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지 못해서 '일'

일이 많아도 스트레스, 없어도 스트레스

by 이 란

나 두 달째 놀고 있어... 하아



밤 10시가 넘어 집에 온 남편을 반기며 내가 한 말이다. 깊은 한숨을 쉬고 있는 남편은 나를 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부럽다, 정말'



나는 제약 광고 마케팅 대행사에서 일해온 지 10년째이고, 그중 7년째 재택근무를 해오고 있다. 한때는 아이를 학교와 학원에서 픽업하는 시간 외에는 대부분 책상에 앉아 노트북만 바라봐야 할 정도로 일이 빡빡하던 시절도 있었다. 아직 엄마 손이 많이 필요했던 아이의 초등 저학년 시절과 회사 업무가 동시에 돌아갔다. 회사다니는 것보다 더 빡센 투잡을 뛰는 것만 같은 이중과업에 밤이면 뭉친 어깨가 욱신 거렸다.



23년도부터 서서히 일이 줄어 들면서, 회사는 직원을 줄였고 업무 시간을 조정했다. 그럼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 업계 내에서 적극적인 영업을 하지 않은 탓인지, 높은 견적(클라이언트는 자주 이 말을 했다) 탓인지. 분명히 프로젝트의 퀄리티는 마음에 들어 하면서도 일이 자꾸만 끊겼다. 급기야 작년 12월부터 현재까지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아침에 노트북을 켜고, 저녁에 노트북을 끄는 게 다일 정도가 되었다.



사무실 출근이라도 한다면, 출퇴근이 주는 직장인의 루틴이라고 있을 텐데 재택근무자라 그날이 그날 같다. 무기력함 속에서 월급 루팡이라는 죄책감이 더해진다. 더하여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자기 비난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으며 뭘 하든 의욕이 저하됐다. 회사에 대한 걱정도 크지만, 이렇게는 못살겠다는 마음이 더 커진다.



남편은 대학 병원에서 근무를 한다. 병원이란 곳은 매해 환자 수가 증가하며 매해가 더 바쁘단다. 더하여 원래 일하던 포지션이 바뀌면서 새로이 일을 배우고 변화에 적응하며 고군분투 중이다. 늘 움직이며 활동적으로 일하던 업무는 사무직처럼 하루 종일 앉아서 모니터를 들여야 봐야 하는 일로 바뀌었다. 몸에 익어 단순하게 움직이며 일하던 일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관리하는 일로 바뀌면서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했다. 그럼에도 하루는 정신없이 빠르게 흘러간다.



바쁘게 일하는 경험을 해보았기에 어딘가에 집중하고 시간감을 모르고 보내는 하루의 끝을 기억한다. 이제는 희미할 정도로 나에게는 낯설어진 경험의 기억이다. 몸은 바빠서 정신이 하나도 없을지언정 나의 존재에 대한 부정은 없겠지. 그의 하루치 고충을 듣고 있노라면 새삼 그러한 바쁨의 감정이 부러워지기도 하니, 인간이란 얼마나 간사한 존재인지 모르겠다.



그는 무료한 나의 하루를 부러워하고, 나는 그의 바쁜 하루를 부러워한다. 일이란 건 너무 바빠서도 너무 한가해서도 안되는, 가장 어렵다는 그 '적당히'를 잘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적당히가 되어야 그 안에서 일로서 느끼는 보람도 내 가치도 찾아낼 수 있으니까. 정말이지 적당히 살고, 적당히 일 한다는 게 너무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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