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엄마 차가 많이 모여들어서 1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할 것 같아"


엄마는 예상했다는 듯 아무렇지 않아 하셨다. 오히려 마음 졸여하는 딸의 속사정을 훤히 아신다는 듯 말씀하셨다.


"그럴 줄 알았어~엄마 쉬고 있을 테니까 마음 편하게 시부모님 모시고 와"


엄마의 한마디는 어떤 진정제보다 효력이 좋았다. 이미 그럴 것을 알고 계신다는 말 한마디와 따뜻한 음성으로 계획에 어긋난 시간을 돌리려는 애씀보다는 내려놓음을 택하게 했다. 점심을 함께 하고 싶었으나 저녁으로 돌변해 버린 식사에 앞서 양가 부모님이 친정 마당에 두 손을 부여잡고 마주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건강하셨지요?"


북적대는 마당 안에서 주고받는 반가운 인사말을 들으니 진짜 명절 같은 분위기가 났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 식사를 하시면 될 줄 알았는데, 친정 아빠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보시자마자 논으로 가시자고 했다. 반갑다고 악수를 나누자마자 친정아빠 차에 타신 시부모님은 사돈 집 안이 아닌 드넓은 논으로 가셨다.


해 질 녘의 논을 본 적이 있는가? 특히 추수를 앞둔 노란 벼가 석양에 비춰 황금빛을 발하는 논은 쌀을 머금은 풀밭이 아닌 잘 빗어 놓은 수사자의 갈기를 보는 듯하다. 코 끝을 간지럽힐 정도의 바람이 불어오면 금빛 물결이 춤을 추듯 살랑인다. 부산에서 소일로 밭은 가꾸시는 아버지는 시골이 좋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시에 있는 집으로 오지 않는 편이다. 그런 시아버지 눈앞에 펼쳐진 시골의 논은 이브의 사과처럼 가질 수는 없지만 소유하고 싶고, 살고 싶은 시골의 한 풍경이었을 것이다.


사돈어른들을 모시고 직접 농사짓는 논을 소개하는 친정 아빠의 얼굴에는 미소가 만개했다. 큰 평수는 아니지만 자식 농사만큼 자랑하고 싶은 논이었으니 장거리에 피곤하신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서두를 만도 했다.


한 바퀴 논 구경을 마치고 식사를 위해 집을 들어서니 거실에는 친정엄마가 미리 준비해 놓은 저녁상이 차려져 있었다. 소리를 지르면 안 되는데 엄마의 노고에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탄성을 감추지 못했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가기 위해 친정으로 온 시누 식구를 포함하면 엄마는 12명의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20년 넘게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면서 대식구의 식사 준비는 엄마에게 특별한 일이 아니다. 다만, 상대가 딸의 시부모님이라는 심리적 부담을 가지셨을 것에 염려되었다. 음식을 상에 나르는 동안 엄마는 내 귀에 대고 이야기를 하셨다.


"이거 네가 좋아하는 꼬치 전이야, 청양고추 넣어서 전 부친 거 좋아하잖아. 많이 먹어 우리 딸"


엄마는 사돈이 오신다기에 다양한 나물과 밑반찬을 준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딸이 좋아하는 꼬치 전과 식혜, 등갈비도 빼놓지 않으셨다. 일 다니시는 엄마가 혼자서 언제 이런 것을 다 준비했을지 생각하니 가슴은 먹먹하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뿌듯했다. 친구들에게 엄마를 자랑하는 어린아이처럼 '이것 봐, 우리 엄마 대단하지?'처럼 생색내는 마음이 일었다.


반찬들도 많았지만 주 메뉴는 삼겹살이었다. 남편은 유독 처가에서 먹는 삼겹살을 좋아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친정 김치가 삼겹살과 구웠을 때 찰떡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양념이 세지 않아 삼겹살에서 나오는 기름으로 구워낸 친정 김치와 밭에서 따 온 상추 그리고 아빠가 농사지은 마늘까지 한 쌈에 싸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여보, 그것 좀 가져와봐"


삼겹살을 올리는 찰나 아빠는 엄마에게 숨겨 놓은 보물이라도 가져오라는 듯 손짓하셨다. 선홍빛을 발하는 큼직한 덩어리는 소고기였다. 사돈어른과 함께 하는 자리에 돼지고기로는 부족할까 싶어 소고기까지 사신 것 같아 괜스레 뭉클했다.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말씀하시는 시어머니에게 친정 아빠가 말했다.


"저는 소고기 밖에 못 먹어서요, 하하하"


삼겹살을 드시면 탈이 나시는 아빠는 본인 드실 소고기를 사신 거였다. 물론 사돈어른들과 함께 드시려고 양을 넉넉히 사셨지만 재치 있는 아빠의 말에 모두가 웃으며 식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밥을 먹기 전 손을 씻으려 화장실을 가려다 갸웃거리게 하는 것을 발견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사를 왔으니 30년은 넘게 산 구옥이었다. 중간에 인테리어를 했지만 문짝은 돈이 많이 들었기에 그대로 유지하고 살아왔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는 손잡이를 살짝 위로 올려 들어야 틀어진 문의 짝을 맞춰 닫을 수 있었다. 삐걱거리는 손잡이는 반쯤은 헛돌아 감고 되감아야 열고 닫힐 수 있었다. 그런데 힘 들이지 않고 화장실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손재주 좋은 아빠가 화장실 손잡이는 물론이거니와 틀어진 문 아래 패널을 덧붙여 문을 수리한 것이다.


"와... 아빠 이거 뭐야? 엄청 부드럽게 열리네?"


시부모님이 계신 건 생각지 않고 연신 새롭게 변한 집 안 풍경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 번 더 나를 놀라게 한 것이 기다리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입을 벌리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와.. 화장실 창문에 환풍기라는 신문물이 달려있었다. 그동안 친정집 화장실에는 작은 창문이 유일한 환풍기 역할을 해왔다. 구옥의 특징일 수 있겠지만 유달리 크게 빠진 화장실의 습기를 작은 창이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빠는 작은 창 한쪽에 아크릴을 대고 환풍기를 설치하였다. 곰팡이야 꼼작 마! 환풍기 덕분에 화장실 안이 더 쾌적해진 기분이 드는 것은 착각인 걸까? 모르는 이에게 청결한 화장실을 선보이기에 손색이 없었다.


소소하게 변한 친정의 모습은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숨은 그림 찾기였다. 깨끗하게 정리된 주방 선반과 편의를 위해 수선된 화장실까지. 잡초 하나 없는 마당의 잔디밭과 파리가 미끄러질 것 같은 원두막의 바닥을 부모님께서 얼마나 쓸고 닦았을지 눈에 선했다.


뭉클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귓속에 대고 엄마에게 얘기했다.


"우리 엄마 고생 많이 했네, 많이 힘들었겠어"


엄마는 숨김이 없이 유쾌한 분이셨다.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 네 아빠가 아침부터 원두막을 얼마나 닦아 댔는지 아니? 호호호"


미안한 마음이 엄마의 웃음소리를 거쳐 고마움으로 변할 수 있었다.




역시 고기가 진리였다. 삼겹살과 엄마의 김치가 만나 환상의 콜라보를 연출하며 입안에서 불꽃 축제라도 열린 듯 맛있다고 외쳐대고 있었다. 한 입가득 넣은 고기쌈을 채 삼기지도 않았는데, 엄마가 무쌈에 고기 한 점을 싸 입 안에 넣어주신다. 입에 있는 고기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던 찰나 엄마는 꼬치 전을 먹어보라고 또 입 넣어준다. 어미 새가 주는 음식이 맛있어서 입을 다물 생각도 않고 벌리기를 반복했던 배부른 식사를 마쳤다.


처가에서 자야 하는 우리를 대신해 시부모님을 모시러 온 시누 차에 올라타시며 시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엄마 사랑 더 많이 받고 올라와~나중에 보자"


아쉬운 마음에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 시부모님과의 인사를 뒤로 한 채 친정집으로 돌아가면서 짐짓 얼굴이 화끈해졌다. 시부모님 앞에서 엄마가 주는 음식을 너무 입 만 벌리고 받아먹은 것은 아닐까? 볼이 화끈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한 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리분별이 확실한 친정 엄마가 유독 내 입에 음식을 가져다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딸이 이뻐서라기보다는 귀한 딸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싶으신 건 아니었을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이내 접어 버리기로 했다. 추석이 하루 지나 달이 더 꽉 만큼이나 작은 거실을 한가득 채웠던 시댁 식구들과 친정 부모님과의 만남은 만월처럼 둥글었다. 특별히 모나거나 어색함 없이 양가의 어른들이 웃으며 맛있는 음식을 주고받았었던 한가위에 어떤 티끌도 먼지가 되어 사라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