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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진 Yejin Lee Feb 20. 2024

스위스에는 없는 한국의 건강검진 문화

이번 연말연초 한국에 다녀오면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예전에도 휴가철에 한국을 방문하면 건강검진을 받곤 했다. 미래의료재단 사립 검진센터와 대학병원 총 두 군데에서 받았었는데, 두 곳 다 한 장소에서 여러 검사를 빠르게 받을 수 있었던 건 비슷했다. 검진실이 한 층에 나란히 줄지어 있고, 안내원이 탈의실 사용부터 다음 검진실로의 이동까지 바로바로 안내해 주었다. 그렇게 15군데 정도를 돌면 검사가 끝난다. 역시 한국 답게 빨리빨리, 모든 검사는 순식간에 끝났다. 반나절 정도면 혈액 검사, 초음파, 심전도, 갑상선, 골밀도, 시력, 청력, MDCT, X-ray, 위 내시경과 대장 내시경까지 다 끝낼 수 있다니.. 한국의 빠르고 효율적인 의료시스템에 감탄하게 된다.


해외에 사는 분들은 다 비슷하겠지만, 특히 스위스는, 병원 진료를 받는 것이 쉽지 않다. 미리 예약을 몇 주 전에 하고 가야 하거나, 진료를 보러 가는 날도 병원에 가서 한참 기다리고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검사나 다른 추가 검사라도 하려면 또 몇 시간이 더 걸릴 때도 많다. 별거 안 해도 비용은 기본 200~300프랑 이상, 한화로 30~45만 원씩 청구된다. 


그래서 한국 방문 시 그동안 못 본 병원 진료를 보고, 종합 건강검진까지 받고 온다. 한국에서는 1인당 100만 원, 비싸도 200만 원 정도면 프리미엄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다. 근데 스위스에서는 단일 검사 예약에도 며칠이 걸리고, 모든 검사를 한 자리에서 받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또한, 스위스에는 건강검진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에, 건강검진은 한국에서만 받고 올 수 있기도 했다. 이번에 우리 부부는 한국에서 받은 건강검진의 결과지를 영문으로도 받아 스위스에 가져왔다. 그리고 우리 부부의 스위스 주치의에게 한국에서 받아온 영문 검진 결과지를 전달했다. 그런데 예상 밖에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다양한 검사 결과를 손쉽게 볼 수 있게 되어 고마워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은 검사를 왜 했냐고 우리에게 되물었다. 아직 젊고 어디가 심각하게 아픈 것도 않은데, 수많은 검사 결과를 받아온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주치의는 필요하면, 필요한 검사들만 스위스에서 신청해서 받으면 되는데 굳이 필요 없는 검사까지 다 받은 걸 이해하지 못했다. 그 말도 일리가 있는 듯했지만, 비용은 몇 배나 더 비싸게 들겠지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대화를 이어 나가며, 스위스에서 이렇게 한국처럼 종합검진을 하면 얼마나 드냐고 주치의한테 물어봤다. 의사는 모른다고 했다. 왜냐하면 스위스는 이렇게 검사를 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한국병원은 병을 예방하는 것에도 신경 쓰는 반면, 스위스나 서유럽 나라 병원들은 증상이 나타난 후에야 진단과 치료를 시작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한국은 진료비가 저렴하기 때문에 아프면 빨리 병원에 가서 진료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경우, 진료비의 절반 이상을 보험에서 부담하는 반면, 스위스에서 가장 저렴한 건강보험은 성인기준, 매달 350프랑 정도 (약 50만 원)의 보험금을 내야 하고, 진료비는 한 번에 기본 200프랑 (약 30만 원) 이상씩 나오는데, 연간 합산 2500프랑 (약 380만 원)이 넘어야 보험에서 부담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파도 빨리 병원에 가기보다는 정말 심하게 아파야 병원에 가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암이나 수술을 해야 하는 큰 질병을 겪는 경우에는, 스위스의 보험 시스템은 정말 좋을 것이다. 왜냐면, 보험에서 정한 자기 부담금 (매년 최대 2500프랑)을 내고 나면, 그 외에 모든 비용은 다 보험에서 부담하기 때문이다. 


건강검진뿐만 아니라, 일반 진료를 보러 가도 스위스 병원 의사는 항생제나 센 약을 처방해 주지도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자연적으로 낫기를 권장하는 것 같다. 아파서 병원 진료 예약을 잡으려고 해도, 바로 예약을 잡기 어려워 며칠 기다리다 보면, 정작 병원 진료를 보러 가는 날에는 다 나아서 갈 필요가 없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건강검진 외에도, 이번에 한국에서 피부과, 알레르기내과, 치과 등 다양한 병원 진료를 받았다. 피부과 진료를 오전에 받고, 발바닥에 굳은살처럼 올라온 것들이 사마귀라는 진단을 받고, 바로 10분 만에 옆에 치료실에서 냉동치료를 받았다. 스위스라면 적어도 미리 예약을 잡고 두 번 이상은 방문해서 몇 시간 정도 걸려야 대기부터 치료까지 받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한국 피부과에서는 대기, 진료, 치료 총 30분 걸렸다. 그리고 알레르기내과에서는 콜드알레르기 약을 처방받았고, 치과에서는 충치치료와 사랑니 발치를 했다. 모든 진료가 빠르게 예약이 가능했고, 진료를 보러 가서도 오래 기다리지 않고 15분 내로 진료를 봤다. 특히 치과에서는, 해외에 살다 잠깐 귀국해서 시간이 없다는 나의 사정을 다 생각해 주신 치과 의사 선생님이 사랑니를 발치하면서 충치치료도 바로 다 해주셨다. 먼저 마취하고 30분 동안 기다리면서 충치치료를 받고, 그리고 마취가 되고 나서 사랑니 발치는 1분 만에 끝났다. 전혀 아프지도 않았고 발치 후 2시간 동안 지혈만 해주고 나니 바로 반대쪽 치아로 식사도 가능했다. 


작년 스위스에서 사랑니가 아파서 치과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스위스 치과 의사가 사랑니 발치는 큰 수술이기 때문에 1주일 뒤에 발치 수술을 몰아서 하는 날짜에만 가능하다고 1주일 뒤에 다시 오라고 예약을 잡아 줬다. 사랑니가 아픈데도 바로 못 뽑고 1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그 바람에 통증은 악화되고 염증이 생겨서 결국 입도 안 벌어지는 상황까지 갔다. 응급실에 갔더니 사랑니 밑에서 목까지 농액이 생겼다고 당장 응급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었다. 그렇게 제네바대학병원 수술방에 들어가서 태어나서 처음 목에 칼을 대는 수술까지 경험하게 되었다. 


이번에 한국에서 위아래 사랑니가 마취 30분 후 1분 만에 쉽게 뽑히는 걸 경험하고 나니 스위스에서 했던 치과 치료가 너무 허탈했다. 당시 사랑니가 아파서 치과를 1주일 동안 세 번 방문했었는데, 치료를 한 것도 아니고 진료만 본 게 850프랑 (약 130만 원)이 나왔다. 한국에서는 사랑니 2개를 발치하고 충치치료를 3군데 하면서 도자기도 씌웠는데, 다해서 100만 원 정도밖에 들지 않았다. 한국의 국민보험에 치과 치료가 포함되기 때문에 매년 스케일링도 받을 수 있고, 사랑니 발치도 얼마 들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환자들도 많다 보니 한국 치과 의사들의 손은 더 빠르고 기술이 좋아 보였다. 반면, 스위스 의료보험에서는 치과 치료를 의무로 포함하지 않고, 개인이 선택해서 추가보험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치과 진료를 잘 보지 않는다. 아니 비싸서 못 보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니 스위스 치과 의사들은 한국에 비해 환자도 많지 않고 경험도 많지 않다. 그래서 그렇게 느리고, 실력도 부족했던 것일까. 결국 나의 스위스 치과 의사들에 대한 신뢰는 바닥이 되었고 한국 치과 의사들에 대한 신뢰가 상승해 버렸다.


한국과 스위스의 의료시스템은 각각 확실한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건강검진을 통해 미리 질병을 예방하고, 언제나 편리하고 효율적인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환자의 입장에서는 너무 편하고 좋은 것 같다. 물론 반대로 스위스 의사들의 삶이 한국 의사들보다 더 여유롭고 편하겠지만..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두 나라의 의료 시스템을 보건학적 관점으로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고 고민해 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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