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포비아 있는 광고 대행사 AE
나는 광고 대행사의 AE다. Account Excutive 라는 거창한 뜻은 차지하고, 간단히 말해 광고주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한 후 내부팀과의 협력를 통해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일을 한다. 밖으로는 광고주와의 원활한 소통을, 안으로는 내부 부서와의 유기적인 소통이 필수인 어쩌면 소통이 전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관계 중심적인 일이다. 내향적인 자아를 숨긴 채 절반은 현장에서, 나머지 절반은 재택으로 일하며 이 일을 10년 넘게 이어왔다. 사람들 사이의 소통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재택근무하는 내향인’이라니,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지만 그런 모순이 가능한 시대가 지금이다.
하루 업무의 시작은 노트북을 켜는 일로 시작한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회사 메일과 PC 카카오톡에 로그인하는 것이다. 나의 일의 대부분의 소통은 메일과 메신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메일로는 새로운 광고주 요청을 체크하고 메신저로는 내부팀과 관련된 파일들이 오간다. 집에서 혼자 일하기 때문에 공간은 사람의 음성 대신 키보드를 치는 타자음이 채운다. 적막한 듯 고요하지만, 노트북과 모니터 2개의 화면창에는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메일과 메신저 대화창들이 계속해서 날아든다. 소리없는 전장처럼 묵언으로 하루의 대부분을 키보드 치는 일로 보낸다. 큰 일이 없다면 오늘도 핸드폰으로 전화가 오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은 메일과 메신저에서 해결이 가능하니까.
콜 포비아가 늘어가는 20⦁30대
MZ세대 1,496명을 대상으로 조사(알바천국)한 결과 콜 포비아 증상을 겪고 있다는 이들은 35.6%로 지난해 동일 조사(29.9%)보다 상승했고, 가장 선호하는 소통 방식 역시 ‘문자⦁메신저 등 텍스트 소통’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61.4%에서 70.7%로 늘었다.
이런 수치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세대적 정서의 변화를 보여준다.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비대면을 경험했지만, 사실 나는 훨씬 그 이전부터 비대면 시스템에서 일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시대적 변화가 크게 낯설지 않다. 오히려, 내가 먼저 걸어 들어와 있던 그 길 위로 젊은 세대가 하나둘 합류한 느낌이다.
텍스트 중심의 비대면의 업무 시스템은 생각보다 많은 장점이 있다. 첫 번째로, 감정의 낭비를 최소화 할 수 있다. 출퇴근을 하지 않는 나는 나의 개인적인 감정을 얼굴로 애써 숨기며 사회화라는 가면을 쓰며 밝게 인사하지 않아도 된다. 메신저의 텍스트를 통해서는 언제나 안정되고 다정한 동료가 되어 ‘굿모닝’과 웃는 이모티콘만으로 그 날의 아침인사를 대신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업무를 하면서 감정적인 상황 속에서도 텍스트라는 비대면은 훨씬 더 정제된 자세로 내 의견을 일목요연하게 전달 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는 생각할 시간을 벌어준다. 바로 면전에 날아드는 요청보다 메일이나 메신저로 전달받은 사항들은 내가 그 일을 더 잘 효율적으로 처리할 시간을 준다. 내향인이자 약간의 콜포비아를 갖고 있는 나는 즉각적인 감정 대처 능력이 다소 떨어진다. 때문에 이 시간을 통해 나의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고 준비하여 대답한다.
마지막으로는 내 스스로 일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 일을 하다보면 각자 나름의 처리 순서가 있기 마련이다. '이 걸 먼저하고, 저 걸 나중에 하자' 머릿속에 그려지는 단계를 나만의 속도로 처리해 나간다. 텍스트를 읽었으나 아직 대답하지 못한 상태라는 걸 상대방에게 알릴 때는 '순차적으로 하겠습니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셈이다. 그걸 나도 상대도 잘 알고 있다.
물론 모든 면에서 비대면을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끝없이 오가는 메신저의 대화가 무색할만큼, 직접 얼굴을 보고 몇마디 소통하는 것으로 일이 끝날 때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개인의 공간과 시간의 명확한 경계를 그을 줄 아는 요즘 젊은 세대의 업무방식이 점차 비대면화되어 가는 것은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 되었다.
두 세대간 모두를 경험하며
내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15년 전만해도 메신저는 개인의 사생활에서나 쓰는 용도였고, 회사 메일 외에도 유선 직통전화는 물론 개인 핸드폰으로도 자주 업무 관련 통화을 했다. 이제는 일 관련해서는 통화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대부분이 메일과 메신저를 통해 해결된다. 정말로 급한 건이 있을 때에는 문자를 남기기도 하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나 이른 시간은 피하며 개인의 시간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대부분이다.
그 전 세대와의 업무방식으로도 일해본 경험이 있는 40대 직장인 친구들은 우스갯소리로 요즘에는 부하 직원의 개인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면 무례한 사람이 된다며 조심하자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업무 시간 외 상사의 전화는 그야말로 그들에겐 콜 포비아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나는 업무의 특성상 다양한 연령대의 광고주를 만난다. 해당 브랜드의 담당자가 20⦁30대 일수도 있고, 나와 같은 40대 혹은 50대 일수도 있다. 그때마다 현저하게 달라지는 소통 분위기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며 일해오고 있다. 개인의 시간과 사생활이 중시되는 젊은 세대의 담당자에게는 가급적 업무 시간 안에서 메일을 통해 소통을 한다. 업무 관련 미팅이 필요할 때에도 메일로 관련 자료를 전달하고 서면으로 업무요청을 받는 일이 많다. 이러한 담당자에게 긴박한 일정 논의를 위해서 불가피하게 업무 외 시간에 연락을 해야하는 경우, 카카오톡이 아닌 '문자'(조금 더 공식적인 느낌이 든다)로 메시지를 남겨 회신을 기다린다.
반면에 40⦁50대 담당자는 부담없이 직접 전화를 걸어오기도 하고 업무 관련 미팅을 직접 만나서 논의하는 방식을 훨씬 더 선호한다. 나는 비대면을 훨씬 더 선호하기는 하지만, 상대가 빠른 피드백을 원하는 성향인 경우에는 나 역시 전화로 일의 진행 과정을 알리며 탄력적으로 일하고 있다.
소통의 형식만 달라질 뿐, 더 잘 일하기 위해
나는 두 방식에서 모두 일해온 40대로서, 각각의 장단점을 경험했다. 어떤 소통 방식이 옳고 그르다를 떠나 세대가 달라지면서 일을 대하는 감정 관리의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일하는 자아와 나의 자아를 동일시 했던 기성세대와는 달리, 일하는 나와 일 밖의 나를 분리하여 생각하는 요즘의 세대를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의 변화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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