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소박이 찾으러 버스터미널 가는 길

by 친절한금금

아침부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오이소박이를 버스로 보냈으니 찾으러 갈 수 있겠냐는 짤막한 통화였다. 순간 미소가 번졌다. 오이소박이라니. 시큼하면서도 아삭한 엄마표 오이소박이를 생각하니 입 안에 침이 가득 고였다.


버스터미널 도착시간은 11시 20분이었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나서 집에 돌아오니 10시... 평소였다면 집에 있는 잡다한 것들로 허기를 채울 시간이다. 배가 고파서도 있지만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폭식이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고 대충 차려 먹어도 입만 즐거우면 되는 이 시간을 사랑했다.


하지만 지금, 인스턴트로 배를 채울 수는 없었다. 엄마의 오이소박이가 버스를 타고 나에게로 오고 있기 때문이다. 오이소박이를 맛있게 먹으려면 오이가 쪼글아들어 초록색이 노란빛이 돌 정도로 익어야 안성맞춤이지만 지금은 상관없다. 일단 엄마의 손을 거쳐간 오이면 됐다. 쿰쿰한 젓갈냄새와 풋내도는 양념들이 오이 속에 파묻힌 탱클 한 오이 한 점을 먹으면 세상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버스터미널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타러 나갔다. 한 방에 가는 버스가 있었지만 16분을 기다려야 하기에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을 불사하고 지하철을 탔다. 1분도 지체할 수 없을 만큼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20분 만에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는 와중에도 내 머릿속은 오이소박이로 가득했다. 식탐이 많은 나라서 터미널 앞 김밥집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는데, 오이소박이 생각만으로 김밥집 환풍기를 타고 나오는 제육볶음과 라면의 향기를 제쳐낼 수 있었다.


10분쯤 기다렸을까. 아빠가 보내준 운송장에 적힌 차량번호가 눈에 들어왔다. 버스기사가 내려놓는 짐들 속에서 주황빛으로 빛나는 보자기가 있었다.



"엄마의 오이소박이다!!!"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보자기를 야무지게 매듭진 모양만 보고도 엄마가 주방에서 딸을 위해 싸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운송장을 기사에게 보여주고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혹여 오이소박이가 다치지는 않을까 애지중지하며 두 팔로 보자기를 끌어안았다. 보자기가 코에 가까워지자 엄마가 애용하는 젓갈의 냄새가 코에 스며들었다. 위장이 심하게 요동쳤다. 택시를 타야 하나? 잠시 고민할 정도로 어서 오이소박이를 집에 데려가고 싶었다.


드디어 집에 온 순간 망설이지 않고 보자기를 열었다. 전자레인지에 식은 밥을 데우는 1분 사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오이소박이에서 오이 하나를 떼어 입에 가져갔다. '아, 이 맛이야..'였으면 좋았겠지만 역시 익지 않아서 기대에 부흥할 정도의 맛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밥보다 많은 양의 오이소박이를 접시에 옮겨 담았다. 엄마의 손길을 찾는 아이처럼 지친 나를 달래주는 소울푸드의 위로가 필요했다. 아직은 익지 않아 오이의 풋내가 그대로였지만 버무려진 양념과 성기성기 썰린 오이소박이를 보면서 내 옆에 엄마가 있는 것 같았다.


며칠 전 엄마가 나에게 물었다.


"딸, 요새 많이 힘들어? 집에 내려와 밥 해줄게"


3개월 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왔는데 말은 안 해도 딸의 힘듦이 전해졌나 보다. 괜찮다며 다음에 찾아뵐 것을 약속드렸는데 결혼하고 10년 만에 엄마의 음식을 버스로 받았다. 엄마는 알고 계셨나 보다. 나에게 극약처방이 필요하는 것을.


아이들이 등원하고 난 후 인스턴트를 달고 살았다. 허전함을 당으로 채우며 살도 보태지는 악순환을 하고 있었는데 이 날만큼은 엄마의 밥으로 마음을 든든하게 채웠다. 흰밥과 엄마표 오이소박이를 먹었더니 노란 믹스커피도 생각나지 않았던 배부른 점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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