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시집 갈 뻔!
“재키, 나 산책 좀 다녀올게!”
불편한 마음을 뒤로 하고, 일단 집을 나설 준비를 했다. 돈과 시간을 들여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것도 없이 돌아갈 순 없지! 카메라와 필기도구, 필요한 이것저것 가방에 챙겨넣고 대문 밖을 나섰다. 그렇게 다시 혼자가 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두려움이 고스란히 표정으로 드러났다. 길을 걸어가는데 내 긴장한 얼굴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눈으로, 표정으로 인사를 건냈다. 그럼 나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눈으로 인사를 했다. 동네 한바퀴 둘러보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나오긴 했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했다. 소매 속에 핸드폰을 숨겨 지도만 겨우 보며 걸어가는데, 도무지 이래서는 눈에 아무것도 안 들어오겠다 싶어 지도를 한번에 쭉 훑고는 가방 안으로 넣어버렸다. 웃자, 그냥 웃자, 속으로 되뇌이며 이 동네가 익숙한 척 걸어갔다.
일단 마음 가는대로 가보기로 했다. 10여 분정도 꽤 걸어나가니 갈림길이 나왔다. 주변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려와 자연스레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발길을 돌리니, 큰 교회가 하나 보였다. 교회 안에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찬양 연습을 하고있는 듯 했다. 왠 동양인 여자애가 기웃거리니 호기심에 아주머니들이 노래를 하다말고 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내가 길을 잃어버렸는줄 알았는지 나에게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그리고 내가 가는 곳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난 아직 어디로 갈 지 정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그냥 같이 걸었다.
“너는 어디서 왔어?”
“여기는 왜 왔어?”
“여기는 처음이야?”
여행을 하게 되면 꼭 듣게 되는 질문이 있는데, 아주머니들도 내게 질문을 쏟아냈다. 나는 한국에서 왔고, 케냐가 처음은 아니고, 내가 하고 싶었던 프로젝트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처음 아프리카를 방문하고서부터 쭉 고민해왔던 것, 내가 꼭 해보고 싶었던 작업을 혹시나 불쾌할까 조금은 조심스럽게 또 아주 장황하게, “이번이 제 두 번째 여행인데요, 사실 처음 케냐에 왔을 때 너무 놀랐어요, 아무래도 편견을 가지고 있었나봐요, 인디아나존스 같은 영화를 너무 봤는지 저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내려서 모험을 하게 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곧 착륙을 한다고 기내 방송이 나오고 창문을 열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도시가 있는거요! 이런 관경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거든요,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어요, 아무래도 TV나 광고에는 항상 아프리카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으로만 비춰지니까요, 제 친구들은 아직도 아프리카 사람들이 옷도 신발도 없이 벌거벗고 다니는 줄 알아요, 그래서 진짜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사람 사는 모습을 좀 제대로 담아보고 싶었어요.” 그랬더니, 그중에 제일 왕언니 같아보이는 한 분이 내게 와 자기 집으로 나를 초대했다. 자기 집을 찍어도 좋다고, 와서 저녁 밥까지 먹고 가라고 했다. 그렇게 아주머니가 저녁을 준비할 동안 나는 큰 딸 헤리엇과 마을 구경에 나섰다.
참 소박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특별히 뭘 한건 없는데 집이 다 예뻐보였다. 특히 집집마다 정원들이 참 예쁘게 가꿔져 있었는데, 잎을 엮어 화분 장식을 만들고, 조그마한 흰 돌들로 정원 길을 꾸미고, 특별한 기교 없이 다소 투박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곳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만 꾸며진 것들이 참 아름다워보였다. 닭과 오리, 돼지, 소 등 작게 목축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울타리 안에서 키워지는 가축도 있었지만, 뉘 집 자식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밖을 나돌아다니는 가축들도 있었다. 헤리엇이 매점에 들려 애들이 먹는 군것질 거리를 하나 사주었다. 이름이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땅콩 같은 것에 빨간 색소가 묻혀진 것이었다. 얼핏 보기엔 신맛 나는 싸구려 비틀즈 같아보였다. 솔직히 내 입맛엔 맞지 않았지만 헤리엇은 색소로 빨갛게 변한 혓바닥을 내게 보여주며 좋아라 했다.
나는 아프리카에 가게 된다면 꼭 해보고 싶었던 게 있었다. 레게 머리. 유럽 여행객들을 보다 보면, 드레드를 했거나 옆머리만이라도 딴 걸 종종 볼 수 있었는데, 그게 내 눈에는 너무 멋있어 보였다. 뭔가 한국 사회에서는 쉽게 통용되지 않을 개인의 취향이랄까. 이번 여행에서는 꼭 해봐야지, 하고 있던 찰나에 언젠가 아프리카 여자라면 누구든 머리를 꼬을 수 있다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나서 헤리엇에게 물었다. 헤리엇은 동네에 자기가 가는 미용실이 있는데, 오늘 열었는지 가보자며 나를 데리고 갔다.
처음 미용실 입구에 도착했을 땐, 무슨 구멍가게인 줄 알았다. 입구 앞 가판대에 샴푸랑 각종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미용사는 들어가자마자 나한테 자리에 앉으라고 하더니 무슨 바가지에 머리를 기대게 했다. 그리고 내 머리를 감겨주었다. 한국의 미용실과 비교했을 때는 뭔가 아주 많이 어설퍼 보이긴 했지만, 맛집은 원래 허름한 게 원조인 것처럼, 화려한 살롱보다는 이런게 진짜 현지 스타일이지 하며 머리를 그 언니에게 맡겼다. 그래도 내가 외국인이라 어느정도 바가지를 씌울 거란 예상하고 있었지만, 마치 얼마를 뜯어낼까 서로 상의라도 하듯이 미용실 언니와 헤리엇은 대놓고 자기네 말로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어로 헤리엇이 내게 자꾸 한국에서는 머리하는데 얼마정도 하냐고 물었다. 아니, 물가가 다른데 당연히 차이가 나지. 우리나라에서는 여자 긴 머리가 20만원 정도 한다고 어떻게 솔직하게 말을 하나. 여긴 몇 천원 밖에 안 하는데. 차마 솔직하게 이야기 해줄 수가 없어 계속 머리 길이에 따라 다르다고만 이야기하고 말을 돌렸다.
머리를 하는 내내 자기네 말로 이야기 하면서 웃고, 또 이야기하고 웃고, 머리 땋는 것만으로도 아파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내 머리카락이 부드럽다며 계속 만지작거렸다. 결국 난 원래의 값보다 3배나 더 되는 돈을 주고 마음에 들지도 않는 머리를 하고 나왔다. 원래 만원 정도면 할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바가지를 씌운 것에 기분이 상했던 건 아니었다. 내 머리. 아프리카 와서 꼭 해보고 싶었던 내 소원을, 그 마음이 농락 당한 것 같아 너무 화가 났다. 레게라고 하기엔 너무 두껍게 따놨고, 아이들에게나 해줄 것 같은 색색깔의 고무줄로 끝을 묶어놨다. 마치 내 머리를 가지고 인형 놀이를 한 것 처럼 누가 봐도 유치하고 이상했다. 그렇게 대충 해놓고는 자꾸 옆에와서 웃음 섞인 말투로 예쁘다고 거짓말을 하는데, 너무 얄미워 한 대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음 같아선 밥 안 먹고 그냥 집에 가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이 아주머니가 차려주는 저녁을 먹으러 다시 집으로 향했다.
헤리엇네 집에는 TV도 있었고, 비디오 플레이어, 선풍기, 소파도 있었다. 한쪽에는 공부 책상이 있었는데, 책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고등학생 남동생이 하나 있다고 들었는데, 딱 봐도 학구열이 느껴졌다. 헤리엇은 나이로비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이었다. 방학이라 잠깐 내려와 어머니를 돕고 있다고. 풍겨지는 느낌으로는 집안의 자랑이나 동네에서 인정받는 수재 쯤 되어 보였다. 헤리엇은 내가 갖고 있던 카메라가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 나를 찍어주겠다고 하면서 내 카메라를 가져갔다. 나는 촬영은 해야겠고 헤리엇은 카메라를 가지고 노는게 재밌었는지, 이래저래 둘다 기분이 좋진 않았는데 늦은 오후까지 같이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아침부터 나 데리고 다니느라고 고생한 헤리엇에게 인화된 사진이라도 한 장 선물하고 싶어,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주기로 했다. 우리는 그렇게 일요일날 교회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재키한테 머리를 보여주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렸다. 그리고 거실에 세워져 있는 거울 앞에 쪼그려 앉아 머리를 풀기 시작했다. 재키는 그 정도로 이상하진 않다며 그냥 냅두라고 하는데 내가 너무 우스워 보여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때 마침 마크가 집에 놀러 왔다. 거울을 보며 속상해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더니, 마크가 와서 뒷머리 푸는 걸 도와줬다. 그리고 자기가 더 잘할 수 있다고, 머리가 하고 싶었으면 진작 말을 하지 그랬냐고, 사실은 자기가 헤어 디자이너로 몇 년 일을 했었다는 게 아닌가! 진작 말 좀 해주지, 마크가 아는 미용실로 곧장 따라갔다.
똑같이 허름하고 조금은 더 어두침침한 미용실이었는데, 얼굴에 주름이 꽤나 있고 베테랑 같아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크가 아주머니한테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주문을 넣더니, 금새 가짜 머리를 가져오시고는 머리를 꼬기 시작했다. 아주머니 혼자서는 금방 끝낼 수가 없어 반대쪽 머리는 마크가 대신 해주었다. 너무 짱짱하게 머리카락을 당기셔서 두피가 조금 아프긴 했지만 며칠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그래서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다. 점점 머리가 완성이 되어가고,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마크가 보기에도 내가 꽤 멋있었는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왠지 그도 내 모습에 살짝 반한 눈치였다. 자기 부족 여자 같다나 뭐래나. 아프리카 남자들의 작업 멘트란 꼭 이렇더라. 자기 부족이랑 잘 어울린다고.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사람 속도 모르고 머리까지 하고, 혼자만 너무 잘 지내는게 아닌가 싶어서. 대표님이랑 마주치면 이 머리에 대해서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실지, 즐거움도 잠시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망한 머리 개봉박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