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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라 Sep 07. 2023

사유하는 미술관

비엔나 응용 미술관 (MAK) 방문기

Museum of Applied Arts (MAK) 은 매주 화요일 야간 개장을 한다. 몇달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이번주에 드디어 시간이 나서 조금 일찍 퇴근해서 미술관으로 향했다. 비엔나에서 여러 미술관과 박물관을 다녀왔지만 MAK은 확실히 색달랐다. 단순히 유명 작품들을 나열한다기보다는 관람객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생각을 돋우며 engage 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방문 당시 Critical Consumption, The 1873 Vienna World Fair Revisited, A Journey into New Virtual 세 개의 특별전을 하고 있었는데 두 전시 모두 보는 재미가 있고 깊은 여운을 남겼다.

1. A Journey into New Virtual

가상현실, AI 등 신기술이 가진 도전과 잠재력, 그리고 사회적, 생태적, 정치적 영향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건축가, 디자이너 및 예술가들의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볼 수 있었다. 우리가 공간을 어떻게 형성하고, 경험하고, 탐색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미래의 비엔나는 어떤 모습일지를 VR로 표현한 작품이다. 연세가 지긋하신 할아버지께서 능숙하게 VR을 즐기고 계신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안락함과 쉼을 느낄 수 있었던 공간

2. Critical Consumption

새로움에 대한 욕구, 그리고 빠른 변화를 추구하는 현대의 소비 패턴에 대한 비판을 제시하는 전시이다. 특히 매년 수십 차례의 새로운 컬렉션을 출시하는 패션 거물들,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상황, 섬유 폐기물에 의해 파괴되는 생태계 등을 다루고 있다.

선망받는 수많은 명품 브랜드이 전시관 입구를 장식하고 있다
패션문화와 지속가능성의 공존에 대한 고민을 담은 글
자급자족, 대체 교육, DIY에 대한 잡지 The Whold Earth Catalog
사과를 가장 옵티멀 하게 먹는 법... 이런 쓸데없는 너디함은 취향저격이다.
21세기를 위한 십계명
소비를 통해 자아를 표출하는 건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남성, 소비주의, 권력 문제를 겨냥한 예술가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이 빠질 수 없었다.
사회와 환경문제를 꾸준히 외쳐온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티셔츠
국회의원이자 노동사회학 교수인 전순옥의 인터뷰 일지가 전시되어 있었다.
유명한 One Laptop Per Child (OLPC)의 실물을 볼 수 있었다.
정말 혁신적이라고 생각된 발명품. 피난민을 위한 실내용 변기이다.
이 작품을 보고 조금 웃었다. 절반만 먹도 완전한 2배의 포만감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한 거울 식기.
피엘라벤은 지속가능함을 추구하는 패션 브랜드이지만 이 브랜드 역시 환경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기 위한 엄지 마개이다.

OLPC와 피난민을 위한 변기 등 Global South를 위한 "혁신적" 발명품들과 Global North를 위한 발명품들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었는데 대조가 흥미로웠다. 생존과 기본적 인권의 영위와 관련된 문제 해결을 위한 것들과 대비되게 어쩌면 trivial 해 보이는 제1세계 문제 (first world problem)을 다루고 있는 발명품들 (어쩌면 진지하게 해결하려기 보다는 이 문제가 얼마나 덧없음을 보여주려는 목적일 수도 있는)을 함께 보다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깊은 불평들에 대해 고찰하게 된다.

지속가능성을 위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것들

3.  The 1873 Vienna World's Fair Revisted: Egypt and Japan as Europe's "Orient"

1873년 비엔나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에 전시되었던 일본과 이집트관의 작품들을 재전시하면서 당시 유럽이 바라본 아시아와 중동을 보여준다. 오리엔탈리즘은 본래 서양의 작가, 디자이너, 예술가들이 동양 문화의 여러 측면을 묘사하거나 모방하는 것을 의미한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에서 유럽의 제국주의적 태도로 형성된 동양에 대한 적대적이고 탄원적인 서양 예술 및 학술 전통을 이르는 용어로 주로 해석하면서 동양문화 와 사람에 대한 편향된 외부의 시선을 의미하게 되었다. 사이드에 따르면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억압하기 위한 서양의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MAK의 전시는 사이드의 이분법적인 Orient vs Occident에서 나아가 당시 유럽과 이집트, 일본 간의 복잡한 사회정치적 관계를 보여주고자 한다. 당시 박람회를 위해 국가 파빌리온을 구상하고 디자인한 주요 인물들이 누구였는지, 어떤 정치적, 문화적, 담론적 배경이 미적 결정에 영향을 주었는지, 참여하는 국가들은 어떤 미적, 상징적 실천과 문화 정책 접근을 통해 동양주의적 세계관을 협상했으며, 이러한 세계관은 1873년 이후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제시한다.

내가 방문한 날에는 특별전 큐레이터와의 토크 콘서트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아쉽게도 독일어로 진행되어 참여할 수 없었다. 단순히 관람객에게 인풋을 주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과 소통하고 engage 하려는 MAK의 노력이 돋보였다.


특별전을 관람하고 영구 전시인 아시아관을 둘러봤다. 중국, 일본, 한국의 자기와 불상을 주로 볼 수 있었다. 이 컬렉션은 아시아 예술이 서양의 예술과 사상에 어떤 역사를 미쳤는지 설명하는 글로부터 시작한다. 일반적인 전시홀과는 다른 나무프레임과 보드마커로 적은 설명이 매력적이었다.  

중국과 일본과는 다른 간결함의 미학의 보여주는 한국 전통 자기

퇴근 후 피곤함을 뒤로하고 다녀온 MAK은 오랜만에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다. 단순히 수동적이게 예술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배움을 실천할 것을 격려하고 있어 더욱 좋았다. 난해하고 어려운 예술보다 대중에게 친절한 미술관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클림트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Vienna 1900 전시관 내부. Viennese style인 정수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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