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돈 받고 일하는 게 좋은 사람의 이야기
재택근무는 벌써 횟수로 만 7년 차다.
그러나 처음부터 재택근무를 한 것은 아니었다. 한 회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고용의 형태를 다 겪어본 사람으로서, 가장 마지막으로 정착한 근무 형태는 재택근무가 되었고 나는 아직까지 이어오고 있다.
재택근무하는 광고 대행사 AE
지금 회사에는 2016년 6월에 입사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막 100일이 지났을 무렵이다. 친정 부모님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친정 가족들에게 아이를 맡기고 나는 3개월 만에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100일 동안 풀잠을 자본 적 없을 정도로 고된 육아의 세계에 있다가, 고요한 시간과 내 책상이라는 직장인의 세계로의 진입은 짜릿했다. 여전히 밤에 잠을 잘 못 자고 출근했지만 인간다움이 보장되는 직장인의 생활은 나를 다시금 활력 있게 만들었다. 월급의 반은 아이를 대신 봐주고 있는 동생에게 보냈고 나머지는 이래저래 생활비와 출퇴근을 하며 쓰는 비용으로 흐지부지 나갔다. 저축은 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좋았다. 일이 싫어 회사를 그만둔 동생과, 다시 일하고 싶어 회사를 나간 나. 그렇게 1년여간 바통 터치하듯 살았다.
아이를 전담으로 맡아주던 동생이 결혼을 했다. 친정 부모님이 계시지만 일을 하시는 부모님이라 가능한 오래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겨야 했다. 그래도 등원과 하원을 맡아주시는 부모님 덕에 내가 회사를 다닐 수 있었다. 그렇게 소란하지만 무탈했던 워킹맘 3년 차를 넘기던 어느 가을에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다. 사정으로 옮기게 된 어린이집에서 아이는 적응하지 못했고 아이 정서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는 집에서 케어를 하게 되었다. 당장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퇴사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감정적으로 많이 무너진 시기라 나도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
모든 걸 내려놓았던 그때, 의외로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이 과장, 재택근무를 해보는 건 어때?
네? 제가요?
나는 광고 대행사의 AE로 소통이 주된 업무다. 광고주 미팅도 많았고, 내부 회의도 잦았다. 그런 내가 재택근무라니. 나의 퇴사가 못내 아쉬웠던 상사는 '일단 해보자'는 제의를 했고, 그렇게 나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일을 하는 삶을 시작했다. 2019년 가을과 겨울의 기억은 현재 내 삶에 대한 감사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온 마음으로 절을 하고 싶던 나날이었다. 조금 정신은 없었지만 다행히도 일은 잘 돌아갔다.
왕복 출퇴근 3시간 경기도인 & 외주 기획자 프리랜서
그다음 해에 친정집에서 분가해 이사를 했다. 한평생 서울에서 살아왔던 나는 낯선 타 지역인 경기도에서 우리 가족만의 첫 집을 마련했다. 진짜 우리 집이라는 기쁨과 함께 회사에서 멀어진 걱정도 함께 왔다. 이제 미팅을 가야 하는 날이면 아주 이른 준비를 해야 했다. 미팅이 있는 날에는 친정 엄마가 나를 도와줬고, 남편과는 미리 휴가를 조율했다. 회사까지 왕복 출퇴근 3시간이라는 고비를 또 그렇게 몇 년간 무사히 잘 넘겼다. 그 사이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어린이가 되어갔다.
아이가 7살이 되던 해, 남편의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부부가 함께 육아휴직을 냈다. 남편은 착실하게 준비를 해나갔지만 나는 회사에 면목이 없었다. 작은 소기업인 우리 회사에서는 나를 대체할 사람이 없다. 나의 부재로 새로운 사람을 뽑아야 했다. 다시 돌아와도 내 자리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마음으로 떠났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잊지 못할 제주 1년 살이를 했다.
이 시기에 나는 생애 처음으로 프리랜서처럼 일해 보기도 했다. 회사로부터 광고 컨셉과 기획일을 외주로 맡아서 일을 했다. 제법 괜찮은 용돈벌이였다. 초반 몇 개월을 그렇게 일하다가 나중에는 제주 생활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일을 고사했다. 외주 프리랜서의 삶을 아주 잠깐 경험한 시간이었다.
반일제 사무직 근무자 & 다시 종일제 근로자
1년 후, 육아휴직을 끝내고 회사로 돌아왔다. 경기 침체와 불황으로 업계의 상황이 좋지 못했다. 8시간 근로자로 책상에 앉아서 할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동료와 나는 오전과 오후로 시간을 나누어 반일제로 일을 하는 시스템을 시작했다. 당연히 월급도 반으로 줄었다. 그러나 적게 일하고 적게 버는 삶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나에겐 썩 괜찮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는 오후 1시 반이면 집으로 돌아왔다. 오전 9시 반부터 오후 2시까지 일하는 나에겐 최적의 시간이었다. 2시가 되면 노트북을 끄고 아이와 오후 시간을 보냈다.
아이 학원을 데려다주고, 동네 호수로 산책을 나갔다. 저렴한 테이크아웃 커피를 사들고 도서관에 들려 고요한 시간을 보냈다. 반일제로 버는 돈은 큰돈을 저축할 수는 없었지만 한 달 치의 가계를 지킬 수는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만족감을 느꼈다. 4시간만 일하는 삶이 실현될 수 있음에 또 한 번 삶의 무한한 변동성에 감탄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아이는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이제 제법 언니티가 나는 3학년이 되었다. 내 손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간이 성큼 다가왔다. 나의 시간이 많아질 때 즈음, 함께 일하는 동료가 퇴사를 하면서 나는 다시 종일제로 근무하게 되었다. 일하는 시간이 2배가 되면서 월급도 2배가 되었다. 이제 시간 부자에서 돈 부자가 되어 저축을 하게 되었다. 지난 2년 동안 시간을 마음껏 쓰며 살다 보니 더는 시간이 탐나지 않았고, 이제는 차곡히 쌓이는 돈을 보는 나날이 좋았다. 저 위 어딘가에서 누군가 나의 삶을 이리저리 흔들다가 시기적절하게 제 자리로 갖다 놓는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 한 번은 나의 다양한 고용 형태를 정리하고 싶었다. 이게 지금이 된 것은, 기안 84의 유튜브 영상 중 배우 서지승 편을 보면서 그녀가 말한 한 마디 때문일 것이다.
저는 남의 돈 받고 일하는 게 좋아요.
나는 이 말을 오랫동안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퍼스널 브랜딩이 중요하고 고용당하는 대신 주체적으로 내 고용을 내가 스스로 책임지라고 말하는 이 시대에 무슨 시대착오적인 이야기란 말인가. 왜 나는 한 톨만큼의 야망도 없는지, 왜 더 나은 비전이 있는 상황으로 몸값을 높여가며 이직하지 않는지. 그런 질문들이 나를 찾아올 때마다 나는 아주 조용하게 혼자 말하곤 했었다. 나는 남의 돈 받고 소소하게 일하고 싶어. 죽을 때까지. 아무도 안 듣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했다.
회사란 흥망성쇠가 있고 고용의 가장 끝인 퇴사 혹은 권고사직이 남았다는 것을 안다. 그 끝을 향해 달려가는 나는 무기력한 사람인가, 무식하게 용기 있는 사람인가. 한 회사에서 근로자로 일하며 할 수 있는 여러 형태를 두루 겪어온 시간은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나는 미래를 한 치 앞도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남의 돈을 받고 성실하게 일하는 시간이 내 하루를 가장 안정적으로 만든다는 사실이다. 열심히 살아야 하는 사장 보다, 그날 하루를 성실하게 사는 직원. 이게 내 꿈이라면 나는 너무 나약한가. 여전히 나는 매일 나에게 질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