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1992.10.13)
느지막이 일어나 간단한 아침을 먹고, 나이 서른이 먹도록 없어지질 않는 여드름들을 박멸하기 위해 피부과로 부지런히 발을 옮기기 까진, 여느 날의 주말과 다름없었다.
레이저 관리를 받기 전, 얼굴에 스물스물 올라오는 기미 비슷한 것들에 대한 처치법을 구할 요량으로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을 청한 것 까지도 특별할 건 없었다.
마스크가 기미를 유발한다던 얼마 전의 뉴스를 상기하며, 빛 반사가 없는 유색 마스크를 인터넷 쇼핑 창에 한참 검색해보다 들어간 선생님의 방에서, <흑자>라는 다소 생경한 단어를 마주하기 전까지는.
/흑자예요-
/ 예? 흑자요?
/ 네, 기미가 아니라 검버섯이네요.
흑자라니.
검버섯이라니.
청춘의 전유물인 여드름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나에게 검버섯이라니,
불혹의 손님처럼 와도 울적할 검버섯이, 이립의 나이에 자립하지도 못한 나에게 찾아오다니
삽시간에 울적해져 버리는 마음을 잠재울 길 없이, 나는 그 주말, 여드름 레이저 대신 검버섯 레이저를 받으며 서른이 되어 얻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마음의 준비가 채 되지도 않은 사이, 불쑥 자리 잡은 것이 또 하나 있었다. 미슐랭의 튜브처럼 나의 복부와 옆구리에 어느샌가 수줍게 자리 잡은 살들.
애써 눈에 담지 않으려 무시했지만, 오랜만에 옷장에서 꺼낸 겨울 바지의 단추가 힘겹게 채워지는 것을 보며 더 이상 이 미슐랭들도 방치해둘 순 없겠다는 결심에 이른 것이다.
배드민턴과 수영을 시작하고, 아이패드로는 홈 트레이닝 유튜브 영상을 틀어 놓은 채 매트 위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자니,
원치 않는 것들은 어느샌가 슬며시 내 곁에 엉덩이를 부비고 앉아 방을 빼지 않고, 가진 줄만 알았던 것들은 눈 깜짝할 사이 휘발되어버릴까, 온갖 노력을 해서 간신히 그 꽁무니라도 붙잡고 있는 것이 서른인 걸까.
대학교 4년 간, 속된 말로 ‘피똥 싸게’ 노력해서 공부한 나의 불어가 졸업과 동시에 빠른 속도로 휘발될 때의 심정이 딱 그랬다. 온갖 사교육으로 이십 년 동안 다져진 나의 영어마저 잃을 수 없어 친구와 함께 신청한 전화 영어는, 매일 밤 격무로 시달린 나의 두뇌에서 입으로 사고 없이 송출되는 ‘아임 파인 땡큐’ 이상의 것을 끌어내지 못한 채로 종료되었다.
가끔, 얼마나 더 치열하게 살아야 고운 저녁이 나를 찾아오는 걸까 생각해본다.
지금 가진 것들을 지키기 위해 나는, 선녀의 옷가지를 붙드는 나무꾼의 처절한 애달프음을 배워야 할까,
가지지 못한 것들을 쟁취하기 위해 나는, 황새를 쫓는 한 마리의 뱁새가 되어 아린 가랑이 사이를 힘껏 주무른 채로 지난한 몇십 년을 버텨야 하는 것일까.
눈을 오래 감았다 떴을 때 인생의 폭풍일랑 한바탕 지나가고 단정한 노을이 나를 반겨주면 좋겠다.
30±1살,
[2) 새로운 훈장: 미슐랭과 흑자]
written by LEE HAEIN
@__ulmaire
이해인, born in 1992/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