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길었던 명절이었다. 연휴가 시작되기 전 날, 남편이 연차를 내고 새벽 5시에 시댁으로 출발했다. 임시공휴일이 있었던 올해 추석을 생각하면 일주일 동안 명절을 보냈던 것이다.
시댁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은 건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수술 후 몸이 안 좋아지신 어머니의 몸상태도 있었지만 70을 훌쩍 넘기신 연세에 정성스럽게 제사 음식을 준비하시기가 벅차 절을 찾아가셨다.
제사 음식을 준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제사 2주 전부터 어머니와 통화하며 듣는 이야기는 제사를 위해 좋은 생선과 질 좋은 과일과 나물을 미리 준비하셨다는 말씀이셨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며느리가 도착하기 전에 다듬고 정리하는 일들을 혼자해오셨으니 제사 음식에 소비되는 기력이 너무 많았다. 올해는 음식 할 일도 없으니 남편은 추석동안 가족들이 다 같이 여행할 수 있는 것들을 알아보았다.
간단한 일정으로 등산과 낚시를 계획했다. 등산이라기보다는 해운대에 있는 달맞이길, 문텐로드 길을 걷는 것이었다. 단순한 산책길이라기에 샌들을 신고 가려고 했지만 꽤나 많이 걸어 발이 아플 것이 걱정됐던 나는 운동화를 집어 들었다.
문탠로드는 달빛에 걸으면 운치가 있는 가벼운 산책로였다. 어두운 밤길을 은은하게 비춰주는 조명들이 간간히 설치되어 있었다. 달빛을 벗 삼아 걸을 때 조명을 따라 해가 어스름하게 진 저녁 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길에 대한 기대감이 끌어 올랐던 건 지나치게 좋았던 가을 날씨 때문이었다. 가기 싫어하는 여름이 심술을 부리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내려 쬐는 태양이 어찌나 따갑던지 올여름, 머리를 어지럽혔던 더위가 스멀스멀 다시 떠오를 정도였다. 덕분에 사진에는 높고 파란 가을 하늘과 청량한 바다까지 고스란히 담겼다. 이기적인 사진 속에서는 우리가 흘렸던 땀방울과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문탠로드에 방문한 건 스카이 캡슐과 해변 열차를 탑승하기 위해서였다. 타보고 싶은 마음보다는 알록달록 빨갛고 노란 스카이 캡슐이 파란 바다 옆을 지나는 순간이 보고 싶었다. 강촌에서 느꼈던 일반적인 기차역이 아닌 해변 열차만의 이색적인 풍경을 눈에 담았다.
걷는 것을 좋아한다. 네 바퀴 달린 자동차에서 볼 수 있는 풍경들도 좋지만 천천히 걸음면서 오래도록 풍경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즐긴다. 문탠로드는 해안가 옆에 위치한 가벼운 산길이라서 산과 바다를 동시에 볼 수 있다. 바다 옆 산길을 걷다 보니 며칠 전 다녀왔던 인천에 있는 예단포가 떠올랐다.
두 곳 모두 걸으면서 바다를 볼 수 있는 장점을 지닌 곳이다. 위치적인 차이로 각자만의 개성을 비교하자면, 낙조를 바라보며 바다옆길을 산책하기에는 인천의 예단포가 짧지만 인상적이라면 긴 시간 동해안의 넓고 푸른 바다를 만끽할 수 있는 산책 코스로는 문탠로드가 좋을 것 같다.
낭만을 즐기고 지나가는 길마다 사진을 찍어대며 신나 하던 내 뒤로 어머니가 뒷 목에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내며 따라오셨다. 연세가 70은 넘으셨지만 어머니를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건 이전에 산행을 즐겨오셨던 분이기 때문이다. 다만 더위에 약하셨기에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 없었던 어머니셨다. 그 옆에 할머니 손을 꼭 붙잡은 우리 집 막내가 있었다.
정수리로부터 굴러 떨어진 땀방울이 선크림과 섞여 눈에 들어갔는지 할머니가 손수건을 가져가면 얼굴을 살포시 가져가 비비대고 있었다. 뛰다가 넘어져 제 속도를 내지 못했던 막내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으며 살뜰한 보살핌을 받았다. 어머니 또한 천천히 걷을 수밖에 없는 막내와 발걸음을 맞추며 여유를 가지고 문탠로드 길을 걸을 수 있었다.
미포에서 청사포까지 걸어오니 타들어가는 더위에 목구멍에 열이 날 지경이었다. 산책하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사람들에게서 나던 커피 향을 훔치고 싶을 만큼 커피 수혈이 시급했다. 청사포 역 아래로 내려가 바다 근처에 있는 카페에 방문해 얼음이 가득 담긴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3층까지 있었던 카페에 자리를 잡으려고 올라간 순간 더위가 가실 만큼 시원하게 눈앞에 펼쳐진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하얀 벽에 통창을 에어 싼 카페는 바다를 벽지로 두른 것 같았다. 태양이 비추는 조명과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벽지라니, 이 보다 가성비 좋은 게 어디 있을까.
통 창 옆으로는 액자 형식의 창이 있었다. 날씨가 유난히도 좋았던 명절의 바다는 카메라로 담지 못하는 아련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명작 앞에서 나오는 나지막한 탄성을 지르지도 못한 채 마냥 그 앞을 떠나지 못했다.
바다 구경도 실컷 했으니 다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될 테지만 시아버지는 손주들의 손을 잡고 바다로 향했다. 자식들의 손을 잡고 40년 전에 왔던 이 바다에 손주들의 손을 맞잡은 할아버지가 된 시아버지는 옛이야기를 꺼내셨다.
"예전에... 너희가 아빠랑 여기 와서 게 잡았던 기억이 나니?"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던 시부모님의 단골 코스였던 청사포였던지라 과거와 현재의 경계에서 우러나오는 추억을 곱씹으셨다. 그때나 지금이나 바위를 들춰 아이들이 게를 잡으며 바다를 온몸으로 느끼게 해 주시는 시아버지의 시간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태양은 강렬했다. 양산이 아니었다면 1분도 버티지 못했으리라. 물 만난 물고기처럼 아이들을 제외한 어른들은 바라보다 지쳐 어서 벗어나기를 간청했다.
청사포 다릿돌 전망대를 거쳐 해변 열차를 타고 미포를 향해 가는 길, 아이들은 바다를 바라보며 달리는 기차 안이 좋았다.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열차의 낭만보다는 뜨거운 태양 아래 걷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더 신이 났을지도 모른다. 한 걸음 두 걸음 청사포 다릿돌까지 가던 길은 참 길었는데 해변 열차를 타고 주차가 되어 있던 미포까지 가는 시간은 달릴 수 있는 바퀴 수만큼이나 빠르게 굴러갔다.
근처에서 가볍게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후 일정을 이야기하면서 잊고 있었던 일인 듯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그래도 명절인데 기름 냄새가 조금 나야 하지 않겠니?"
분명 저녁에 오륙도로 밤낚시를 간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두 시간 남짓 한 시간 동안 오징어 튀김과 전을 부쳐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급해졌다. 아버지가 낚시 준비를 하시는 동안 잠시 등을 부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뜨겁게 달군 팬에 전을 부치게 생겼다. 낚시 준비를 할 필요가 없었던 남편이 음식 준비에 거들었다. 명절이면 남자들이 아이들을 챙겨 밖으로 나가고 동서, 시어머니와 함께 음식을 준비해 왔는데 새로운 손길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오징어 튀김을 하기 전 오징어를 균일하게 자르는 일이 가장 번거로웠는데 꼼꼼한 남편이 두 팔 걷어 부치고 도와준 덕분에 쉽사리 마칠 수 있었다.
코에서 나는 기름향에 취해 절로 손이 따끈한 튀김을 입으로 쉴 새 없이 가져가고 있었다. 제사에 올리는 음식이 아니고 명절에 나눠 먹을 것이기에 부담 없이 입에 가는 대로 명절 음식을 즐겼다. 다만, 밤낚시를 가기 위해 정해 놓은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음식과 정리하는 시간을 서둘렀다.
떡집에서 갓 나온 송편과 방금 기름에 부쳐 낸 전과 튀김을 가지고 오륙도를 향했다. 추석을 하루 앞둔 날인만큼 쟁반같이 둥근달이 커닿게 밤바다 위에 떠 있었다. 환한 달빛으로 출렁이는 바다 물결 위에 다이아몬드 가루를 수놓은 장면이 이로 말할 수 없는 장관이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바다 위가 이토로 밝을 수 있다니. 캠핑용 의자를 펼쳐 앉아 맥주를 한 캔 들고 남편과 나란히 앉았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우리는 물고기를 잡기보다는 멍하니 달과 바다를 보며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다.
낚시를 좋아하시는 어머니는 하루종일 돌아다녔던 힘든 일정에도 물고기를 잡겠다는 일념으로 서 계셨다. 하지만 시간이 밤 열 시를 넘어가자 "어떻게 된 게 집에서 명절 음식하는 게 더 편했던 것 같기도 하네"라고 말씀하시며 미소 지으셨다.
그도 그럴 것이 전 날에도 한 시간 거리에 거제도로 밤낚시를 다녀온 후 새벽 3시가 넘는 시간까지 이야기를 하다 잤는데, 다음날에도 쉼 없이 돌아다니는 일정에 몸살이 날 만큼 힘들었을 것이다. 차라리 매번 하는 음식이 더 쉽지 않았을까 싶은 어머니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수확을 앞두고 풍년을 기원하는 추석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뿔뿔이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풍년처럼 가득한 정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제사 음식을 준비할 때는 남자와 아이들은 밖으로 여자들은 안에서 음식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지나치게 꽉 찬 일정에 힘든 감이 있었지만, 명절을 온전히 함께 가족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니 가족의 정이 더 끈끈해지는 한가위를 보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