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없는 나날이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것일까.
벌써 몇 달째 잇몸이 파이고 내려앉아 통증이 크다. 잇몸으로 바람이 불거나 찬 음식을 먹으면 이가 쨍하니 아프다. 내 몸의 면역력이 떨어지면 꼭 나는 잇몸이 아프곤 했다. 추운 겨울날에도 집에서 편하게 재택근무하며 잘 먹고 잘 지내는 내가 무슨 체력이 떨어진다고. 양심도 없다고 나를 다그치며 병원 가는 것도 미루고야 만다.
10년이 넘게 다닌 회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계속 불황인 상황 속에서 사업을 지속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회사의 입장이다. 사실 인원은 많이 줄어들고 더 줄어들어 현재 남은 인원은 대표님을 포함해서 3명이다. 대표님 하나, 디자인팀 부장님 하나, 마케팅팀 나. 어떻게 저렇게 몇 년간 가장 적은 인원으로 꾸려가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조차 녹록지 않은 것 같다.
사실 나에게 퇴사는 7년 전 그때 그 순간에서 줄곧 멈춰 있었다. 아이 문제로 퇴사 의사를 밝힌 그 날부터 지금까지 퇴사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유예기간의 연장이었다. 몇 년 후가 아닌 당장 한 달 뒤만을 보며 일했다. 그게 비겁하게 대충 일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이번 한 달동안 내가 혜택 받은 조건 안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25일에 월급을 받으면 감사했다. 그리고 다음 한 달을 또 그런 마음으로 일했다. 그게 쌓이고 쌓여서 10년이 되었을 뿐, 큰 비전도 목표도 없었다. 그때의 나에게는 너무 거창한 먼 미래보다는 착실한 오늘 하루가 더 중요했었다. 그렇게 긴 시간이 흘렀다.
좋은 인재들을 내가 붙잡고 있는 걸까 봐.
대표님이자 나와 긴밀히 소통하는 나의 상사는 말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많은 배려 덕분에 나는 아이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을 눈으로 담았고,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마다 곁에 있을 수 있었다. 더하여 한 달마다 받는 소중한 월급으로 맞벌이 부부의 재정을 유지하기도 했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일이 재밌다기보다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일을 하니 일이 재미있어졌다.
나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을 좋아할 수 있게 만들어준 나의 상사이자 대표님이 어떤 방식으로 회사를 정리해 나갈지 아직은 모르겠다. 나 역시 동종업계의 커리어를 이어갈지, 새로운 일을 시작할지 여전히 미지수다. 막막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럼에도 아주 불안하지는 않다. 10년 재직 후 나에게 남은 확실한 것은 '훌쩍 자란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등센서가 있어 4살까지 눕혀서 재우지를 못했다. 새벽까지 포대기를 메고 재워야 했던 그 아이는 점차 자라 자기만의 세계를 키워가고 있다. 아이에게 엄마란 존재의 영역이 점점 작아진다.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던 지난 시간들을, 이 회사를 다니면서 함께 보낼 수 있었기에 후회는 없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지만, 이 길의 끝이 보인다. 회사의 직원으로 마침표를 찍게 되는 날, 내 마음은 어떨까. 요즘은 매일 그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부디 막막함 보다는 기대감이 남게 되길 바라며, 정리해고 통보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