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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균 Jul 23. 2023

뉴진스의 컴백과 3건의 사망사건

자살과 타살이 어지럽게 점철된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23살의 친구뻘이라 할 수 있는 교사가 교실에서 자살했고 20살의 동생이라 할 수 있는 외동아들이 구명조끼도 지급받지 못한 채 물에 떠내려갔으며, 아무 이유 없이 거릴 거닐고 있던 20대 청년이 미친 자의 칼에 맞아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뉴진스가 컴백했습니다.


어떤 해결책을 찾고자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죽음에 있어 즐거움을 포기하고 슬픔으로 지내자는 뜻도 아닙니다. 단지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런 사회가 됐는지, 모든 문제의 결과가 왜 죽음으로 귀결돼야만 하는지 의문을 던질 뿐이며, 뉴진스의 컴백을 축하하는 게시물과 바로 밑에 외동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모습이 보여지는 스마트폰 화면을 온전한 정신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글을 쓰는 까닭입니다.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인터넷이 발달하여 비보가 많이 들리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사회가 무너지기 시작한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이번 일주일 간 전해 들은 사고 소식이 주변 지인들과 관련이 있어 그런 것인지. 내가 지금 받아들이기 힘든 건, 애도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 자신, 정확히 말하면 애도에서 그치는 제 자신입니다. 기사와 영상을 볼 때 먹먹한 마음을 가졌다 어느 순간 새로운 자극을 찾아 아이돌의 컴백 영상을 보고 있는 내가 부끄러웠고, 그 부끄러운 감정을 온전히 돌아보기도 전에 또 다른 누군가의 사망 소식이 들려오는 행태가 일주일 동안 반복되니 이젠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이라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무력감을 느끼는 거 같습니다. 허무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 분노하고, 분노의 대상을 찾아 떠돌다 논점이 점점 논란과 논쟁으로 변질되어가는 댓글 창을 보며 분노했던 이유조차 잊어버립니다. 그럼 다시 나는 핸드폰으로 뉴진스의 컴백을 축하하는 여러 매거진과 별로 공감되지도 않는 스케치 코미디 영상을 아까 가졌던 분노는 잊은 채 보고 있습니다.


모든 문화산업과 일상생활을 포기한 채 애도하는 기간을 가지자는 뜻은 아닙니다. 단지 각자의 알고리즘으로 도배된 이 세상에서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지금 품고 있는 분노와 불만을 올바른 대상에게 표출하자는 것입니다. 너무 다른 두 사건 사이에서 오는 감정적 간극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잠시 그 전자기기를 내려놓고 지금 품고 있는 분노의 대상이 누구인지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애도밖에 없음이 부끄럽지만 잠시나마 그 부끄러움이라도 온전히 가져보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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