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차 부부의 적당한 거리

내향인 부부에게 다정함보다 중요한 건 ‘존중’

by 이 란


우리 부부는 결혼 11년차 40대 부부다.

연애할 때부터 내향적인 성향이 강했던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존중하며 서로를 크게 터치하지 않는 관계를 유지했다. 내향적이지만 외적 활동이 많은 남편과 내향적이면서 내적 활동이 많은 나였다. 우리 둘의 차이는 에너지의 활동 범위만 다를 뿐 각자의 몰입의 시간이라는 점에서는 항상 비슷했다. 이러한 성향이 관계의 피곤도를 낮춰준 탓인지 우리는 6년이라는 긴 연애를 하고 자연스럽게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고 난후에도 우리의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생활은 크게 달라지 않았다. 결혼 후 남편은 철인 3종 동호회에 들어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철인 운동에 빠져들었고 나는 나대로 나의 자기계발에 몰두하던 때라 우리는 직장과 취미를 양립하며 ‘따로 또 같이’을 즐겼다. 우리는 전혀 이상한 점이 없다고 느끼며 사는 와중에, 종종 우리를 쇼윈도 부부 아니냐고 농담삼아 말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년에 최소 3~5번은 전국의 철인대회에 참가하는 그는 짧게는 1일, 길게는 2일 동안 집을 떠난다. 남편이 집을 비운다는 것을 외박으로 받아들이고 불편해하는 지인들에게 나는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그 시간은 각자의 시간이지 누구의 소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을 즐기지 않아 외박하며 집을 잘 떠나지 않지만, 그에게 아이를 맡기고 하루 동안 좋아하는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당일치기 여행은 즐긴다. 횟수제처럼 누가 더 아이를 많이 돌보나 셈하지는 않지만, 상대가 집을 떠나 자신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신호를 보내오면 자연스럽게 아이를 맡으며 집에서 머무는 것이 우리 부부의 암묵적인 룰이다. 이것은 다정한 관심은 아니지만 서로의 기질을 이해하는 존중의 태도다.



우리들의 ‘혼자여서’ 행복한 시간


원래도 운동을 좋아한 남편이었지만, 이토록 오래 철인 3종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수영, 달리기, 자전거 3종을 모두 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체력 그리고 돈이 필요했다. 남편은 일하고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나머지 시간을 운동에 쏟는다. 주 4회 이상을 운동하고 밤 늦게 집으로 돌아와 씻고 잠이 드는 루틴을 십년째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운동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야외 훈련을 제외하고는 혼자하는 운동이라고 했다.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하는 운동이라기보다는 자신과의 싸움이 주가 되는 운동이다. 타인과 경쟁하기 보다는 완주와 기록 단축이라는 나와의 경쟁이라는 점에서 그의 내향적 성향과도 잘 맞는 운동이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나는 재택근무를 하며 아이를 돌보고 나머지 시간에는 동네에서 머물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에너지가 크지 않기 때문인지 생활 동선도 크지 않다. 날씨와 상관없이 매일 1시간의 산책을 하고 글쓰기와 독서 관련 취미 생활을 즐긴다. 전시나 공연이 보고 싶다고 느낄 때는 남편이 운동을 쉬는 평일과 주말의 하루 중 혼자 밖으로 나가 반나절의 시간을 보내고 온다. 남편이 혼자 운동을 하고 오는 것처럼 똑같이 나 혼자 문화 생활을 누리는데, 이것이 가족 전체의 동반이 아니라 반드시 혼자만의 시간이여야 온전히 그 시간을 누릴 수 있음은 많은 경험 후 얻은 교훈이다.

우리는 서로의 영역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문외한이다. 연애부터 지금까지 서로의 사생활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고 각자 독립적인 영역을 그 자체로 인정해줬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각자가 자신의 시간에 집중하느라 상대에게 관심이 덜하다고 할까. 남편이 이번 철인대회에서 어떤 성적을 이뤘는지 나에게 중요하지 않듯, 내가 하고 있는 글쓰기도 그에겐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 일을 할 때 상대가 얼마나 즐거워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다. 평범하고 반복적인 일상 외에 우리를 몰입하게 하고 가슴 뛰게 하는 일이 서로에게 있음을 아는 일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 일을 할 시간과 에너지를 존중해주는 것, 이것이 내향인인 우리 부부에게 관심보다 존중이 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우리들의 ‘함께여서’ 따뜻한 시간


개인적인 우리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물론 그것은 그것대로 우리의 라이프를 즐기며 사는 우리만의 방식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딸 아이가 있다. 남편과 내가 각자 독립적인 섬 같다면, 아이는 두 섬을 이어주는 다리와 같았다. 아이를 낳아 키우며 느꼈던 복잡 다양한 경험과 감정들은 겹겹이 쌓여 우리만의 연대를 만들었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된 것이 아니라, 각자의 하나가 셋이 되는 순간들은 내가 처음 느껴보는 가족의 경험이 되었다. 셋이 되어야만 하는 순간들이 하나씩 모이고 쌓이면서 우리의 존중 방식은 조금 더 다양한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혼자 여행을 가기도 했던 남편은 이제 가족 여행 외에는 여행을 떠나지 않는다. 혼자 떠난 여행도 좋았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 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함께한 국내 여행은 물론 해외 여행까지 아이가 아직 어려서 힘들었던 기억들도 시간이 지나니 웃으며 이야기 할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남편과 나 둘이서만 떠났던 홀가분하고 편했던 여행과는 사뭇 다른 풍경들이었지만 분명 다른 행복감을 느끼게 해준것만은 확실하다.

전시나 공연장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고 시작한 것은 나의 방식이다.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갖는 것을 좋아하지만 어릴 때부터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채워주고 싶은 나의 바램에 아이는 나를 따라 전국의 어린이 미술관을 다녔다. 여전히 아이와 함께하는 전시나 공연의 관람은 힘이든다. 그럼에도 내가 줄 수 있는 경험의 기억을 위해 나는 나의 시간 외에 함께의 시간을 반드시 끼워 넣는다.



적당한 거리에서 걷는 조용한 동행


얼마 전 결혼 20년차 부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즈음이 되면 서로 정치 토론을 하면서도 싸우지 않는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결혼 10년차인 우리 부부가 앞으로의 10년을 더 살아내면 우리도 20년차 부부가 된다. 10살인 아이가 성인이 되는 그날이 되면 우리 부부의 모습은 어떨까? 다시 처음처럼 각자의 섬으로 돌아가 있을까.


타고난 기질을 생각하면 다정하고 애틋한 부부는 아니겠지만, 나는 바란다. 아이가 독립하고 난 후 삶의 여백 속에서도 각자가 자신만의 삶을 여전히 꾸려가고 있기를. 취미를 함께하진 않아도 서로의 열정을 가만히 들어줄 수 있는 거리, 그만큼의 존중이 유지되기를.

최근에 나는 달리기에 빠져 격일로 3km를 달린다. 야외에선 두 배를 뛴다. 10km 마라톤 대회에도 두 번 나갔다. 언젠가는 한 시간 안에 완주해 보겠다는 꿈도 생겼다. 신기하게도, 이건 10년간 달리기를 해온 남편이 한 번도 권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느새 길 위를 달리고 있다. 최근에는 남편이 알려준 정보로 늦지 않게 뮤지컬 위키드를 예매할 수 있었다. 실시간 정보에 약한 나를 대신해, 그는 종종 내게 전시나 공연 소식을 전해준다. 내가 좋아할 것들을 알기에 가능한 일이다.

결국, 결혼이란 누군가를 오래 지켜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곳을 향하지 않아도, 각자의 속도로 걷더라도,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봐주는 일. 그 거리 안에서 우리는 더 오래, 더 깊이 서로를 알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

"쇼윈도 부부 아니냐"는 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 오마이뉴스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왜 호캉스를 갔는데도 지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