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케냐로 떠나는 두번째 여행
“그래서 너가 잘했다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야! 너 어디 강원도 놀러 왔어?”
“...죄송합니다...”
그래, 여기는 강원도가 아니지. 스피커 너머로 들리는 그의 따가운 목소리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2년 전 처음 아프리카에 왔을 때도 그랬다. 공항에서 도둑을 맞았다. 이번 여행 역시 너무 순탄하다 싶더니 일이 터지고 말았다.
2년만에 다시 아프리카를 찾은 이유는, 글쎄, 내가 원하는 자료가 없어서 였을까? 확실히 계획적인 여행은 아니었다. 이미 유럽 여행으로 돈이 많이 없었던 나는 최대한 숙박비라도 아끼고자 백팩커들이 많이 이용하는 커뮤니티 앱, 카우치서핑을 이용해서 랜선 친구들에게 연락해 숙박을 해결해야만 했다. 그것도 무려 2주씩이나. 그 낯선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또다른 낯선 친구, 마크가 나를 직접 몸바사 공항까지 데리러 오기로 했다.
비행기에서 내린 동양인이 나 하나 뿐이었을까? 나오자마자 한 눈에 나를 알아보는 이가 있었다. 반갑게 손을 흔드는 그는 남자였다. 어? 분명 나랑 연락했던 마크는 여자였는데? 프로필 사진에는 분명 분홍색 티에 선글라스를 끼고 머리가 허리까지 오는 여자였는데. 바보였다. 마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여자일 리가 없는데!
“안녕!”
“어, 안녕...”
“마크, 난 너가 지금까지 여잔 줄 알았어!”
내가 깔깔대면서 웃었다. 그의 프로필 사진을 언급하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마크도 덩달아 함께 웃었다. 충분히 오해할 법한 상황이긴 했다. 그래도 어떻게 자기를 여자로 착각할 수 있냐며 살짝 삐진 듯 말꼬리를 흐렸다. 서로 깔깔대며 그렇게 입을 트고 나니, 다행히 공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마크는 드레드로 머리를 꽈 16년을 길렀다. 드레드는 머리를 조금씩 돌돌돌 말아서 기르는 걸 말하는데, 머리를 삭발하지 않는 이상 절대 풀 수 없다고 했다. 그동안 단 한번도 머리를 자른 적 없었던 그는 당연히 머리가 허리까지 오는 ‘남자’였던 것이다. 마크는 내 짐을 받아 차에 실어주었다. 그는 주황색 지프차를 타고 있었다. 좀 낡긴 했지만, 내가 아프리카에서 타본 차 중에서 가장 예뻤다. 물론 머리를 허리까지 기르고 분홍색 티를 입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마크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그런 차였다. 에티오피아, 나이로비, 몸바사를 거쳐 나의 최종 목적지인 킬리피까지는 공항에서 차로 한 시간 반 정도 되는 거리였다.
마크는 유럽 배낭객들이 즐겨찾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오랫동안 스텝 겸 가이드로 일을 했다. 지금은 거기서 일하진 않지만, 가끔 단체손님만 받는다고. 나는 카우치서핑으로 만난 랜선 친구, 재키가 부탁해서 특별히 받아주었다고 했다. 마크는 그동안 가이드를 하면서 모은 돈으로 킬리피에 작은 땅을 하나 샀는데, 건물을 올리려면 아직 돈이 많이 부족해 다시 돈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킬리피로 가는 길에 되게 정신없는 동네가 하나 나타났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음악소리가 빵빵 터져 나오고, 길 한쪽이 다 펍으로 되어있는 곳이다. 금요일 밤이면 사람들이 밤새 춤추고 놀아 이 동네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장소라고 했다. 심지어 우리가 지나갈땐 낮이었는데도 엄청 시끄러웠는데, 밤과 술이 함께면 오죽할까 싶었다. 마크는 자기 동네에서 이곳까지 오기에는 좀 멀고, 동네에는 딱히 마음에 드는 주점이 없으니 킬리피에서 가장 핫한 술집을 차리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세라, 내가 한달동안 너의 개인 기사 해줄까?”
“아 정말? 안 그래도 되는데..”
“아니야, 이 지역은 내가 빠삭하잖아. 너의 프로젝트를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
킬리피에 있는 동안에는 내가 도와줄게.”
역시 내가 인복이 있다니까? 드디어 재키네 집에 도착했다. 야자수 잎으로 엮어 만든 높은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꽤 넓은 마당에 돌길이 깔려 있는 정원이, 그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면 그 끝에 벽이 희고 둥근 집이 있었다. 정원에는 작고 투박한 나무 의자 두 개와 해먹이 나무에 걸려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재키는 나를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이렇게 예쁜 집에 화장실까지 딸린 독방을 주다니! 짐을 대충 풀고 집을 구경하는데,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대문과 방문이 모두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화장실 말고는 문턱이 있는 곳이 한 곳도 없다는 것이었다. 항상 안과 밖의 경계가 딱 맞아 떨어지는 창문과 굳게 닫힌 문, 그 위에 잠금장치까지 정확히 맞물려 안팎의 경계를 또렷이 나눠주는 주거공간에서 생활하다보니, 조금은 낯설 수도 있는 그런 집이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조금 더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법한 그런 집. 날씨가 나쁘지 않는 이상 문을 잘 닫지 않았는데, 문을 열어놓으면 바닥이 연결되어 어디까지가 안인지, 어디서부터가 밖인지 정확히 나누기 애매한 그런 집이었다. 집 안에서는 신발을 벗고 다녔는데 모래가 조금 밟히는 것 같기도 하고, 종종 밖에 사는 개미들이 왔다갔다하는게 눈에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두 마리도 자유롭게 집안과 마당을 왔다갔다 했다.
안팎의 경계가 불분명한 건 창문도 마찬가지였다. 유리로 되어있긴 했지만, 바람이 통하거나 덜 통하게 하기 위해 위 아래로 열었다 닫을 수만 있게 되어있지, 딱 맞물리는 그런 미닫이 창문은 아니었다. 밖에 사는 모기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쉽게 들락날락 할 수 있는 그런 구조였다. 그런데 이런 자연친화적인 집이 나는 왠지 마음에 들었다. 물론 밤에는 알 수 없는 친구들과 침실을 나눠써야 한다는 불안감에 밤마다 공포에 휩싸여야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정확히 그 집이 좀 더 좋아지기 시작했던건 잠에서 눈을 뜬 아침이었다. 바람소리, 나무소리, 새소리 그리고 이웃사람 사는 소리까지 온 동네 갖가지 소리들이 또 냄새들이 틈 사이로 들어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렇게 3일동안 지내게 될 방을 마음껏 탐색하며 쉬고 있는 사이에 볼일을 마치고 마크가 나를 데리러 왔다. 나는 핸드폰과 카메라를 충전 시켜놓고 그와 함께 시내로 나갔다. 한달정도 여행을 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로밍보다는 유심을 사서 케냐 번호를 개통했다. 집으로 돌아와 핸드폰을 켜고 메시지를 확인하는데 왠걸. 내 안부를 묻는 메시지가 너무 많이 와 있는게 아닌가? 상황을 파악해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며칠 일찍 도착한 내가 이미 숙박과 교통 문제를 해결했다는 걸 대표님은 모르시는 듯 했다. 그래서 나를 픽업하러 공항까지 교통편을 마련하셨다고. 그런데 정작 나는 출국장에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미 마크와 공항을 빠져 나와 킬리피에 와 있는데, 택시 기사님은 아직도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모두 내가 없어진 줄 알고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여행을 하는 한달동안 2주는 비영리 단체 엠트리에서 주최하는 Brush with Hope이라는 예술 교육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2년 전 처음 케냐에 오게 된 것도 엠트리를 통해서 왔다. 얼떨결에 지인의 초대로 들었던 강연에서 대표님을 만났다. 그는 매년 전세계에 있는 예술가들을 모아 아프리카에서 예술 교육을 진행했다. 그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아이들이 그린 그림들을 하나씩 보여줬다. 그림을 설명하면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는데 감동과 함께 눈물났다. 강연이 끝날 때 쯤에 내 두 눈은 퉁퉁 부어있었는데, 나는 그날 최영환 대표님과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 언젠간 꼭 그와 함께 아프리카에 가겠노라고 말이다.
일단 대표님께 전화를 걸어 잘 도착했다고 말씀드리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려는 순간, 혼이 나기 시작했다. 그치, 여긴 강원도가 아니지. 연락이 안되는 반나절동안 별 걱정을 다 했겠다 싶어, 오해를 풀어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사과를 했다.
“그래서 너 지금 숙소로 오지 않겠다는 거야?”
“네, 지금 당장은 갈 수가 없어요.
프로젝트가 시작하는 날, 일요일 오후에 알아서 숙소로 찾아갈께요.
저는 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은 곧바로 숙소로 오길 원해 하셨지만, 그럴 순 없었다. 난 지금 재키네 집이 꽤나 마음에 들었고 또 나만의 프로젝트를 해야만 했으니까. 내가 또 언제 여기까지 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이 시간을 방해 받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