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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수 Dec 14. 2021

빨리 늙고 싶어 -김민선

born in 1992.03.05



 “빨리 늙고 싶어.”


20대 내내 버릇처럼 하고 다니던 말이었다.


“빨리 70대가 되고 싶어. 젊음이 주는 가능성이 나에겐 너무 큰 불안감이야. 무엇 하나 정해진 게 없잖아. 무언가를 더 해야 하지 않을까?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지금 맞는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는 걸까? 끊임없는 물음들이 너무 많아. 70대쯤 되면 일들이 그냥 그렇게 흘러가고, 체념할 건 이미 체념하고, 무엇이 닥쳐도 그냥 그런가 보다… 그렇게 잔잔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친구들과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항상 하던 푸념이었다.



서른 살의 한 해는 사실 스물아홉 살의 날들과 달라진 게 없었다. 아침에 어김없이 지옥철에 탑승해서 밀린 쪽 잠을 자다 오피스에 도착하면 하루가 시작된다. 하루를 최대한 의미 있게 보내려 발버둥 치다가 성공이라도 하는 날엔 일말의 성취감을 안고 퇴근하는 게 행복이다.


그렇게 매일 같은 일상을 보내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며 반 강제적으로 나의 30살을 곰곰이 반추해 보니, 20대 내내 하던 그 생각을 올해는 하지 않았단 것을 깨달았다.
올해는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인 적이 없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가에 의문이 든 적도 크게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잘하고 있어 서가 아니라, 애초의 해당 질문을 나에게 반문조차 하지 않았다. 30대, 앞 숫자 하나 바뀐 게 뭐라고 이렇게 순응하고 사는 사회인이 나도 되어버린 걸까.


그러다 문득 다시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그 숫자에 내가 끼워 맞추어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은 마음속에서 점점 젖어들고 있었던 타성이 30 대로 숫자가 바뀌면서, 이젠 ‘치기 어린 열정’은 접어두고 현실에 맞추어 살아야 한단 그 사회적 인식의 미명 아래 맘 놓고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 타성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던 가능성을 앗아가는 동시에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다. 괜히 실체도 없는 가능성 때문에 나태하게 살고 있는 것 같은 죄책감에 빠지지 않아도 된다. 내가 욕심 내도 되는 것, 그리고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도 되는 시기, 무한한 가능성만 있는 게 아니라 불가능에 대해 인정할 수 있는 시기가 온 것이다. 



문제는 ‘인정’이 너무 빠른 ‘체념’이 되는 순간 발생한다. 이 안정감에 늪에 빠지면 내 인생은 평생 똑같은 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시간의 물결에 휩쓸려 흘러가는 대로 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안정감을 탈피해 불안감과 긴장감에 있을 때 나는 더 발전하게 된다. 안정과 불안정 그 사이 어딘 가에서 균형을 찾는 것, 그게 내 30대의 목표이다.


3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20대의 불안감의 의미와 필요성을 찾게 된 것 같다.
청춘은 지나고 나서야 그 의미를 안다더니, 어른들 말 틀린 게 하나 없다. 40대가 되면 또 30대 청춘에 대해 다르게 받아들이는 날이 오겠지.
그러니 70대가 오기 전까지는 우선 체념은 접어두고 없는 불안감도 되새기며 진짜 삶의 균형을 찾아가야겠다, 라고 일단 다짐은 해본다.


계속 그렇게 살아가는 삶과 순응되지 않으려 저항하는 삶 사이 그 어딘 가에 놓여있을 내 30대를 응원하며.




30±1,

[빨리 늙고 싶어]

written by KIM MEANSON

@mean_kim

김민선, born in 1992/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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