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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수 Dec 30. 2021

29세, 성적표를 받는 날 -이소정

born in 1993.04.05


20살이 되는 순간은 즐거웠다. 술도 마실 수 있게 되고, 운전도 할 수 있게 되고, 원하는 시간에 학교에 가도 되는 자유를 가진 나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젊은이로 20살의 나를 맞이해주었다. 하지만 29살에게 주어진 가장 흔한 평가는 무엇일까? 아홉수라는 다소 부정적인 시선이다. 아무리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해도 29살을 겪고 있는 당사자로서는 이 수식어가 신경이 안 쓰일 수 없다.


실제로 나의 29살은 그리 즐겁지 않았다.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울던 날도 있었고, 내일 당장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몰라서 울던 날도 있었다. 정말로 29살은 사람이 이렇게 지질하고 나약해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우울의 나락으로 나를 던졌던 한 해다.



우울의 근원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20살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졌던 젊은이가 30살을 앞두고 찬란했던 20대에 대한 성적표를 받는다고 생각을 해서인 듯하다. 20살에 바랐던 것 중 무엇하나 내 손 가득히 쥐지 못했는데 한 달 뒤면 30살이 되는 것이 두려워 누구보다도 격렬하게 아홉수를 맞이했었다.


하지만 막상 30살을 한 달쯤 앞둔 시점에서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성적이 좋지 않은데 누구를 탓하랴.. 하는 성적표를 받기 직전의 자포자기하는 상태랄까?


뜬금없지만, 얼마 전 알고리즘으로 보게 된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 영상이 생각난다. 이렇게 내 인생이 71세에 뒤집어질 줄 알았으면 40대 때 영어를 배우고, 50대 때 커피를 배웠을 것이라는 것이라 말하시며 나쁜 것은 소리 없이 오지만, 좋은 것은 더욱더 조용히 온다고 하셨다.


내 인생에 기회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데 그 기회를 잡기까지 얼마나 숱하고 많은 난관들과 시험들이 내 눈앞에 도사리고 있을지 감이 오지 않는다. 29세를 누구보다 격렬하고 우울하게 보냈던 나로서는 이 위험들이 여전히 두렵다.




새해가 되면 또다시는 한 해의 목표를 세울 테고, 좋은 성적표를 받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인생이 생각하고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랴. 그저 조금 덜 예민하고 조금 더 대비된 30살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적어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만큼은 같은 주제로 글을 써 내려가고 있을 29세들이 있음에 위로와 감사함을 느낀다. 우리 모두 조용히 찾아올 인생이 뒤집어질 기회를 위해 조금 더 성숙하고 발전한 30대를 맞이하길 바래본다.

 

 


30±1,

[29세, 성적표를 받는 날]

written by LEE SOJUNG

@attrait_sj

이소정, born in 1993/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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