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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관노 May 22. 2021

질문을 하기 위한 듣기

잘 듣는 것이 신뢰다.

잘 듣는 것이 최고의 신뢰다

나는 직장에 있을 때 ‘어떻게 듣는 것이 잘 듣는 것일까?’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듣는 것이 서툴렀기 때문이다. 직장에서의 역할 때문인가도 생각해 봤다. 물론 영향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신입사원 때부터 퇴직할 때까지 33년간 대부분 조직을 이끄는 업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듣기보다 지시하는 것이 익숙했다. 그렇다 보니 언제나 나는 말하고 직원들은 듣고 따르는 입장이었던 같다. 그래서일까?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날이 있었다. 이날도 여느 때처럼 나의 현장 경영으로 지적하고, 지시하고, 가르치려고 했다. 때문에 현장은 언제나 큰 소리가 나고 긴장감이 감돌고 경직된 분위기였다. 그렇다 보니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불편했다. 그날도 불편한 기분으로 돌아오는데 핸드폰에 문자 메시지가 왔다. 확인해보니 방금 현장에 있었던 입사 1년 차의 신입사원이었다. 장문의 문자였다. 

간단히 정리하면, 현장을 가장 잘 이해해 주어 감사하고 든든했다는 것이다. 매주 월요일 인트라넷을 통해 전해 주는 월요편지를 볼 때마다 닮고 싶은 상사였다고 한다. 생일을 맞이한 현장 직원들에게 축하 문자를 보내주는 자상함에 존경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근무하는 곳에 오면 많은 이야기도 하고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자랑도 하려고 했는데 내 이야기만 하고 화만 내고 떠나 서운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실망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문자를 받고 돌아오는 내내 많은 생각을 했다. 현장에 가서 현장의 소리를 듣지 않는다면 현장에 갈 이유가 있을까? 나는 스스로의 질문을 통해 깨달았다. 깨달으면 다시 돌아가지 않는 법이다. 이후 나의 현장 경영이 완전히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불시에 방문하여 잘못을 지적하고 지시하던 현장 경영은 예고하는 방식으로 바꾸어 잘 준비된 모습을 보고 자랑을 하게 했다. 잘못을 찾기보다는 잘한 사례를 찾아 칭찬하고,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아니라 현장의 직원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하게 했으며, 말하지 않고, 말 못하는 사연까지 들으려고 노력했다. 그동안 현장의 소리를 그냥 들었다면, 의식하고 듣고 현장을 이해하려고 했다. 그러니까 hearing하지 않고 listening하게 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정확하게 지시하고 명령하는 것이 상사의 주된 역할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부하 직원의 이야기를 좀 더 들으려고 노력함으로써, 현장 상황이나 부하 직원의 생각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상대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면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듣기에도 디테일한 기술을 요한다. 먼저 직원들의 마음을 열고 거리를 좁히는 것이다. 이 방법에는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이름을 불러주면 자기 존재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누군가 자기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줄 때 ‘아~ 내가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어린 아기도 이름을 불러주면 행복해하듯이 이름은 그 어떤 것보다도 기분 좋고 중요한 말이다. 

이름은 그 사람을 상징하고 독특하고 중요한 존재로 만들어 준다. 그래서 이름을 꼭 기억해서 불러주는 것이 좋다. 이름을 부를 때 작은 칭찬이나 과거 행동을 곁들이면 더 좋다. 그러면 더 특별한 감정을 심어줄 수 있다. 김춘수의 시 ‘꽃’을 들으면 그 느낌과 의미를 알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두 번째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다. 보통 리더가 편하게 생각하고 편하게 말하라고 하지만 후배나 부하 입장에서 그렇다고 맘이 편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리더는 말 보다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 

좋은 방법 중 하나가 공간적인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다. 공간적인 분위기를 만들면 얘기하는 사람에게 심리적 안정과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가능하면 협소하고 막힌 공간보다는 오픈된 공간이 좋다. 그리고 사무실을 벗어난 공간이면 더 좋다. 사무공간은 경직되고 대화도 사무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에는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드는 게 어색해서 사무실 주변 카페를 이용했다. 이 방법도 괜찮은 방법이다. 간단한 음료를 마시면 분위기가 더 자연스러워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좌석을 배치할 때 연공서열을 구분하지 않는 게 좋고, 가능하면 젊은 직원을 가까이 앉게 하고 그들의 당돌함을 표현하게 하면 분위기는 쉽게 자연스러워진다. 간혹 당돌함을 버릇없음이라고 말하지만 당돌함을 젊음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젊은이들의 당돌함은 동시대를 떠나 고대에도 그랬고, 소크라테스 시대에도 젊은것들은 버릇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젊음이 있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때 듣기는 젊음을 담는 그릇과 같다.

세 번째는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상사와 대화를 할 때 자기 이야기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 서론이 길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때 리더가 참지 못하고 ‘그래서 결론이 뭔데’라는 말을 하지 않고 끝까지 들어 주어야 한다. 언제나 얘기의 본론은 끝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리더는 중간에 ‘그렇지 않아’, ‘이해할 수가 없네’라든가 ‘이렇게 하면 되는데..’라며 참견하여 말을 끊는다. 이러면 관계는 다시 원위치가 된다. 이야기를 끊는다는 것은 상대방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그랬군’, ‘그래서?’, ‘구체적으로는?’, ‘그밖에는?’과 같은 말을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사용하면 좋다. 그러면 상대방도 편히 받아들이고 마음이 열리면서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때 미처 말하지 않은 것도 보이게 된다.

네 번째는 메모하며 듣는 것이다. 메모는 말하는 사람에게 믿음도 주지만 생각하며 말하게 한다. 생각하며 말한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말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직원들의 성장을 도모하기도 한다. 되는대로 일하지 않고 나오는 대로 말하지 않으면서 일에서나 관계에서 신뢰와 자신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경험이나 의견을 메모하면 좋다. 

이 방법은 독서를 할 때도 유용하다. 보통 중요하거나 의미 있는 내용을 만나면 밑줄을 긋는데 옆에 내 생각을 간단하게 메모하면 자기 생각의 확장을 이룰 수 있다. 또한 메모를 하며 들으면 다음에 기억할 수 있어 좋다. 

앞서 얘기했듯이 다시 만나 이야기를 할 때 기억해 주면 신뢰가 쌓인다. 메모는 들으면서 생각하기보다는 먼저 메모하고 다시 보면 깊이 생각할 수 있다. 생각이 깊어지면 이해하게 된다.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리더는 이해력이 좋은 사람이다.     

리더일수록 그것도 직위가 높을수록 주로 말을 하고 듣는 것을 힘들어한다. 말을 잘하고 멋진 말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노력하면서 듣는 노력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는다는 것은 결코 저절로 되지 않는다. 

리더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사람들은 말 잘하는 사람보다 잘 들어주는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어 하고 그런 리더 곁에 있고 싶어 한다는 것을. 여러 명이 모였다가 내가 나타나면 하나둘 흩어진다면 듣는 노력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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