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마리는 남편 조지를 찾는다. 깨어보니 옆에 남편이 없다. 마리가 문밖으로 나가 남편을 불러 보지만, 조지는 듣지 못한 채 길을 갈 뿐이다. 조지는 어디로 가는 걸까? 마리는 “조지, 조지! 당신 어디 가요? 왜 나한테 말도 안 하고 나가요?”라고 하지만, 조지의 대답을 들을 수는 없다. 조지를 찾아 탐정처럼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홀랜드 파크, 자연사박물관, 브롬턴 로드, 해러드 백화점.....
이 책에는 한 번은 들어 봄 직한 영국의 여러 장소들이 등장한다.
유명한 버킹검 근위병 교대식과 테이튼 브리튼 갤러리까지. 마리와 함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조지를 찾다 보면 어느새 책이 훌쩍 넘어가 있다. 마리가 얼른 조지와 만났으면, 조지가 그림 속 어디에 있는지 꼼꼼하게 살펴보게 된다.
잔 디어의 그림책 <당신과 함께>는 노부부의 하루 풍경을 그린다. 아침에 일어나니 보이지 않는 남편을 찾아 나서는 마리와 조지의 여정이 만날 듯하면서도 만나지 못한다. 그림조차 몽환적이다.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안개 낀 아침을 떠올리게 한다. 노년의 삶은 참으로 멀게 느껴진다. 아직 아이들이 어린것도 있지만, 늙은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직은 젊어 보이고 싶고, 노안이나 노화하는 말도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 한구석에 있다. 우스개 소리로 “아이들한테 구박받을 수 있으니, 당신이 나보다 하루 먼저 죽으라고”라고 남편에게 말하지만, 실제 그 삶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남편 또한 “아이들을 잘 챙기라”라고 대답하곤 한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14년이 흘렀다. 딸 때문에 학교에 불려 가도 나에게는 내색 한번 하지 않았고, 이웃에게 늘 친절하신 분이었기에 그 죽음은 너무 일렀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어떤가, 어릴 때 한 번도 아버지를 “아빠”라고 친근히 불러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상냥하고 다정한 부녀 관계를 부러워하셨고, 나와 동생에게도 싹싹한 딸을 주문하곤 했다. 그럴수록 나에게는 그저 가부장적인 모습만 기억될 뿐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가 고향으로 내려가신다고 했을 때 조금의 걱정과 큰 안도감을 느꼈다. 옆에서 모실 자신은 더더욱 없거니와 그 성정을 다 채울 수도 만족시키지도 못할 것 같았다. 부모 자식 간이라도 적당한 거리는 늘 필요한 법이니까.
아버지가 엄마를 그리워했을까는 잘 모르겠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버리듯 엄마의 물건을 정리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원망이 가득 차서 보았다. 애도할 충분한 시간도 없이 본인의 성격대로 모든 것을 일시에 싹 치워버리고 싶어 하는 모습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색하면 싸울 거 같아서, 엄마 일을 두고 싸우는 것은 충분히 했으니. 그러려니 넘어갔다. 포항으로 내려가신 지 몇 년이 흘러 형식상 명절에나 얼굴을 보는 사이가 되어 갔다. 혼자의 삶을 살펴볼 여유는 없었다. 건강하게 지낸다고 하시면 걱정을 덜고, 아프다고 하셔도 그 거리를 단숨에 달려가기는 어려웠다. 늘 아이들, 내 일들을 핑계 삼아 미루었고 일 년에 두세 번 정도로 뵈었다.
아버지가 엄마를 기억할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엄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엄마의 이른 발병에 아버지의 기여가 크다고 생각하기에 엄마의 이야기를 아버지와 나누는 것은 불편할 때가 많다. 아버지는 어떨까? 자신의 아내를 어떻게 기억할까? 예전에 엄마가 보여줬던 두 분의 연애편지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는 두 분의 사랑으로 내가 태어났구나 안도감을 느꼈다.
혼자 남은 사람이 아버지가 아닌 엄마였다면 집안의 풍경을 달랐을 거라는 생각을 간혹 했다. 사춘기 이후 불편했던 아버지와 달리 엄마라면 신나게 놀고 더 즐거웠을 거라고 말이다. 시간을 돌릴 수 없으니 그저 그런 딸로 만족하고 그저 그런 관계로 지낸다. 아버지가 조지처럼 마리를 기억하는 남편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버지가 딸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면 나 역시 아버지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
아버지가 올해 초 요양병원에 입소하시기 전 병원에 한 달여 입원하셨다. 병구완을 하면서 가만히 손과 발을 만져 보았다. 늘 새벽에 나가 휴일 없이 일을 해야 해서 그 모습을 자주 뵐 수 없었다. 커서는 자주 뵙지 않는 것이 더 좋았고. 늙은 손과 발을 만지며 다시 엄마를 생각했다. 어쩌면 엄마도 그런 당신이라도 함께여서 살아오셨겠구나라는 결론을 내렸다. “자식의 입장에서는 만족스럽지 않지만 부부간의 일은 다 모른다고”. 큰 아들이 우리 부부에게 이혼하라고 할 때마다 해준 이야기다.
잔디 어는 영국으로 유학을 갔고, 그곳에서 벤치에 새겨진 이름들을 보았다고 한다. 그 이름에 얽힌 사연들을 궁금했다고 작가의 말에 전한다. 모두에게는 모두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일까. 혼자 남겨진 아버지에게도 자신의 이야기가 있었음을. 그것을 함께 나눌 당신이 있었음을.
잠든 남편을 다시 쳐다본다. 때론 안 맞아서 숱하게 싸우면서 서로에게 생채기를 냈다. 행복하고 평화로운 부부의 모습은 우리와 달랐다. 헤어지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많은데 지금은 둘 다 인간이 되어 가고 있다. 내가 먼저, 남편이 먼저 죽는다면 우리의 애도의 시간은 얼마나 될까.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간혹 서로에게 묻는다. “ 죽었는데 뭘 그런 거 까지 생각하냐고” 타박하는 나에게 남편은 섭섭해한다,
‘당신과 함께’의 당신이 꼭 부부만은 아니라고 본다. 내 곁을 지켜주는 당신이 있다면 그 누군가가 당신일 것이다. 그리고 나도 당신이고 싶다. 덧붙인다면, 그래도 남편보다는 내가 더 오래 살아야 할 것 같다. 이것저것 챙기고 오지랖이 넓은 남편이 나 없으면 얼마나 구박을 받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